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른 침실로 가는 길
시아 지음 / 오도스(odos) / 2021년 2월
평점 :
[푸른 침실로 가는 길] - 시아
장편소설이라는 글자만 보고, ‘오랜만에 소설이나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펼쳐보니, 앞부분은 단편소설 느낌이랄까. 참고로 나는 단편소설을 싫어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며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어쩌다 이 책이 내게 왔을까 하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었다.

책의 주인공은 한 여자이다. 꼬꼬마 어린시절부터 장성한 딸을 시집보낼 때까지의 한 여자의 인생을 다루었다. 여자는 자라는 환경이 썩 좋지 못했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했으며, 그로인해 자살이 꿈일 정도였다. 또한 어린 나이에 비해, 죽음을 경험할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을 많이 접해야했다. 또한 여자는 성희롱과 성추행 등에 노출되는 횟수가 참 잦았다. 성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 주위엔 나쁜 생각을 품은 남자들이 참 많았다.
죽음과 관련한 사건들이나 변태 같은 남자들을 겪어내는 주인공을 보며, 내가 살아온 삶이 저절로 생각났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갈망했는가. 얼마나 많은 변태들을 겪어봤는가. 지금은 변태를 만났던 일들을 썰로 풀어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지만, 그 당시엔 얼마나 충격적이고 무섭고 화나고 분노했는가.
주인공 여자는 어쩜 인생에 있어서 저런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여, ‘지 팔자 지가 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하다. 그런 생각과 동시에, 감히 내가 그 선택에 대해 비난할 수 있는 지 생각도 든다. 그녀의 인생은 애초에 험난했다. 어려운 집안 경제 사정에 폭력적 성향의 어머니. 어머니의 반복되는 폭언은 그녀를 절벽으로 들이밀었고, 그녀는 그 절벽 끝에서 탈출하기 위해 눈에 보이는 동아줄을 당겼을 뿐이다. 동아줄을 당길 때는 그것이 닳고 닳은 썩은 줄인지 튼튼하고 기댈 수 있는 줄인지 알 수 없다. 힘들게 올라가고 나서야, 모든 걸 겪어내고 나서야 판단이 가능하다. 반복되는 동아줄 당기기에서 그녀는 매번 실패를 맛봤다. 어쩜 그리도 실패의 동아줄을 잘 골라내는지.
계속 썩은 동아줄만 당기다 그녀의 인생이 끝이 났다면, 이 책의 결말과 함께 나는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물도 김치도 우유도 없는 뻑뻑한 고구마를 먹다가 죽어버리는 질식사처럼 말이다. 다행이 그녀는 ‘문학을 추구하는 감성’이라는 동아줄과 ‘간호학과를 졸업하여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튼튼한 동아줄도 잡았다. 단 두 개의 튼튼한 동아줄만으로도 그녀는 철벅거리는 진흙탕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여자는 그냥 눈 딱 감고 죽어버려도 좋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결국엔 빛을 스스로 찾아냈다. 어쩌다 이 책이 나에게 왔을까. 내 상황을 대변하는 듯한 이 책이 어쩌다 나에게 왔을까. 자꾸만 되뇌이게 된다.

Ps. 이 책의 추가적인 생각을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단점으로 비춰질 수 있어, 이 글을 보는 작가나 출판사는 억울할 수 있겠다. 그래도 적어야겠다. 이 책에 그리고 작가에게 애착이 생기니까 말이다.
1. 책의 초반에는 단편소설로 착각할 정도로 에피소드들의 시간대가 뒤섞여있다. 뒤로 갈수록 일련의 사건들이 시간순으로 배치되어, 앞부분의 에피소드들을 다시 이해할 수 있다. 작가가 일부러 그렇게 배치한 의도가 있겠지만, 문제는 독자는 그 이유를 책 속에서 찾을 수가 없다. 초반의 시간대를 뒤섞은 이유가 뭘까.
2. 간증과 관련한 부분이 나온다. 작가는 기독교인인가? 천주교에 적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들어본 적 있고 이해할 수 있지만, 요즘처럼 종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기독교적인 내용에 일반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이 책을 읽고 발길을 끊었던 성당에 다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작가가 소설 속 변태새X들을 좀 더 응징해주었으면 좋았을 걸. 여자는 비정상적인 상황에 뇌가 안드로메다로 빠져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미X놈들에게 그저 도망다닐 뿐이다. 움츠러들고 혼란스러워 할 뿐이다. 물론 그녀의 제스처가 이해는 간다.
내 경우엔 정말 어떤 행동을 취하지도 못하게 휙 지나갔던 사건이 아니고서야, 나는 째려보고 썅욕하며 능욕하고 힘이 장사인 우리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고 경찰차를 부르고 형사도 대면하게 해주며, 아주 갖은 방법으로 다양한 변태들을 엿먹여줬다. 돌이켜보면 참 통쾌했는데… 뭐, 이건 개인적인 내 성격일 뿐이다. 실제로는 대부분의 여자들이 내색도 못하고 주인공처럼 어버버하며 당하고서도 아무 말도 못한다. 제대로 된 현실 반영 소설인가. 적다보니 화가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개 같은 새X들에겐 엿을 먹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