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남의 집 - 전월세의 기쁨과 슬픔
이윤석.김정민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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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대의 걱정과 생각을 잘 담고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특이한 집 거래 방식이 있다. 바로 전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세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세를 풀어서 보면
입주할 때 일정한 금액의 돈을 내고, 나갈 때 돈을 돌려받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돈은 하나도 사용하거나 사라지지 않고 임대 기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내가 어떤 물건을 사더라도 분명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법칙이다.
하지만, 집만큼은 돈을 하나도 내지 않아도 된다. 단지 돈을 빌려주었다가 나중에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즉,
전세라는 것은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돈이 부족할 때 돈을 빌려주고,
돈을 빌려준 대신 이자 대신 거주의 권리를 사는 것이다.
그래서 전세는 소비활동이 아니고 금융활동이다.

이런 식의 집 거래 방식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부동산이 끊임없이 오를 것이라는 믿음과
부족한 자금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망이 합쳐져 만들어진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부동산 거래 형태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방식이 위기에 처해있다.
부동산이 끊임없이 오르는 시기가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보유하기만 하면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다는 부동산 성장 불변의 법칙이 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줄어들면서
집을 바라보는 태도도 바뀌고 있다.

이전에 집을 선택할 때는 얼마나 오를 수가 있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면,
이젠 얼마나 자신의 주거 형태에 맞는 집인지가 중요해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더욱 그렇다.

현재의 모습과 가치에 맞는 모습을 찾아가고자 하는 젊은 층의 가치 실현 욕구는
부동산의 가치가 아닌 주거의 가치를 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즐거운 남의 집'이라는 책이 나오는데 이르렀다.
변화하는 가치의 세대가 바라본 집의 모습은
단순히 집에 대한 책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 속에서>
"사람들을 집에 부르는 이유가, 집에 계속해서 녹을 쌓아가듯이 추억을 쌓아가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려는 거야. 그게 내가 가진 전부니까." 22p
심장에 쿡하고 이 문장이 들어왔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큰 것, 그리고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 그것은 집일 것 같다. 집은 내가 가진 것 중 거의 모든 것을 넣을 수 있다. 심지어 나까지 들어간다. 차와 함께 나를 넣을 수 있는 것은 집뿐이지 않을까 싶다. 정말 집은 내가 가진 것 중 거의 모든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이야기는 우리 뼈에 새겨진 본능이자 인류가 가진 가장 위대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만들고 품는 곳 집,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집은 우리를 품는다.


그 집에 산 3년 동안 망원동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집값이 많이 올랐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불길한 소문이 돌았다. '그 집은 전세가 1억이나 올라서 이사 가야 한데' 혹은 '반지하인데 전세 3억이래!'같이 역병처럼 흉흉한 이야기들이었다. 58p
재미있어서 적었다. ㅋㅋㅋ 요즘 계속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다른 책처럼 딱딱하게 쓰지 않아도 되지 않나? 내 스타일대로의 글을 써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쓰는 것도 아니고 내 글을 쓰는 건데 읽기 편하고 재미있게 써도 법에 걸리지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글들이 좋다. 집값이 오르는 것을 역병에 비유해서 웃음을 만들 수 있는 이런 글들이 좋다.
글이 어려울 필요는 없다. 말이 어려운 사람은 멀리하게 되는 것처럼 글이 어려우면 책도 멀리하게 된다. 나는 교수님 같은 사람보다 동네 친구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드루와 드루와. 내 글보러 드루와.


옛날부터 형광등은 눈치가 너무 없었다. 눈치 없는데 열심인 스타일이었다. 예를 들면 방 한가운데서 효율적이고 공평한 빛을 비추는 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파랗고 맹목적인 눈빛으로. 136p
생각해 보니 형광등은 그렇다. 한자리에 지키고 서서 온몸을 쥐어짜며 어떻게 해서든 수명이 다할 때까지 밝게 빛나려고만 노력을 한다. 그 외에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조도를 조금 내리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사진을 찍으려고 그림자를 치워보려 해도 뽀족한 수가 없다. '너 좀만 움직여봐'라고 말하고 싶지만, 결국, 사진은 그림자 있게 찍히고 만다.
누워서 책을 보다가 불을 좀 끄고 싶을 때 알아서 꺼주면 좋으련만, 잠들만하면 불을 끄기 위해 꼭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동시에 잠도 달아난다. 형광등이 좀 움직여주면 좋으련만. 박수 치면 불도 꺼주고.



책이 참 재미있다. 뭐랄까? 독립출판물 같은 책 느낌이다. 기성 책보다는 좀 작고 홀쭉하며, 안에 간지도 많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내용이 이전의 책과는 다르다. 조금만 읽어봐도 MZ 세대가 쓴 느낌이 난다. 재미있으면서도 그 나이 때에 맞는 깊이가 있고, MZ 세대가 바라보는 집에 대한 생각과 삶의 형태가 너무도 잘 표현되어 있다. 기성세대, 마흔이 넘는 사람이 이런 책을 썼다면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런 느낌의 글이다. 많은 책을 봤지만 이런 느낌의 책이 참 신선하고 유쾌하다.
다산북스의 책은 항상 믿고 보는데, 지금까지 봐왔던 다산북스의 책과는 결이 다르다. 좋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다르다는 뜻이다. 이 책을 기획한 기획자는 누구일지 궁금해진다. 다른 책을 만들던 사람이 좀 특이한 책을 만들게 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기획자가 새로운 생각으로 새로운 책을 만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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