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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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은 첫 순간에 이미 사랑하는 역할과 사랑받는 역할로 정해져버리는 것일까.”

 

가을과 참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첫 장,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계절이 바뀌는 정확한 순간을, 수진의 짧은 반곱슬 머리 밑으로 드러난 목덜미에 닿는 찬 기운이 알려주었다.” 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요즘같이 선선한 날씨가 자연스레 떠올랐고 소설 속의 시간도 바로 이 맘 때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에는 수진, 혁범, 한솔 세 남녀가 등장한다. 수진은 설계사무소 코드 아키텍츠에서 건축사로 일하고 있다. 수진이 일하고 있는 코드 아키텍츠의 대표가 바로 혁범이다. 혁범은 수진의 대학 선배로 일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으로 건축업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한솔은 코드 아키텍츠가 위치한 건물 로비에 조경작업을 맡은 조경사이다. 이 세 남녀는 삼각관계라고 하기는 어려운 삼각관계 사이에 놓인다. 수진은 오래전부터 혁범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혁범은 한 번의 결혼 경험이 있었고 딸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다. 수진은 혁범의 이런 아빠로서의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쓰라리면서도 어쩐지 더 사랑하게 될 것만 같다고 말한다. 그만큼 수진은 혁범을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혁범은 매사에 이성적이고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혁범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한솔이다. 한솔은 감성적이고 수진에게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수진은 지하주차장 로비에서 한솔을 처음 본 순간부터 자연스레 끌리게 된다. 한솔은 수진을 처음 본 순간 첫 눈에 반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수진의 건축사무소를 찾아가 바위말발도리라는 식물을 수진 모르게 전해주고 간다. 수진은 바위말발도리를 보며 잔털을 손바닥으로 스치며 세세히 그 간질이는 감각을느낀다. 이제 막 썸을 타려는 사람들이 느낄 만한 감정을 수진은 한솔이 준 바위말발도리를 만지며 느낀다. ‘바위말발도리를 통해 수진은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을 느끼고 한솔의 저돌적인 사랑을 받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첫 순간에 사랑하는 역할과 사랑받는 역할이 정해져 버리는 것처럼 수진은 마치 예전에 혁범을 좋아했던 자신과 같은 한솔의 사랑을 받게 된다. 한솔은 수진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이따금 불쑥 튀어나오는 감정표현을 제외한다면 한솔은 신중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이다. 사랑에 대한 한솔의 맑고 순수한 마음에 수진은 스스로를 걱정한다. 한솔과 수진의 관계에서 한솔이 수진을 사랑하는 역할이라면 혁범과 수진의 관계에서 수진은 한솔과 같은 입장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랑의 모습이다. 이미 첫 만남 때부터 사랑을 받는 이와 주는 이의 관계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세 남녀의 관계를 보며 추측해볼 수 있었다. 수진은 한솔의 사랑을 받지만 받으면 받을수록 혁범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수진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이와 함께 있는데도 혁범이 신경쓰인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의 모습이 좋아서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 수진에 혁범에 대한 사랑도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은 수진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수진의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의 세밀한 묘사를 천천히 따라 가보면 어느새 소설은 결말부에 다다른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장소에서 이루어진다.”는 소설의 문장처럼 행여 그 장소가 사라져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는 기억만은 남게 된다. 수진에게 한솔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그곳에 그 사람은 없지만 함께 했던 기억만은 수진의 추억 속에 남아 그 장소에 가면 한솔이 생각나는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저자가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알 수 있다. “진정한 어른의 사랑이란 그러한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임을 갈수록 확신하게 된다.” 그렇다. 어른의 사랑이란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일이다. 자신이 다칠걸 알면서도 주저함 없이, 계산 없이 이해하고, 겁도 없이 다가서는 그런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바로 사랑인 것이다.

 

이런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 부럽고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나는 책 속 인물 중 한솔이라는 인물에게 제일 애정이 갔다. 나이 또래로 보면 비슷한데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고 사랑을 할 때에도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용기 있게 다가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고백했다가 차일까봐 혹은 그 사람이 나의 고백을 거절할까봐 다가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솔은 거절당할까 두려운 마음이 있을지라도 주저 없이 다가간다. 한솔의 성격이 원래 적극적인 성격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멋졌다. 어딘가에서 또 다른 사랑을 찾으며 살고 있을 한솔을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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