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작가수업 2
김형수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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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작년 이맘 때인가, <삶은 언제 예술이 되는가>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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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출판인이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출판사`로 정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출판사예요. 얼마 전에는 용감하게 사장님께도 말씀드렸죠ㅋㅋ 신간나올 때마다 챙겨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양질의 도서 부탁드립니다ㅠㅠ *<공룡 이후> 정말 좋았습니다. <유럽 문화사>는 감히 작년도 최고의 번역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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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명의 청년들이 일본항공의 국내선 여객기 '요도호'를 납치하여 북한으로 망명한 '요도호 사건', 31명 중 12명이 다른 19명에게 살해당한 '연합적군 숙청 사건', 5명의 청년들이 3만 5천 명과 대치하면서 경찰 두 명과 민간인 한 명을 죽인 인질극 '아사마 산장 사건', 그리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서 3명이 무차별 총기 난사로 26명을 죽이고 80명에게 부상을 입힌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

이 일련의 사건들은 1970년에서 1972년 사이에 연이어 일어났고, 그 주체는 일본 '적군파'의 20대 젊은이들이었다. 희대의 사건들을 대하고 나서 이를 사회병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걸 즐기는(?) 지금 사람들은 이 사건들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희대의 미치광이 살인마들이 벌인 사건으로 치부해 버릴까. 아니면 '숙청'이라 이름 붙였듯이, (정치) 권력 다툼으로 치부해 버릴까. 어떻게 하든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일으킨 '비정상적인' 사건이 되어 더 이상의 언급이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새로운 관점

사회병리현상이란 개인·집단·지역사회·전체사회·문화 등에 있어서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말하는데, 현상만 볼 때에는 범죄·비행·자살·부랑·매음·실업·빈곤·슬럼·도산·미신 등, 여러 가지 사회악이나 사회적 곤란을 뜻한다. 즉, 위에 언급된 사건들은 개인 또는 집단에 있어서의 비정상적인 상태로, 범죄와 비행, 부랑 등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사이코패스' 라든지, '어린 시절에 아픔이 있었다', '과도한 트라우마가 작용했다'라는 식으로 몰고 가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비극은 한낱 미치광이의 미친 짓으로 끝나버리고 말곤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비정상적'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이다. 그 안에는 자신의 의지가 들어 있지 않다. 자기의지가 없이, 압력 또는 타자에 의한 사건이라는 말이 되겠다. 

  <적군파> 표지
ⓒ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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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파>(교양인)의 저자 '퍼트리샤 스테인호프'는 이 맹점을 파고들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일으킨 '비정상적인' 사건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이 일으킨 '비정상적인' 사건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즉 자기의지가 반영되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위의 사건을 저지른 이들과 다름없는 젊은이로 1960년대를 보냈고 신념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존경했고 학생들의 활동 내용 또한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녀는 갖가지 극단적인 사건을 포함한 사회 운동을 오랫동안 연구해왔고,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급진 좌파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적군파 연구에 뛰어들기 전 그녀의 연구는 사상적 전향 문제에 쏠려 있었는데, 그 문제를 접하는 관점이 적군파 연구에도 이어진다. 정치적 신념에 따른 행동으로 인해 감옥에 갇힌, '텔아비브 공항 습격 사건'의 가해자인 '오카모토 고조'를 인터뷰하게 되면서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분석한 바 있는 대로 "전향을 시키는 데 탄압이 있었을지언정 오로지 탄압 때문에 전향했다고 볼 수 없다"는 해석, 즉 자기의지가 반영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사건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관점이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사건 가해자들의 '평범함'에 주목한다. 

