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 인문여행 시리즈 1
허경희 지음 / 인문산책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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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행자들의 성지, 여행의 종착역. 인도는 참 많은 이름으로 여행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모든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그 중에서도 인도는 특히나 아는 만큼만 보인다. 그만큼 여러가지를 배울 수 있는 곳이고 많은 걸 준비할 필요도 있는 곳이다.
'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은 그런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고, 준비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인도를 방문하게 되면 읽지 않은 사람과는 다른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어과를 졸업하고, 5년 동안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20대 후반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자와할라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에서 인도사로 석사학위를 마쳤고, 귀국 후 단행본 출판사에서 10년동안 기획편집자로 활동했다.

나도 인도 주재원 생활만 2번 4년 넘게 인도에 있었다. 첫번째 주재원때 인도 안에서 비행기를 100번 넘게 탔다. 거의 1~2주에 한번씩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인도는 나에게 각별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은 인도에 왜 가고 깊어 하는가? 인도에 가서 무엇을 얻어 올 수 있는가 '인문학으로 떠나는 인도여행'을 통해 인도를 먼저 만나보기를 바란다.

지도를 보면 인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인구만 13억이다. 실재 인구수는 아무도 모른다. 인도는 주민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출생신고를 안하고 사는 경우도 상당해서 인구집계보다 실 인구수는 훨씬 많다.
사진을 보면 인도는 우측으로는 중국에서부터 서쪽으로 파키스탄까지 엄청나게 큰 국가이다. 인도사람들에게 우리나라는 500km면 북에서 남까지 간다고 얘기하면 웃는다. 내가 많이 들었던 얘기는 너희처럼 그 작은 나라에 어떻게 삼성, 현대, 엘지같은 큰 업체가 그렇게 많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말 작은 나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 다른 나라를 볼려고 하는데 땅이 큰 나라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우리의 개념에서는 도저히 상상해 낼 수 없는 부분들이다.
인도 공용어로 인정된 언어만 10가지가 넘고 지역별로 영화를 따로 만들고 사람들의 생김세는 완전히 다르다. 쉽게 생각해 인도에는 티벳인처럼 생긴 사람도 있고, 우리가 흔히 아는 인도 영화배우처럼 생긴 사람도 많고, 정말 까만 피부를 가진 사람도 있다. 문화 천차만별이다. 음식도 지역별로 다르다. 신문도 여러 언어로 되어 있다. 인도 남부가서 힌디어를 쓰면 대부분 못 알아 듣는다.

카스트 제도
21p 카스트의 지위는 각 지방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사회적 이동도 가능하지만, 상호 관계는 세습적으로 결정된다.  카스트는 지역적이고 특별한 직업과 연관되어 있는 만큼 다른 카스트 집단과의 결혼은 금지된다. 카스트 제도는 네 계급
브라만 Brahman(사제 계급), 크샤트리야 Kshatrya(군인, 또는 정치적 지배 계급), 바이샤Vaisyas(농공상인), 수드라 Sudras(노예 계급)로 나누어진다. 카스트 제도가 성립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아리아족이 인도에 정착한 베다 시대에 피정복민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 지금은 법적으로 카스트제도는 없어졌다. 하지만 수천년동안 내려온 카스트제도가 하루 아침에 없어 지겠는가? 카스트 제도는 저자의 말처럼 아직도 인도인을 쫓아 다닌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는 지역에의해, 돈에 의해, 학벌에 의해 사회적 카스트제도마져 생기고 있다. 차를 따르는 사람은 청소하는 사람의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같은 과장이라고 할 지라도 같이 밥을 안 먹는 경우도 있다. 계층차이가 몸에 베어 있어서 다른면에서도 상하관계,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명확하고  하는 것들이 나눠져 있다. 인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카스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힌두와 무슬림
38p 오랜 역사 속에서 보면 힌두와 무슬림은 하나였다. 하지만 200년의 영국 통치는 인도를 힌두와 무슬림의 나라로 쪼개놓았다. 영국에 대한하는 인도 민족주의의 성장으로 1883년 국민회의가 탄생하게 되었다면, 또 하나는 새로운 흐름으로 무슬림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한 무슬림연맹이 1906년에 형성되었다. 1929년 간디는 국민회의 지도자로서 네루를 지목했고, 진나는 무슬림 민족주의를 이끌고 있었다. 이후 디 두 흐름은 1935년 선거에서 결정적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중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46년 국민회의와 무슬림연맹의 갈등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극민회의와 무슬림연맹의 교착 관계를 깨기 위한 모든 회담은 시래로 돌아가고, 결국 초대 수상 네루는 1947년 영국 측이 제시한 힌두 정권과 무슬림 정권의 분리 독립안에 동의함으로써 힌두 정권이니 인도와 무슬림 정권인 파키스탄으로 분리된다.
>> 아직까지도 인도와 파키스탄의 경계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잘 모르지만 테러도 일어난다. 10여년 전에는 델리(수도) 한복판에서 3개의 폭탄을 터트린 경우도 있었다. 빠하르간지시장은 화약냄세로 뒤덮히고, 수십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했고,  모든 유리창은 깨졌다. 30분 후에는 지하철역, 또 30분 후에는 버스정거장에서 잇따라 폭탄이 터졌다.

