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엄마 마음 크기가 아이 인생 크기를 만든다 - 장애영 사모의 마음 양육법
장애영 지음 / 두란노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 마음 크기가 아이 인생 크기를 만든다

- 장애영 사모의 마음 양육법 장애영 지음 | 두란노서원 | 2016.03.22

 

이 책은 기독교 가정의 한 사모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성경적 자녀양육서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자녀양육서' 라는 범주로 규정하여 독자들조차도 부모된 자들로 제한하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밥을 해 주라'는 자녀양육의 실제뿐만 아니라 '목숨을 거는 신앙 전통'의 모습이 어떠해야하는지, 인간관계와 상담의 지혜 등 전수 받을 수 있는 메시지가 실로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읽어낸 것은 영적성장에 필요한 신앙 자세와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영적 싸움이라고 말해버리는 인간관계에 대한 해법들이다. 나의 영적 성장을 방해한다고 느껴지는 인간은 사실 멀리 있는 인류가 아니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 아니던가.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가 그렇고, 가족 간의 문제가 또한 그러함을 본다. 이 책은 그러한 쉽고도 어려운 인간관계를 성경적으로 풀어가는 노하우를 담고 있다. 그 노하우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로 '나의 자존감 회복'에 있다. '부모의 자존감 회복이 자녀 축복의 시작이다'는 문구는 나의 자존감 회복이 모든 인간관계를 축복으로 이끌 수 있는 비결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

저자가 지적했듯 대개 우리의 '마음은 견고한 두려움의 집'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우리의 죄악으로 얼룩진 마음이 두려움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나의 두려움은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두려움을 낳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닦달하게 만든다.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이야 항상 다양해 보이지만 문제의 근원을 살펴보면 왜곡되고 상처받아 두려움 속에 갇힌 우리의 자아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성경적인 자아의 회복이 없이는 자녀는 물론 그 누구와도 화합하기 어렵고 삐걱거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가 '먼저 고침 받아야 할 사람은 자녀가 아니라 부모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먼저 그리스도의 올바른 자녀로 양육하여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이 자녀양육이라는 범주를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읽혀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사역이든 자녀양육이든 문제 해결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왜곡된 자아상이 마음밭에 지뢰처럼 숨어 자신을 지배하는 걸 미처 모르거나 간과하며 산다. 그러고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분신이라 여기던 자녀와 부딪쳐 배신감에 몸서리치고서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본다. 다행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자녀와의 부딪침, 가장 가까운 가족과의 부딪침은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의 형상으로 자신을 회복하라는 주님의 특별 이벤트를 수용하는 기간이 된다.

세상은 자존감을 높이라며 인간 저마다의 상처 속에 도사린 열등감과 자만심을 건드리기 일쑤이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경적 자존감의 회복이다. 성경적 자존감의 회복이란 주님의 말씀으로 치유받고 회복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보편적 진리인양 자리 잡은 이 세상의 병든 가치관을 떨쳐버리고 성경적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날마다 성경 말씀에 나를 비춰 말씀의 빛과 진리로 나를 견고히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나를 내어드리고, 내 힘으로 이루고 싶었던 인생의 성공신화를 내려놓고, 인생의 숱한 좌절을 이기는 마음의 근육을 길러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의 기초공사부터 재건해 나갈 때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써 아름다운 성장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 또한 내 자녀와 가족들을 나의 소유가 아닌 주님의 소유로 인정하고 내어 드릴 때 그들에게도 기적같은 변화와 성숙이 일어난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메시지이다.

이 책의 핵심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어떠한 문제보다 마음밭 기경이 먼저이며 마음밭 기경을 통한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 마음이 건강해야 자녀 마음도 건강하다.' - 이것은 내가 건강해야 자녀는 물론 가족과 이웃을 축복의 자리로 인도할 수 있다는 뜻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며 소설책을 가까이했던 저자의 문화 예술적 재능을 드러내듯 필력 있는 문체를 통해 자아를 주님께 맡기는 훈련의 실제들을 보고 배울 기회를 제공해 준다. 쉽게 읽히지만 문장에 끌리는 사람이라면 밑줄 그을 부분이 많은 것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 20160504

 

성경적 자존감이 회복된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주의 교훈과 훈계’로 다음 세대를 양육하도록 ‘가정과 교회에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다.