"내게 이 사건이 주는 진정한 교훈, 진정한 공포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회 상황이 뜻밖의 이변을 낳았다는 사실이다."(본문 중에서)

사건1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 일본의 거의 모든 대학을 산하에 둔 학생연합 조직 전학련(전일본학생자치회총연합)이 있었다. 50년대 후반까지 일본공산당의 지도를 받았는데, 이후 중대한 노선 전환이 생기면서 가입 문제를 놓고 분열한다. 이후 분트(공산주의자동맹)는 1960년대 안보투쟁에서 지도적 역할을 했고, 와중에 1968년 관서 분트 안에서 '적군'이라는 군대 결성이 꾀해졌다. 1년 후 조직 내 당파 투쟁을 계기로 적군파는 분트와 결별해 독자적 길을 걷게 된다. 그들의 투쟁방침은 폭력제일주의였다.

1971년 적군파는 같은 계열의 '혁명좌파'와 결합한다. '연합적군'의 탄생이다. 이들 세력은 통합의 첫 단계로 공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기로 한다. 훈련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혁명좌파 지도자이자 여자인 나가타가 적군파의 여자 멤버를 비판하기 시작한다. 여자이기 전에 먼저 혁명가여야 한다며, 스스로 여성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적군파 수장이자 연합적군의 수장인 모리 쓰네오는 독창적인 이론을 만들어 온다. 

'공산주의화'라는 이론으로, 더욱 훌륭하게 공산주의화한 혁명 전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부르주아적인 행위를 자기비판하자는 것이었다. 각 멤버의 약점을 집단적으로 검증하고 개개인이 지적받은 약점을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것으로, 단순히 이론적으로 판단했을 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는 이론이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브레이크도, 기준도, 출구도 없었다. 집단적 검증이 과도한 공격으로 쏠리지 않도록 제동을 걸 수단이 없었고, 검증과 자기비판의 기준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모리 쓰네오의 명령으로 완전한 공산주의화를 획득할 때까지 아무도 산에서 내려갈 수 없었다. 

결국 한 사람의 공산주의화를 위한 폭력에 전원이 참가한다. 죽지 않고 버틸 도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모리는 그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죽은 멤버를 두고 모리는 또 한 번 획기적인 이론을 내세운다. 이른바 '패배사' 모두들 그 멤버를 돕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지만, 결국은 그가 도움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힘없이 패배해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론이었다. 모두들 이 이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그 멤버를 죽인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후 이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된다.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때려죽이는, 모리에 의해 '합법적'으로 변모한 폭력이 계속된 것이다. 최초 31명 중 12명이 죽임을 당한다. '연합적군 숙청 사건'의 전말이다. 

사건 2

해를 넘겨 1972년 2월 두 지도자 모리와 나가타가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운다. 이후 잔류 부대는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한다. 새 지도자인 '사카구치 히로시'는 이 '숙청'을 혁명적인 활동에 의해 극복해야 할 불행으로 해석한 것이다. 남은 19명 중에 몇몇은 체포, 몇몇은 도망가고 5명이 아사마 산장에 이른다. 경찰은 가까스로 그들의 거처를 확인하고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는다. 이에 다섯 멤버는 항전을 거듭해 두 명의 경찰과 한 명의 일반인이 희생당한다. 결국 열흘 후 이들은 체포되고 마는데, 이 대치 상황의 마지막 광경은 전국에 생중계되었고, 9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들은 숙청 사건 비밀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였을까? 

"숙청은 그 나름의 방법과 논리를 지닌 완전한 내부 문제였다. (중략) 연합적군에서 도망친 사람들마저 경찰에 출두하지 않았다. (중략) 숙청 사실은 체포와 함께 막을 연 적과의 직접 대결에 직면하여 내부에 묻어 두어야 할 극비 사항이었던 것이다."(본문 중에서)

하지만 몇몇 멤버가 분리 감금을 원했고 숙청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 만다. 일본 전국은 다시 한번 경악에 휩싸이고 재판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급기야 담당 판사는 이따금 문제 있는 언동을 하곤 한 적군파 리더 중 한 명인 나가타를 두고 '마귀 할멈'이니 '마녀'니 하며 개인적인 분노를 놀랍도록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이 사건을 두고 언론은 단순 권력 쟁투의 결과라 말하고, 이후 수많은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도출한다. 

