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살기 힘들까 - 삶이 괴롭기만 한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미나미 지키사이 지음, 김영식 옮김 / 샘터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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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살기 힘들까』라는 책입니다. 일본의 스님이 쓴 삶과 죽음에 관한 얘기입니다. 보통 스님이 쓴 책들을 보면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만 구도자의 입장에서 중생에게 그 이야기를 다 해봐야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로 설명하기도 불가능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조금 다르네요. 하지만 불교의 색채, 스님으로써의 입장에서 얘기했다기보다는 현시대를 같이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한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이 강한 불교서적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책입니다. 근데 너무 개인적인 입장에서 치우친 것 아닌가 싶긴 합니다. 이게 보편적인 불교의 생각인지도 명확히 나와 있진 않습니다.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는 합니다.


 

지은이
미나미 지키사이
1958년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다. 1984년 조동종에 출가해 20년간 수행 생활을 했다. 현재 후쿠이현 레이센지의 주지이다. 저서로 『말하는 선승』, 『일상생활 속의 선』, 『'물음'에서 시작되는 불교』, 『노스승과 소년』 등이 있다.

구성
1장 왜 이렇게 살기 힘들까
본인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들 삶의 대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와 있다.

2장 저세상은 있는가
있다 없다라는 얘기보다는 삶과 죽음 태어남은 그것은 하나의 현상이라는 것.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애매한 말로 얘기하고 있다.

3장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를 찾는 것은 답이 없는 답을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어진 삶이고 과 관계 속에서의 나만 있을 뿐이다.

4장 지금 여기에 사는 의미란
본인이 좋다고 인정하는 삶을 살아라. 선택권은 본인에게 있다.

5장 부모와 자식의 깊고도 괴로운 인연
부모와 자식 관계는 다른 인간관계처럼 어떤 '약속'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6장 인간관계는 왜 괴로운가

7장 힘든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비판하라

8장 삶의 기술로서의 불교
하루 5분 평생 좌선을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책 속에서

거듭 말하지만, '나다', '죽다'가 무엇인지 우리는 원리적으로 알 수 없다. 이것은 경험 가능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59p
불교에서는, 천국에 가나 지옥에 가나 똑같고, 어느 세계라도 결국 그곳에서 벗어나는지 못하는지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한다. 70p

당연히 그럴 것이다. 가본 사람이 없는데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대목에서 좀 진이 빠지기는 했다. 불교의 수많은 교리에서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해 연, 기에 대해 많은 얘기들이 있고 20년 수행을 한 스님이라면 분명 자신만의 논리가 근거를 가지고 계실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차라리 이런 대답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 자꾸 물어보는데. 아무도 다녀온 사람이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 것이며, 뭘 논의를 하려고 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다. 왜 가보지도 못하고 가볼 수도 없는 세상을 계속해서 얘기를 하고 결론을 내리려고 하는가?
그것 말고도 살면서 알아야 하고 집중해야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결국 답이 없는 현상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삶에 더 충실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나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왜 꼭 스님은 그걸 알아야 하는가? 스님도 죽어본 적이 없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 분인데.

불교에서는 삶이나 존재 일체를 '고苦'라고 부른다. 자신은 의지에 상관없이 그저 주어진 것으로 '고苦' 그 자체이다. '진정한 나'는 '주어진 나'에 대한 위화감이 낳은 환상이라 할 수 있다. 100p

책에서는 '나 찾기'를 자기 안에서 찾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한 자학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주어진 것이고, 삶은 '라고苦'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고 삶은 '라고苦'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 진정한 나를 찾아내는 것이 자학이라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씨름하려 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불교에서 배운 것은, 사람은 살아 있으면 즐겁고 기쁘고 좋은 일보다는 괴롭고 안타깝고 슬픈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우선의 대전제가 된다.