============================밑줄긋기=========================



사춘기 자녀가 때때로 보이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사실 아주 사소한 원인들과 과정과 증세들이 그동안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 있다가 폭발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족일수록 문제가 곪아 터지고 나서도 그 원인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지뢰가 숨어 있었는지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는 주변에 말 잘 듣는 자녀를 둔 부모들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서 직접 만나 얘기를 더 나누자고 했다. 부족하지만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면 백 번이라도 만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머니를 직접 만나고 나서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 자신이 너무 슬프고 분노하고 절망하는 폭풍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욥의 친구들이 고난 중에 있는 욥을 더 힘들게 한 것처럼, 때로 옳은 말이 상대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일이 될 수 있다. 다만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기도해 주고 하나님께 그녀의 문제를 올려 드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용서는 힘 있는 자가 약한 자에게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다. 하물며 아무리 속을 썩였어도 내 자녀가 아닌가. 자퇴를 했든 퇴학을 맞았든 그보다 더 큰 문제를 일으켰든 먼저 부모가 용서해야 한다. 용서가 문제 해결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아직 홀로서기가 안 된 자녀는 부모에겐 영원히 약자다. 특히 사춘기에 진입한 자녀의 아픔과 고통 앞에서는 부모가 분을 내며 정죄하고 분석하고 판단해선 결코 안 된다.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 기다림만이 자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욥의 친구들이 고난 중에 있는 욥을 정죄하고 판단해서 얻은 것은 하나님의 진노뿐이었다.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정죄하고 분노하고 원망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아픔이 지나가도록 기도해 주며 잠잠히 곁에 있는 것이 옳다.


먼저 고침 받아야 할 사람은 자녀가 아니라 부모다. 우리는 모두 죄 때문에 패배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승리하셨다. 부모가 먼저 예수님께 순종하면, 자녀의 불순종이 뿌리째 뽑혀 나간다.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잔치가 끝나 버린 듯한 빈 항아리 인생들이 예수 생명의 기적으로 차고 넘치기 시작한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자녀들의 불순종과 어리석은 마음, 병든 자존감, 혼돈된 생각들이 성경적으로 질서를 잡아 축복의 그릇으로 자란다.

--- p.22~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카일 아이들먼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끝, 예수의 시작 (The end of me)

카일 아이들먼 저/정성묵 역 | 두란노 | 원제 : The End of Me

 

이번에 두란노에서 출간된『나의 끝, 예수의 시작』은『팬인가, 제자인가』로 이미 한국 교회 10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카일 아이들먼 목사의 신작이다.

책 표지를 보면 <출구를 잃어버린 절망의 시대, 나의 끝이 예수 역사의 출발점이 되다!>라는 카피가 눈에 들어온다. 출구를 잃어버린 시대, 그렇다. TV 채널은 이북의 도발을 염려하는 뉴스들로 비상시국임을 알리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직장인이 7년 치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만 서울에서 겨우 아파트 전세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절망스런 보도를 연발하고 있다. 이 어찌 출구가 보이는 세상인가? 아니, 이 세상에 출구가 있기나 한 것일까? 언제 전쟁이 날지, 어디서 지뢰가 터질 지 알 수 없는 세상, 지구촌 어딘 가에서는 오늘도 지진이 나고, 하룻밤 사이에 대형화재가 휩쓸고 가 잿더미가 된 공장의 영상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대에 떠 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출구 없는 이 세상의 끝이 새로운 시작이 되기도 한단다. 바로 이 세상의 끝에서 예수를 만난 사람에게는 말이다.

이 책은 삶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스토리를 통해 당신도 예수를 만나 새로운 꿈을 꾸고, 예수와 함께 새로운 인생사를 쓸 수 있다고 격려해 주는 책이다. 밑줄 그으며 읽은 문장들을 따라가 ‘나의 끝’이 ‘예수의 시작’이 되는 비결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깨어지지 않고도 온전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이미 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37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당신이 자기가 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38쪽

깨어짐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자신의 깨어짐을 인정하는 것이다. 해결책은 자신의 심령이 완전히 파산해서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유일한 희망은 바로 깨어짐을 인정하는 것이다. -40쪽

세상은 깨진 그릇을 버리듯 깨어진 사람을 무가치하게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영적 세계에서는 깨어진 것이 귀하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깨어짐으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그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깨어짐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24~25절을 통해 공개하는 비결도 기억해 둘만하다. 그것은 1.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 2.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 3. 그분을 따르라. 4. 죽을 각오를 하라, 는 것이다. 이것들은 읽기는 쉬워도 참으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들이다.

매일의 삶, 꼴불견의 인간과도 부대껴야하는 일상 속에서 날마다 내 편익을 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좁은 문을 선택하는 훈련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조차도 온전히 용서하고 나에 대해서도 온전히 죽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우기 자아의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야 하는 일이다. 그렇게 날마다 나의 끝에 이르는 삶이 내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내게서 버려진 단어의 무덤을 보았다. 외양만 그럴 듯한 ‘건강’이란 낱말. 날마다 현미밥을 일용하고, 산길을 오르내리고, 병원을 오가고···외적으로 나는 건강을 위한 노력을 하는 듯 보이지만 내 속엔 건강에 대한 기대, 기도가 없었다. 연못가의 서른 여덟해 된 중풍병자처럼 내 오래된 질고에 대하여 나는 어느 덧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그 증거는 바로 건강에 대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조용히, 남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는 환자로 게으르게 살며 ‘체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체념해 버린 ‘건강’이란 낱말을 이 책의 행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이 책의 저자, 카일 아이들먼 목사는 ‘내 힘으로는 일어나 걸을 수 없다.’는 오래된 병자의 무력감에 대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 준다. 영적 세계에서는 깨어진 것이 귀하고, 깨어진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운 능력이 드러난다고. 그리고 우리의 깨어짐, 무기력이 아무 소용없는 고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로 나아가도록 격려해 준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신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의 말! 내 버려진 단어의 무덤 속에서도 부활해야할 말이었다!