결론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은 단지 과격한 학생 운동을 했을 뿐 모두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고, 이 사건 또한 유래를 찾기 힘든 이례적 사건도 아니었다. 누구보다 확고한 자기의지를 갖고 임했지만, 결과가 참혹했던 것이다. 참혹한 결과에 가려 사건 당사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올바른 선택을 진지하게 행한 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경로에 무의식적으로 휘말릴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돌이켜봐도 여기서 멈추었어야 할 명확한 지점은 아무데도 없다. 여기서 뛰어내리지 말았어야 할 눈에 보이는 낭떠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현명한 줄 알았던 판단이 사실은 완전한 우연에 따른 결과였고 선견지명 따위는 없었음을 깨달을 때가 종종 있기 마련이다."(본문 중에서)

저자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제시해 주었다. 판을 바꿔버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정상적인 사건 내지 상황을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보는 것이 아닌, 보편적인 해석에 입각해 비정상적인 사건 내지 상황을 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까닭이다. 

책은 자료에 의한 연구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인가, 저자의 사건을 보는 우호적인 시각이 담겨져 있어서인가, 끔찍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내용답지 않게 서정적이기까지 하다. 반대로 끔찍한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냉정을 잃지 않고 담담한 서술을 이어간다. 집필 중에 있어서 그만큼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다는 뜻일까. 

저자는 적군파 연구에 있어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걸었을 것이다. 수십 년 전에 이미 '비정상적인 사람들에 의한 비정상적인 사건', '내부 권력 투쟁' 등으로 결론내진 사건들을 얼토당토않은 이론으로 괜히 들추는 기분도 들었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저자도 사회병리현상으로 규정지어진 '비정상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의지를 갖고 연구에 임했고 적군파 연구에 관한한 최고의 책을 내보냈다. 적군파의 젊은이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얼마나 감화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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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엇이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게 인간의 주된 특성이죠"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묘지>(열린책들)에 나오는 말이다. 귀가 얇은 사람들한테만 통용되는 말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위의 말을 한 사람은 그럴싸한 허위 사실을 유포해서, 그 정보를 팔아먹고 사는 인물로 그려진다. 믿건 믿지 않건 각자의 자유지만, 듣는 순간 이미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오랜 세월 각인되어 온 거짓허구는 어느 순간 사실로 바뀌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곤 한다.

이런 음모의 사슬 위에서 군림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왜 음모를 만들고 유포시키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기 위한 공작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예전 냉전시대 때에는 무력에 의한 공격 내지 방어뿐만 아니라 첩보도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뿐이었다. 미국 아니면 소련. 그랬기에 이 둘은 서로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고 온갖 암투와 공작이 난무했다. 작게 해석하면 '소문', 크게 해석하면 '음모'가 되는 거짓허구 유포에도 심혈을 기울
것이다.

 

 

둘은 세상의 이목을 돌리기 위한 공작이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사실상 미국이 세상을 점령했었다. 자연스레 모든 이목이 미국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자연스레 좋지 못한 모습들을 보여줘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대형 사건을 터뜨린다. 세상의 이목을 그 쪽으로 돌리게 하고, 그 사이 자신들의 과오를 덮어버린다. 그런 음모론이 수도 없이 떠돌고 있지만, 대표적인 음모론으로 2001년 9.11 테러가 있을 수 있겠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버린 이 사건으로 당시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은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프라하의 묘지>의 주인공인 ‘시모네 시모니니’는 19세기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한테서 유대인과 프리메이슨, 예수회는 한 통속이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등의 증오가 다분히 섞인 험담을 들어왔다. 그 험담이 씨가 되어 시모니니는 모든 걸 증오하게 되었고(심지어 그의 삶의 신조는 ‘나는 증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이다.), 그 중에서도 유대인을 향한 증오는 단연 앞섰다. 결국 이 증오는 그의 삶을 바꿨고 세계를 바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먹고 살기 위해 공증인 밑에서 일하게 된 시모니니는 ‘위조’의 참맛을 알아갔고, 그 재능을 살려 정부 기관의 첩보를 담당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 정점에 이른 문서인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은 그의 유대인을 향한 증오가 가장 강력하게 심어져 있었고, 얼핏 말도 안 되는 음모인 듯하지만 유대인을 증오하는 사람들 인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심어주었다. 비록 소설, 잡지, 풍문 등의 여기저기에서 짜집기한 소설과 같은 문서이지만 말이다. 그는 이렇게 음모의 시대를 ‘잘’ 살아갔고, 나름대로 시대를 ‘선도’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보람도 찾고.

