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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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해연은 사람의 저열한 속내나, 진심을 가장한 말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에 대해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더블, 봉명 아파트 꽃미남 수사 일지, 지금 죽으러 갑니다외에도 다양한 장편 소설을 출간했고, 그 밖에 단편 소설 앤솔러지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그것들, 카페 홈즈에 가면?에 참여했다. 봉명 아파트 꽃미남 수사 일지유괴의 날은 드라마화 예정이다.

 

이야기는 싸구려 패키지여행을 떠나는 버스에서 시작된다. 이 여행은 서울을 출발해 부산을 거쳐 배를 타고 대마도로 향하는 단돈 8만 원짜리 미끼 상품이다. 패키지여행을 가는 20명의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로 버스에 몸을 싣게 된다. 덜컥 아이가 생겨 부모님의 도움으로 결혼식을 올린 후 돈은 없지만 신혼여행은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오게 된 신혼부부와 항암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혼자만의 여행을 결심한 50대의 중년 여성, 무언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아버지와 아들도 모두 같은 버스에 올라탄다. 그리고 이 여행을 안내할 손승욱은 싸구려 미끼 상품의 가이드를 맡아 마음은 뒤숭숭하지만 그래도 여행객들에게 최선을 다하려 하는 인물이다.

 

독자들은 이 책이 스릴러 소설이라는 걸 표지에 적힌 '정해연 장편 스릴러'라는 문장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패키지여행에서 일어난 단순한 살인사건을 다룬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다. 프롤로그와 제1장을 읽을 때까지는 그러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패키지여행은 앞으로 드러날 사건의 포문을 여는 입장문 같은 것이었다. 사건은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토막 살인한 후 패키지여행을 가는 버스 짐칸 가방에 시체를 유기한 사건이다. 저자는 사건을 한 번 더 비틀어 단순한 살인사건으로 끝맺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을 쫓아가는 인물, 박상하가 등장하는데 그는 강력계 형사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역할을 한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박상하의 시선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간다. 박상하는 살인사건을 풀어가며 과거를 회상한다.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의 가족을 생각한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던 자신의 꿈은 이미 물거품이 되었지만 박상하는 이 사건을 통해 그동안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에게 소홀했다는 걸 깨닫는다.

 

이 책은 사건과 연관된 인물들의 내면을 자세히 그려낸다. 패키지여행에 들떠 있던 여행객들은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취소되어 돈을 돌려받는 일이 더 중요했고, 죽은 아이보다 특종에 목마른 기자들은 기사를 토해내는 일이 더 중요했고, 경찰서장은 윗사람 눈치 보며 빨리 용의자를 잡아오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들에게 죽은 아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이 인물들을 그저 소설 속 인물들로 치부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이 인물들의 내면이 바로 우리 내면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우리들의 모습이고, 이 사회의 모습이다.

 

충격적인 살인 사건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인물들을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 '패키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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