내가 항상 제일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삶에 기쁘고 좋은 일보다는 괴롭고 안타까운 일이 많다는 것 즉 '고苦'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불교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고 이념인데 정말 인생은 '고苦'로 이루어진 것인가? 즐거움이 더 많거나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 삶을 돌이켜보면 즐거움도 있었고 괴로움도 있었지만 그 괴로웠던 시간이 즐거움보다 더 큰 괴로움이었나 하고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삶이 '고苦'라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여기에 대해서 저자의 답변은 하기와 같다.

"왜 자살하면 안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자살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는 승려이며 불교의 계율에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왜 자살하면 안 되는지 이치로 설명할 수 없으므로 불교에서는 계율로 정해놓았다. "석가가 결정했으니까" 혹은 "신이 정했으니까"로, 근거는 그것뿐, 그것에 따를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자살은 나쁜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받으실 그렇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에게는 선택지로서 그것이 있다. 자살의 선택지도 갖고 태어났다. 134p

하지만 이 답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인생이 '고苦'로 이루어져 있다면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어차피 윤회를 할 것이까 좋은 공덕을 쌓아서 해탈을 하고 인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현세에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 그것만으로는 '고苦'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사는 이유의 대전제는 인생은 '고苦'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라고苦'라는 불교의 개념은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살던 시절 지금으로부터 이천 년 전에 삶이 '고苦'였다고 본다. 이천 년 전에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기아, 굶주림, 질병, 전쟁으로 얼룩진 고대사회에는 인생에서 '고苦'의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석가모니'가 얘기한 인생의 대전제'고 苦'라는 뜻은 그 당시에 적용되고 현재는 그것과 거리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언제 기회가 되면 스님을 찾아가 이 문제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기는 하다.


부모·자식 관계는 다른 인간관계처럼 어떤 '약속'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여기라면 확실하겠다는 '있을 곳'은 세상에 없다. 가정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항상 스스로 있을 곳을, 살아갈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 외에 길은 없다. 자기 부담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할 것. 부모가 자식에게 해야 할 일은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 이해가 안 가는 내용이다. 부모·자식의 관계가 '약속'에 불과한가? 그럼 형제자매들끼리의 관계도 약속에 불가한가? 그보다 더 이상한 건 '나는'이라는 단어이다. 불교의 몸담고 있는 스님으로서의 교리에 의한 생각이 아니고 단순히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얘기인가? 아니면 번역의 오류인가? 왜 '나는'이라는 것을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내용을 보면 지극히 개인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본인의 생각을 단 부분들이 많은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한 부분들이 많다. 불교의 입장으로서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한 사람으로서 불교라는 종교와는 상관없는 입장을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떨 때는 너무나 개인의 입장처럼 보이지만 어떨 땐 불교의 교리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얘기할 때도 있다. 그때그때 판단의 기준이 변하는 것인가? 글을 읽는 사람으로서 좀 난감하긴 하다.

요즘 샘터의 책들을 보며 특히 단행본을 보면서 실망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솔직히 좀 별로다. 나는 일본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선 논리가 상당히 개인적이고, 보편타당한 근거가 마련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에게만 적용되거나 본인만의 생각을 써놓고 한번 해보면 나처럼 될 수 있다는 그런 개인적인 삶의 모습들을 그려놓은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책 또한 그렇다. 20년 수련을 했다는 스님의 '나는 뭐라고 생각한다'라는 말로 개념은 자신만의 것이라는 말로 한정하면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은 뭐라고 생각할지 교단에서는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극히 자신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는 어쩌면 일본의 책을 쓰는 방식 혹은 문화의 차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편타당한 만인이 아는 것에 대해서 책을 쓰는 다른 나라의 모습과는 달리 보편타당하진 않을지라도 특정한 독자, 자신의 스타일과 비슷한 사람들에게만 맞춤형 사상과 지침이라도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만의 특색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책을 만드는 이유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는 한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나를 겨냥한 책이 아니라 대부분 안 맞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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