 

 

저자인 움베르토 에코의 의도는 시모니니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어떻게 음모가 만들어지고 진실 같은 거짓이 유포되는지 폭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사실 같은 이 소설을 읽다보니,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있었다. 독자들이 사실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너무나 커진 것이다. 이미 거짓음모로 판명된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에서처럼 유대인이 실제로 세계 전복을 꿈꾸고 계획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이 거짓이든 사실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무엇이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사실을 인지한 에코는, 해서 소설에서 몇 가지 장치를 넣었다. 하나는 작품의 진행 형식에서 보인다. 세 명의 화자가 나와서 작품을 끌고 가는데,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오히려 작품에 너무 빠져서 마치 사실인 양 느끼지 않게끔 하고 있다. 작품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방식임에도 이 방식을 차용한 걸 보니, 저자가 많은 신경을 쓴 것 같다. 둘은 작가의 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에코는 후기에서 친히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내가 지어낸 인물은 단 하나, 주인공 시모네 시모니니 뿐이다.”라고 언급했다. 즉 거짓과 음모로 가득 찬 삶을 보낸 주인공 시모니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거짓과 음모를 향한 일침을 날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바로 그 점에 비추어 나는 그 시절에 벌써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어떤 음모를 폭로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면 독창적인 내용을 구매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구매자가 이미 알아낸 것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해야 한다. 사람들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음모론의 보편적인 형식이 빛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본문 중에서)

 

 

“시모니니는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기 때문에 드레퓌스가 죄인이 되

었음에도 그 유대인의 유죄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기억과 그 기사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사건이 한 나라 전체를 얼마나 심하게 뒤흔들었지 새삼 깨달았다. 당시에 프랑스인들은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각자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고 있었다.”(본문 중에서)

 

 

시모니니는 음모(미스터리)에 관한 사람들의 심리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시모니니는 허구의 인물이기에, 이를 만든 에코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저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을 믿는다”,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각자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고 있었다” 음모라는 것이, 센세이션하고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아니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뜻하는 것일 게다. 이미 익숙한 것. 19세기 당시 유럽에 공공연히 퍼져 있던 소문이나 추측들. 그리고 그것을 믿는, 믿으려는 일부 또는 다수의 사람들. 그렇게 음모는 만들어지고 퍼져 나가는 것이다. 실제로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은 1921년 <런던 타임스>의 보도로 거짓 문서임이 드러났지만, 이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여전히 있었고 그 대표적 인물이 히틀러이다. 유대인 대학살의 중요한 명분을 ‘프로토콜’이 제공하였던 것이다.

 

 