배우자찾기 광고
42p 최근 인도  사회의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신문광고의 배우자 구인난을 볼 수 있다. 이 구인난을 통해 보면 인도 남녀에게 있어 이상형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로 인도 사회에서도 남자들은 얼굴이 하얗고 예쁜 여자를 찾고 있으며, 여자들은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를 찾고 있다. 하지만 계급 사회답게 같은 카스트여야 함이 전제조건이다.
>> 참고로 종교와 종파도 같아야 한다. 같은 힌두교라고 다 결혼하는 것은 아니고 종파도 같아야 한다. 주류 신문을 펼쳐보면 2p이상은 결혼상대자를 찾는 광고이다. 실제로 그런 광고를 통해 배우자를 찾는 경우도 많다. 이제는 연예결혼도 많아지기는 했는데 아직도 70%이상은 부모님이 정해주는 혼처와 결혼을 한다. 그렇다고 연예를 안하는 것은 아니다. 연예도 많이 한다. 다만 그 연예상대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다. 연예는 연예일뿐 결혼은 다른 사람하고 하겠다고 생각하고 만나는 경우가 많다. 연예결혼의 경우는 어느정도 만나고 그 사람과 결혼할 생각이 들면 부모님께 서로 말씀드려 양가에서 괜찮다는 얘기에 서로 합의하면 연예결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문화도 우리나라처럼 그저 결혼전 상경례와는 다르다.

재혼
51p 법률적으로 재혼은 허락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도의 법과 현실의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여성을 재산과 순결의 잣대로 본다. 여성에 대한 물적 접근인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힌두 전통 시스템 아래에서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 이 브라만 남성들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사촌 간의 결혼을 제도로서 받아들인다. 고대부터 내려온 이 제도는 오늘날까지 강고한 힌두 브라만 계급의 가족제도를 형성한다. 

'사티Sati' 풍습
53p '사티Sati'라는 풍습은 분명히 비인간적이다. 사티는 사암한 남편을 화장하는 장작더미에 살아 있는 부인을 함께 화장시키는 풍습니다. 이것의 기원은 과거 한 미망인이 죄를 정화하는 불꽃을 통해 죽은 남편과 재결합하기를 열망하여 행한 '자발적' 행동이었다. 한 여인의 고귀한 사랑의 존재 형태로 아라려져 온 풍습이 현실에서는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난다.  만약 이민족이 침입하여 여성들을 겁탈하게 되는 경우 여성들은 자신의 순결을 지키기가 어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철정한 가부장제도에 의한 여성의 일방적 희생이다. 남편이 먼저 죽었을 경우, 그들의 재산은 미망인에게로 돌아간다. 당연히 시댁에서는 아들의 재산이 처가로 유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럴 경우 미망인은 고귀함이란 허울 아래 남편과 함께 장작더미에서 태워졌을 것이다. 이 제도는 19세기에 이르러 서구 세력인 영국에 의해 폐지되었다.

 

>> 인도는 나라가 큰 만큼 아름다운 무덤과 성들 및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왠지 타지마할과 비슷하지 않는가? 무굴제국 4대 황제 자항기르의 아내의 무덤이다. 이 아름다운 무덤은 타지마할에 영감을 주었다고 하며, 최초의 대리석 무덤이다.

