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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 -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앤 마크스 지음, 김소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8월
평점 :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나요?
저는 요즘 사진 찍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요~^^
사진을 찍으면서
하늘이 보이고
길가의 풀꽃도 보이고
해가 뜨고 지는 것도 보이고
계절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진과 함께
세상을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보게 됐다고 할까요.
사진을 배워 본 적도 없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시인의 가슴과 눈이 필요하다는 말의 뜻은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이렇게 사진의 매력에 빠져 있는 저에게
보모 사진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바로 이 책
<비비안 마이어>를 통해서요.
이 책은 비비안 마이어의 행적을
적은 기록입니다.
비비안 마이어가 살아생전에
유명한 사진작가가
아니고 오히려 고립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녀의 일생을
기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걸
책을 읽다보면 느낄 수가 있었어요~
비비안 마이어의
어린 시절은 불행 그 자체 였습니다.
어머니는 불안정하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폭력적인 알코올중독자였습니다.
결국 부모의 이혼으로
비비안은 외할머니 손에 자라게 되고
비비안의 오빠는 친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됩니다.
비비안의 오빠인 칼 마이어는
성인이 되어 마약에 중독되고
조현병을 앓다가 사망합니다.
이렇게 불행한 가족 사이에서
우울한 어린 시절을 보낸 비비안은
어린 시절 프랑스 샹소르에서 살 때,
어머니가 유일하게 카메라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위상을 즐겼습니다.
이런 사실이 사진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됐을 지 모르겠지만,
스물 네살의 비비안은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과거를 빼앗긴 사람들이
가장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게 된다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요~
비비안의 사진을 보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멋진 신사부터 노숙자까지
거리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성별과 인종, 계급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인식을 가졌던 비비안은
공산주의자 집회, 궁핍하고 가난한 사람들,
다인종 가족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녀가 약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았다는 것이겠죠~
물론 유명인들에게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녀의 사진을 보면,
영화와 유명인, 파파라치 같은 사진에도
진심으로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맨해튼에서 보모로 일하게 된 비비안은
뉴욕의 공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동안
흥미로운 피사체들을 만나게 됩니다.
뉴욕의 공원은
그녀에게 사진 촬영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녀의 사진 중에
뉴욕에서 찍는 사진이 정말 좋았습니다.
당시 뉴욕 거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된 위 사진과
신문 가판대에서 졸고 있는
아저씨의 모습을 찍은 아래 사진을 보면서
감탄사가 나오더라구요~
아~ 사진은 이렇게 찍는 거구나~
라구요~^^
겨울 뉴욕 공원의 사진도
구도가 아주 멋집니다.
사람들의 모습도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배경과 잘 어울려요~
이렇게 사람들의 신체 일부분을
표현한 사진도 흥미롭습니다.
뒷 모습과 맞잡은 두 손 뿐이지만
그들의 사연이 궁금해지는 사진입니다.
비비안은 아이들을 설득해
카메라 앞에 서게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나이나 인종, 배경에 상관없이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을 사진에 담았고
사진을 통해 아이들의 순수함을 표현합니다.
보통 그 시절에는
깨끗하게 씻기고 말끔한 옷을 입히고
행복하게 웃는 모습만을 담았지만
비비안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울거나 짜증 낼 때도
아이들의 진짜 모습과 감정을
다양하게 기록합니다.
그렇다고 비비안이 아이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좋은 보모는 아니었습니다.
비비안은 자신이 돌본 아이들에게
종종 체벌을 가했고,
굳이 부모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당시, 특히 프랑스 시골의
가톨릭 집안에서는 권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연히 체벌은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비비안은 고용주의 규책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가장 좋다고 판단한 일이라면
밀어붙이는 유형의 사람이었습니다.
1954년 여름에 비비안은
새로운 사진 기술을 익히기 위해
보모일을 중단합니다.
이 때 비비안의 촬영기술과 안목이 향상되어
좋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비안이 버스를 타고 가는 순간
찍은 사진으로 추정되는 아래 사진은
수직과 수평으로 강하게 뻗은 선들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어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여인의 시선을 따라가게 만듭니다.
아래는 비비안이 롤라이 플렉스라는
새로운 카메라를 구입하고
얼마 되지 않아 찍은 사진인데,
아버지와 아이들이 걷는 평범한 순간을
물에 비친 그림자와 반사되는 빛으로
그야말로 작품을 찍었다고 표현하고 싶은 사진입니다.
비비안을 알았던 사람들은
그녀를 외계인이라고 말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비비안은 늘 주목받았지만
비비안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비비안을 이해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비비안은 불행한 가정사를 숨기고 싶었고
자신의 흔적을 남기게 되면
가족들이 찾아와 돈을 요구할 수도 있으니,
가장 현명한 방법은 입을 다물고
사람들에게 멀리 떨어져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진이
비비안의 감정 배출구 역할을 한 것이겠지요~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힘들어 했던 그녀가 그토록 개방적이면서
감성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사진을 촬영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기 까지 합니다.
비비안은 점점 정신없이
물건을 모으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특히 신문에 집착합니다.
늘어가는 수집품을 보관하기 위해서
창고를 사용하지만 이용료를
제 때 납부하지도 않았습니다.
81세가 되었을 때는
여러 창고와 그 안의 엄청난 수집품을
처리하지도 않고 보러가지도 않고
사진도 찍지 않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밤이면 수집품이 가득한 아파트에서 지냈습니다.
비비안이 창고에 보관한 물건이 8톤이었는데
이 가운데 사진과 관계가 있는 물건은 얼마 되지 않았고
대부분 책이나 잡지, 신문이 든 상자였습니다.
심각한 저장 장애가 있었던 것이지요~ㅠㅠ
결국 비비안의 수집품은 경매로 넘어가고
입찰자 중 사진 딜러였던 사람이
현상하지 않은 롤 필름을 발견하여
몇 장을 인화하여 온라인에 올렸는 데
그것이 비비안의 작품을 대중에게
알리는 시작이었습니다.
사진의 구매자들이
비비안이 살아 있던 1년 반동안
그녀를 찾기위해 노력했지만
너무나도 은밀하게 살았기 때문에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2009년 4월, 비비안의 부고를 보고
그들이 찾던 사진작가가 보모임을 알게됩니다.
충격적이고 불운한 어린 시절은
비비안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쳐
저장 장애라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지만,
재능과 인간을 그리는 감성만은
살아있었습니다.
비극이라면, 비비안이 대인 관계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녀 생전에
사람들이 그녀의 진짜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고,
재능을 나눌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재능을 발휘해
사진 작품을 남긴 비비안의 이야기를 읽으며
예술가로서의 인생의 고독함과 연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이
열리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직접 가서 관람하셔도 좋을 듯하네요~
저도 직접 가서 비비안의 사진을
꼭 보고 싶어요~
사진 촬영은 지정된 곳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는데
직접 다녀오면 후기 남기도록 할게요~^^
인생이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아니에요.
인생은 희극이에요.
그냥 웃기만 하면 돼요.
- 비비안이 고용주에게 한 말
비비안 마이어 P.135
*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을 후
읽고 쓴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