음모론에 관한 각종 서적에서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기도 하다. 번역자의 후기에서도 나왔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거짓으로 판명된 이 보고서를 마치 사실인양 포장하여 출판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거짓문서의 영향력, 아니 ‘거짓’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에코는 "그(시모니니)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고 말한다. 상징적인 의미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와 닿는 이유는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에코는 오랫동안 음모의 프로세스를 연구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비평을 계속해 왔다.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거대 언론 총수 출신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겨냥한 비평의 화살을 가장 많이 날렸다. 그 이유는 그의 커리어에 거대 언론 총수가 있고, 그것을 이용해 총리 자리를 꽤 차고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을 거짓처럼 거짓을 사실처럼 날조해 널리 퍼지게 하는 데에는 미디어만한 게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어떤가? ‘미디어법 날치기’ 사건만 보더라도, 18대 국회에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이 제안해 일명 ‘날치기’로 통과시켜서 국내 유력 보수 성격의 신문사가 방송사를 운영해 종합편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어떤 한 계층을 대변하고 보호하는, 그러면서도 전 국민이 가장 많이 보는 언론이 더욱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사실을 거짓처럼 거짓을 사실처럼 날조해도, 워낙 많이 유포되고 퍼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은 시모니니가 지하철 공사장 폭탄 테러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시온 장로의 프로토콜'로 대미를 장식한 게 아니란 말인가?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그의 죽음이나 음모의 종말이 그려지지 않는 이유는 에코가 말한 "그(시모니니)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있다"라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함이 아닐까. 시모니니는 "오로지 증오만이 심장을 다시 뜨겁게 만든다"며 스스로를 다잡는다. 지금 그는 없지만, 그의 증오는 여전히 살아서 움직인다. 마치 몸과 영혼은 없어져도 DNA는 살아남아 다시 재생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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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치러졌던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옛날 사람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는 '박정희'라는 이름이, 문재인 전 후보에게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항상 따라 붙었다. 두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 기조에서 어떤 큰 차이를 찾아볼 수 없었던 바, 그들에 뒤에서 도사리고 있었던 '전설' 혹은 '망령'이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박정희'의 힘이 더 컸던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0년대의 시대정신이었던 경제적 산업화를 상징하는 '박정희' 프레임이 지금에 와서 다시 고개를 든 것인가? 지난 5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패가 개발독재 경제정책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것일까?

박근혜 당선인이 단순히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로 이와 같은 추측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다.(이번 대선의 슬로건이 100% 국민대통합이니만큼) 하지만 지지자들의 속내는 다를지 모른다. 많은 지지자들의 가슴속에서는 1960년대의 그 기억들이 있을테니까. 이 시대에 1960년대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전설과 망령이 교차하는 1960년대를 벗어나야

얼마 전 고 장준하 선생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는 기사가 났다. 유신헌법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다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974년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한 재심으로, 39년 만에 이뤄졌다고 한다. 또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내놓은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조회수 200만을 돌파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유신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도 꽤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자,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부르는, 혹은 불리우는 사람에 따라서 '전설' 혹은 '망령'이라고 할 수 있는 장준하, 박정희, 이승만 등이 이 시대에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박정희'는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장'의 환상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어쩌면 영원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우리를 옥죌 것이라 본다.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에서 전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 있고, 이 책의 배경도 여기다. 벗어나고 싶지만, 아니 벗어날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1960년대의 모든 것. 이 책의 저자들은 존경은 표하되 1960년대의 모든 산물을 완전히 리메이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시대의 주역들이 주춧돌을 놓았던 민주주의와 '근대성'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서 단지 참조대상일 뿐,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며 저자들은 1960년이 다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

1960년은 4.19가 있었던 해이다. 해방 후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던 시기, 한국 사회를 바꾼 혁명으로 기억되고 있는 사건이 일어났던 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시기에서 이어져온 비록 전설과 망령이 살아 숨쉬고 있을 지라도, 다시 돌아가 제대로 파헤쳐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들은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특히 4.19 (비록 5.16이 되어버린 비운의 4.19이지만)가 진지한 공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제의 가능성이 소진되고 있다는 데 동의한 것이다.(560쪽)

'밥 대 장미'를 넘어선 시대적 모순들의 향연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산업화 대 민주화'로 대변되는 박정희 시대를 더 적절한 것으로 수정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1960년대는 모순의 연속인데, 단순히 산업화와 민주화로 나누어 서로 대립적인 것으로만 나눌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바라는 건 '배부른 돼지'도 허기에 찌든 자유인도 아닌, '밥과 장미' 즉 민주주의와 경제를 모두 원하듯이 1960년대도 '산업화 대 민주화' 보다 '산업화와 민주화'로 보는 게 정확하다는 것이다. 비록 이 둘 간의 관계가 모순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며 이 1960년대식 변증법을 각 장에서 펼쳐보이고 있다.

