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부르주아지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사회 계서제를 유지하여 자신들보다 아래에 있는 계급과 분명하게 구별되기를 바랐다. 앙투안오귀스탱 쿠르노(Antoine-AugustinCournot)의 《회고록(Souvenirs)》에 따르면, "부르주아 사회에서 서열만큼 두드러진 것은 없었다. 대소인이나 공증인의 부인들은 그냥 ‘마드무아젤‘이라 불렸으나, 국무참사의 부인은 아무런 이의 없이 ‘마담‘으로 호칭되었다."
민중계급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경멸은 평민에 대한 귀족의 경과다르지 않았다. 특권계급에 대항하여 민중계급의 지지를 호소하였던부르주아지가, 혁명력 2년에 민중계급이 권력을 요구하였을 때 왜 분노와 공포를 느꼈는지는 바로 이러한 계급적 편견을 고려해보면 납득된다 - P89

"집단들은 악착스럽고 완고한 데다, 스스로 고립된 채 정치 기구와 관계를 맺는 데만 몰두하려고 한다. 오늘날 모든 집단들은 자신들의 구성원이 당하는 불의(不義)만 의식할 뿐, 자신의 계급에 속하지 않는 시민에 대한 압제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무관한 것으로 여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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