일어나라. 믿음을 갖고 순종하라. 네 거적에서, 네 동굴에서, 네 십자가에서, 네 절망에서 일어나 다시 걸어가라. 아직 늦지 않았다. 아니,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시간이다. 바로 지금 주님이 당신을 만나고자 하신다. 무기력한 현재의 삶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 없다. 그저 도움을 요청하라. 무력할수록 더 좋다. 무력할수록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도움에 더 마음을 열 테니. 나의 끝이야말로 주님이 나를 만나 주시는 지점이다. --167쪽

내 거적을, 내 동굴을, 내 절망을, 내가 정말 벗어버릴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아직 늦지 않았다! 그저 도움을 요청하라, 무력할수록 더 좋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 『나의 끝, 예수의 시작』의 저자 카일 아이들먼 목사를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그동안 오래된 질고를 이유로 체념하고 포기했던 일을 용기내어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건 유년주일학교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일이다. * 20160215

우리는 깨어지지 않고도 온전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이미 깨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37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당신이 자기가 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느냐 하는 것이다. -38쪽

깨어짐에 대한 유일한 해법은 자신의 깨어짐을 인정하는 것이다. 해결책은 자신의 심령이 완전히 파산해서 아무것도 내놓을 게 없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유일한 희망은 바로 깨어짐을 인정하는 것이다. -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수, 내게 묻다 - 모든 질문의 답인 예수를 만나다
김지철 지음 / 두란노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예수, 내게 묻다] 서평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각국의 기자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특별히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무엇이든 물어보라며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아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된 영상을 보았다. EBS에서 재편성해 만든 이 영상자료는 질문이란 낱말의 개념조차 모르는 듯한 우리나라 ‘언론사 기자’라는 엘리트 집단의 실상과 이런 엘리트들을 만들어낸 우리나라 교육 풍토의 허점을 짚어내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두뇌를 자랑하는 유태인의 교육방법은 바로 끊임없는 질문이고, 부모들은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오늘은 선생님에게 무엇을 질문했는지를 묻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질문해야할 때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내면을 목격한다. 자신의 무지가 드러날까 봐, 여러 사람 앞에서 실수할까봐, 혹은 상대가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일 때 행여 질문하는 행위가 그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아닌가하여 더욱 도사리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질문은 행여 질문자의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 될지라도, 실수처럼 보이는 행위가 되더라도, 용기 있고 솔직하게 해야 할 행위이다.

이 책은 예수님과 나, 나와 예수님간의 질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종종 우리는 기도하며 예수님의 뜻을 물을 때가 있다. 그런데 내 질문이라는 것이 내 입장, 내 생각에 갇혀 주님의 뜻이기보다 나의 뜻일 때가 많은 것이 문제이다. 나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예수님께 묻고 또 물었던 것이다. 그런 때 아무리 묻고 물어도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라면 나에게 어떻게 질문하셨을까?’하고 되돌아본다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입장, 나의 생각으로 점철된 질문보다 예수님의 입장, 예수님이 내게 던질 질문이 바로 우리가 찾아가야 할 답이기에 그렇다.

이 책에서 ‘사람들의 부족함을 안아줄 수 있겠니?’ ‘내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워?’ ‘회개할 용기가 있니?’ ‘나와 함께 기도해 주겠니?’ 등 소제목으로 보이는 질문의 내용은 나의 영성을 돌아보게 하는 것들이다. 내가 예수님과 더불어 동행하고 있는지, 말씀을 일상에 적용하며 살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들. 직면한 문제에 대해 내가 살아있는 일방적인 질문으로써가 아니라 내가 사라진 ‘예수님의 마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보아야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인생의 돌풍을 정면 돌파하는 방법,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바다 위에서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 하시나이까” 하고 아뢰었듯 예수님께 묻기, 즉 예수님을 깨우는 일이다. 인생의 돌풍 앞에서 왜, 라고 묻기보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 주님의 마음으로 물으며 성령의 파도타기를 훈련하자. * 20160321

사람들의 부족함을 안아줄 수 있겠니?’
내가 있는데 무엇이 두려워?’
회개할 용기가 있니?’
나와 함께 기도해 주겠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