"1960년대식 변증법은 4·19와 5·16의 연속과 불연속, '빵'(평등에의 욕구)과 '자유'(개인주의화의 욕망) 사이의 모순(1장), 박정희와 김일성의 적대적 공생(3·4장)에도 관철된다. 또한 이 책을 읽다보면《사상계》의 모순(7장)이나 4·19세대와 1960년대 지성의 자기모순(2·5·6장)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유와 반공을 동시에 살고, 민족(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열렬히 서구를 추종하였다. 또한 박정희의 광기가 춤을 추며 사회·문화가 전반적으로 '군사화' '남성화'되는데도 대중의 문화적 역능과 여성의 역할이 증대한다든지(10장), 황금만능·경제 제일의 이데올로기가 수많은 속물과 졸부를 곳곳에 등장시켰음에도 저항의식과 인문학적 교양이 함께 커가는 드라마적 변증법이 펼쳐지는 광경도 있다(8·9장)"(10쪽)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본다. 먼저 4·19가 5·16에 의해 폭력적으로 압살됐다는 서사는 사실의 절반에 불과하며, 사실 4·19는 혁명을 주도했던 주체들 자신에 의해 외면되고 배반당한 자취가 역력하다는 것이다. 이는 4·19가 4·19로서 이어지지 못하고, 정반대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는 5·16이 되어버린, 오히려 앞장섰다고도 할 수 있는 비극적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만들어진 1960년대가 모순으로 시작되고 있는 모습이다.

또 하나의 모순은 박정희 자신에게 있었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저자들의 말에 의하면 좌익이라는 죄의 구렁텅이에서 일어나 전능자가 된 박정희는 반공국교의 교주였다. 즉, 박정희 시대의 반공 구호는 단순히 반공주의의 상투어가 아니라 재귀적인 말이자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라는 것이다. 스스로의 모순적인 삶에서 모순을 없애버리기 위해 획일적인 다짐을 자신을 넘어서 대한민국 전체에게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어서 말할 수 있는 모순은 남북의 특권계급이 서로 적대적으로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남한에는 북에 대한 유치하고 맹목적인 공포와 혐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먹으려는 기득권세력이 여전하고, 북의 세습 체제 또한 분단정치의 주축으로서 공포와 혐오를 먹이로 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체제와 세습 체제는 남과 북에 각각 존재하는 두 가지 악이 아니다. 파시즘적 법과 비밀경찰에 의해서만 유지되며, 세습이 민주적 선출보다 더 중요한 부와 권력의 재생산 도구가 되는 이런 체제는 남과 북 모두 그 양상이 비슷하고 공통적이다. 그것은 한반도 전체를 관통·관류하며, 민중을 지배하는 억압과 불평등의 공통적인 핵이다."(155쪽)

1960년대는 당대의 직접적 기원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이 책에서 저자들은 1960년대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의 직접적 기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회는 1960년대를 통한 재구조화의 결과이거나 그 잔여물(553쪽)이라는 것이다. 근대 인문학과 지식 시스템 등 지식·학문이 자의식을 갖고 새로운 의식을 온전케 하였고, 이를 넘어 남북의 분단구조 자체가 완성된 시기가 그때의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힘이 이제는 거의 소진되었고, 새로운 세계가 열려도 몇 번이나 열렸다. 세계질서는 새롭게 재편되었고, 냉전 시대 이후의 생존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아직도 냉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말한다. 학문 분과는 재편돼야 하고 제도는 바탕에서 다시 생각돼야 하며, 취업과 복지의 구상도 다시 짜야 한다고.(559쪽)

이제 4·19와 5·16의 1960년대 세대가 만들었던 대한민국은 1987년 체제와 1997년 체제를 지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세상속에서 거의 다 허물어지고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 아니, 잃어가야 정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힘은 막강하고 이 시대에 살아 있다. 이 끝없는 모순의 뫼비우스 띠를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 세대는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러려면 먼저 이 시대의 근원인 1960년이 필요하다. 이 책을 보며 그 시대에게 성실히 물어보고 성실한 답변을 들어라. 앞으로의 길을 가르쳐 줄지는 미지수이지만, 적어도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오마이뉴스에도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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