빛의 축제 디왈리
64p 디왈리 전설은 '라마야나'에서 시작한다. '라마야나'는 세계에서 가장 긴서사시로 힌두 문학을 대표한다. 그 기원은 기원전 3세기경 시인 발미키Valmiki에 의 편찬된 '라마 왕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격렬한 전투와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이야기한다. 오늘날 '라마야나'에는 2만 4천편이 넘는 시가 존재하는데, 인도인들이 가장 사람하는 문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아요디아 Ayodhya의 왕자 라마 Rama는 비데하의 공주 시타Sita와 결혼했다. 비록 라마가 정당한 왕의 계승자였을지라도 그의 아버지는 젊은 아내의 아들을선호하여 라마와 시타, 그리고 그의 형제 락슈마나Rakshmana를 멀리 추방해버린다. 왕에 의해 쫓겨난 그들은 14년 동안 숲속에서 피난처를 구해 거기에서 은둔자로 살았다. 그러던 중 시타는 랑카(스리랑카)의 악마 왕인 라바나Ravana에 의해 납치되고, 라마는 원숭이 신 하누만의 도움을 받아 납치된 그의 아내 시타를 구출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타지마할
107p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 뭄타즈 마할(1593~1631)의 죽음을 슬퍼한 샤 자한(1592~1666)은 그래를 위해 아름다운 묘지를 22년에 걸쳐 만든다. 그들은 뭄타즈 마할이 15세에 시장에서 처음으로 만나 서로 사랑에 빠졌다. 그들의 사랑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 그리고 19세의 나이가 되어 샤 자한과 결혼한 그녀는 일생을 남편을 위해 헌신하면서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샤 자한은 그녀와 함께 모든 국가 문제를 의논했으며, 심지어 전쟁터에까지 왕비를 데리고 갈 정도였다. 

카마수트라 & 카주라호
127p 카주라호에 있는사원들은 1000년 찬데라 왕조의 한 세기 동안 건설되었다. 당시 무슬림과 히두의 피비린내 나는전쟁의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비참한 죽음을 보았고, 김픙 슬픔에 빠졌다. 이에 한 브라만 사제는 그들을 위로할 무엇인가를 찾았던 것 같다. (중략) 이 사원의 에로틱 석상들은 굽타 시대(320~550년)쓴 사랑의 지침서 '카마수트라Kamasutra'에서 상상력을 빌려 왔다.(중략) 당시 이 지역에는 80여 개의 화려한 에로틱 힌두 사원들이 건설되어졌지만, 오늘날에는 단지 20여개의 힌두 사원들만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힌두 유적들이 무슬림의 침입으로 사라ㅏ졌는데, 다행히 이곳은 지역적으로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그 피해를 벗어났다고 한다.
>>보기에는 그냥 에로틱한 장면인 것 같지만 당시는 몸을 바르게 사용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중의 하나이자 중요한 부분이 성관계라고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 중요성으로 인한 바로 앎의 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콜카타
244p 19세기 말에는 뱅골 르네상스 운동으로 영국과 인도 문화를 결합한 새로운 도시 중산 계층이 생겼지만, 수도를 델리로 옮기면서 콜카타는 급격히 쇠락하였다. 더군다나 독립운동 중에 불거져 나온 힌두와 무슬림의 갈등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되면서 400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밀려들면서 콜카타는 빈미니가로 변하게 되었다.

바라나시 갠지스 강

 

254p 갠지스 강을 사이에 두고 버닝 가트에서는 매일 시신을 태우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매장 풍습과는 달리 이 풍습은 고대 베다 시대부터 굳어진 독특한 힌두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풍습이다.
266p 바라나시는 인도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본래는 카시Kadhi(빛의도시)로 불렸다. 불교 문헌인 '자카타'에서는 이 지역 최초 왕국의 이름이 카이시고, 바라나시는 이 왕국의 수도였다고 전한다. 인도의 문헌 '푸라나Purana'(산스크리트어로 '오래된 이야기'를 의미함)에서는 이 도시가 바루나Varuna와 아씨Assi강 사이에 있어 바라나시Varanasi로 불렸다고 한다. 이 오래된 문헌들로 추정해보면 바라나시는 3000년 이상의 역사를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힌두교의 전신인 고대 베다 종교가 탄생했다. 

>> 지금으로부터 10년전쯤에 incredible India라는 슬로건이 생겼다. 이 단어가 정말 인도와 잘 맞는 단어다. 인도는 그 어떤 말로도 규정 지을 수 없다. 인도에 1달 다녀왔다고 인도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한달이면 북부관광지만 그냥 돌아다녀도 빠듯하다. 인도는 정말 지역별 계층별 직업별 차이가 엄청나다. 한 지역안에서도 우리나라의 1960대에서 현재까지 모든 시간이 공존하는 것 같은 곳이다. 단순히 하나로 설명할 수가 없다.
인도여행 1달 미만으로 갈려면 가지 말아라. 더러운 것만 보고 온다. 그리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틀린 말만 계속한다. 옆에서 보기 참 민망하다.
1달이상 갈 생각이고, 당신이 생각하는 관념들 산산히 부서트리고 싶다면 한번 가봐라. 당신을 송두리째 들었다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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