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깨달음
스티브 테일러 지음, 추미란 옮김 / 판미동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브 테일러'는 어릴 때 '자연스러운' 깨달음을 경험하고 방황한 끝에, 영적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동시에 수행과 영성의 본질을 이성적·학문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여러 책을 저술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이 책 보통의 깨달음은 세계적인 영성가 에크하르트 톨레가 삶을 깨우는데 강력한 도움을 주는 책을 직접 선정하고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에크하르트 톨레 에디션'에 포함되어 있다.

 

책의 분량이 방대하다. 무려 500여 페이지나 된다. 이 수많은 페이지가 이야기하는 핵심은 바로 깨달음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우리는 어떤 소수의 자만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보통의 사람들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을 연구해보니 특정 종교나 유파에 속하지 않았고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깨달음을 '깨어남'이라고 표현하며 우리 머릿속의 끊이지 않고 나타나는 생각을 '머릿속 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첫 장에서는 깨어남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설명한다. 이어서 깨어남의 특성과 여러 단계들을 설명하고 책의 후반부에 가면 깨어남은 결국 진화적 도약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깨어남이라는 단어를 통해 현재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잠을 자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잠을 자는 상태란 한마디로 분리와 단절의 세계가 되겠다. 자연과 나를 분리시켜 나의 '에고'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이 '에고'는 나에게 끊임없이 머릿속 수다를 이어지게 하며 불안함을 느끼고 더 이상 자연을 생명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세상을 산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이러한 생각도 결국 나의 생각이다. 세상을 사는 게 아닌 우리 머릿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깨어난 상태는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는 내 에고를 뛰어넘는 상태, 즉 내 생각이 내가 아님을 알게 되는 상태를 깨어난 상태라고 말한다. 깨어남에도 상태가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일시적 깨어남의 상태와 점진적 깨어남 그리고 급진적 깨어남이다. 일시적 깨어남은 순간순간에 깨어남을 뜻하고 점진적 깨어남은 요가나 명상같이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얻게 되는 깨어남을 뜻한다. 급진적 깨어남은 스트레스나 큰 병에 걸리거나 죽음에서 돌아올 때 얻게 된다고 한다. 일반 의식에서 깨어난 의식으로 가는 여정은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길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즉 깨어남 그 강도의 높낮이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2장에서는 다양한 문화에서 말하는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종교들은 모두 한곳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데 이 종교의 창시자들이 소수의 깨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을 보고 이 강이 어떻다는 것이 서로 다르듯 해석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또한 깨어남의 특성과 태어날 때부터 깨어 있는 '자연적 깨어남' 상태에 있었던 예술가들을 소개하고 전통 안에서의 단계적 깨어남 단계에 대해 소개한다. 이와는 반대로 전통 밖에서의 단계적 깨어남을 겪은 보통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1장을 보면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대략 알 수 있다. 1장에서 말했듯이 깨어남의 세 가지 상태를 여러 사례와 특징들로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11장을 보면 깨어난 사람이래도 번뇌, 카르마의 찌꺼기가 남아있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찌꺼기에 몰두하지 않으면 금세 생각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결국 깨어남은 어떤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깨어난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깨어있는 상태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계속해서 나의 에고를 주의하라고 말한다. 에고가 내가 하는 생각들을 나라고 믿게 만든다. 특히 14장에서 잘 설명해 준다. 14장에서는 아이들은 모두 자연적 깨달음 상태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아직 에고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가 질풍노도의 시기인 이유도 자아 체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점점 자아가 형성되고 자연과 나를 분리시키면서 어른이 되어간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내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뽀로로의 오프닝 송 가사처럼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와 같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지나간 일이나 오게 될 미래 같은 건 없었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그 순간만 있을 뿐이었다. 친구 집에서 놀다 집에 갈 시간이 되면 가기 싫어 땡깡 피웠지만 막상 집에 오면 그 사실을 금방 잊고 다시 신나게 논다. 아이들은 강한 자아 체계가 개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순간을 산다. 머릿속 수다에 빠지지 않는다. 성인의 깨어남은 아이의 깨어남과는 분명 다르다. 일단 성인에게는 자아 체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인의 깨어남은 아이의 깨어남보다 더 진보했다고 본다. 자아 체계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깨어나게 되면 세상을 더욱 도덕적이고 분별 있게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점점 깨닫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지금이 진화적으로 도약할 시기라고 말한다. 이 책의 원제 또한 'The Leap'로 도약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깨어남의 상태는 지금의 상태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상태이고 이런 상태의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건 그렇게 진화해 가는 거라고 말한다. 지금 이 세상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고 말할 수 있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시대만큼 다양한 동물 종이 죽어가는 건 사실이고 비우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지금만큼 뭐든지 과하게 많은 세상은 현시대가 처음일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극단으로 나아가는 이유도 그런 것들이 생명력을 다해가기 때문에 더욱더 질기게 우리를 끌어당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어떤 특정한 종교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엄마가 기독교를 믿어 어릴 때 일요일마다 엄마 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닌 경험이 있지만 믿음이 있어서 갔다고 하기는 힘들다. 이 책에 나온 말처럼 자아 체계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 멋모르고 다닌 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 가기 싫었던 교회를 억지로 다닌 경험 때문일까. 종교 같은 거에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나에 대해서는 알고 싶었다. 이름 붙혀진 나의 모습 말고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 말이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항상 궁금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한 권의 책을 알게 되었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십우도의 그림을 바탕으로 나를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소개해 주는 책이었다. 특정 종교나 유파에서 벗어나 정말 나 자신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들을 추천해 주었다. 그 책을 읽고 나만이 그런 생각을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나 자신을 찾는데 꼭 특정한 종교나 신념이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았다. 종교가 나를 찾는 길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꼭 그 방법을 통해서만 나를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도를 펼쳐 나아가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코로나로 시간도 많겠다, 나를 찾기에 최적화된 시간이 지금이라고 생각했고 여전히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책 또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의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 같다. 지금도 머릿속 수다가 끊이지 않는데 이 머릿속 수다가 내가 아님을 알고 그저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영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직관적으로 우리는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고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바로 나 아닌가? 정답도 없는 나를 알기 위해 이렇게 또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