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행 엑서더스 - 그들은 왜 '북송선'을 타야만 했는가?
테사 모리스-스즈키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특이한 이야기에 대하여 특이한 저자가 쓴 특이한 역사서술이다. 뭐가 특이한가?

특이한 저자

저자 테사 모리스-스즈키(Tessa Morris-Suzuki)의 이력은 특이하다.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전공은 일본사이고, 일본에서 학문활동을 했다. 일본인과 결혼도 했다.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민가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까지 일본을 다룬 여러 연구서를 출간했는데, 한일관계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공부 중에 우연히 북송에 관한 기록을 접했고, 그토록 충격적인 이야기가 어두운 문서고 깊숙이 잠들어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녀는 북송의 실상을 알기 위해 한국, 일본, 북한, 미국, 스위스, 프랑스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료를 수집했고, 결국 '한국사에 문외한이고 한국어를 전혀 못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2007년에 일어판과 영어판이 동시에 나왔고, 2008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이 정도 소개면 저자의 이력과 책을 쓰게 된 경위가 이채롭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짧은 문단에서 나라 이름이 도대체 몇 개가 언급되었는가.

특이한 이야기

재일한국인 북송은 이상한 이야기이다. 종전 당시 200여만 명에 달했던 재일한국인들 중 140여만 명이 귀국하고 60여만 명이 잔류했다. 잔류한 이들 중에는 정말로 일본에서 살고 싶어 자진하여 남은 축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는 GHQ와 일본정부에 의해 본국으로의 재산반입이 제한되어 어쩔 수 없이 잔류한 축이었다. 재일한국인들은 거의 대부분(약 97%)이 38선 이남 지역 출신이었고, 그중에서도 상당수는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출신이었다. 1959년 12월 북송이 시작된 후 북송선에 탄 9만여 명의 사람들 역시 대부분은 이남 출신이었다. 이 책의 부제를 인용한다면, "그들은 왜 '북송선'을 타야만 했는가?" 모두 빨갱이라서? 만약 그게 답이라면 애초에 이 책이 안 나왔고 이 소개글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히 이상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이러한 이상한 이야기가 역사에 등장하기까지의 복잡한 사정을 해부한 연구이다.

이 이상한 이야기를 지금껏 모나지 않게 포장해온 공식적인 기억은, 바로 북송이 재일한국인들의 '거주지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추진한 '인도주의적' 사업이었다는 것이다. 1956년 밀입국 혐의로 수용소에 억류되었던 일단의 재일한국인들이 처음으로 북송을 요구했다. 일본 측은 처음에는 수용하기 힘든 요구라며 난감해 했지만,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여 북송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고, 결국 적십자를 논의 창구로 삼아 북한과 교섭하기 시작했다. 국제적십자와 일본, 북한은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까다로운 교섭을 성사하고 북송을 실현시켰다. 이러한 이야기가 북송에 관여했던 측의 공식적인 설명이었다.

저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스위스 제네바 국제적십자위원회 본부의 문서고를 뒤진 끝에, 공식 기억과는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을 찾아내었다. 이 이야기는 공식 기억이 말하는 것처럼 1956년 재일한국인들의 요구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다. 이 요구가 있기 전인 1955년경부터 이미 일본은 '북한 귀환 희망자'들을 북송한다는 구상을 세우고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사회의 하층에 머물며 복지예산만 축내는 재일한국인들이라는 존재가 성가셨고, 어떻게든 그들을 치워버리고 싶었다. 한일회담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일본은 '또 하나의 조선'인 북한의 존재에 주목했다. 일본은 조건만 맞는다면 재일한국인들을 북한으로 '대량 귀국'시켜버릴 수 있다고 여겼다.

문제는 국제여론의 욕을 먹지 않으면서 그들을 내보내는 방법이었다. 일본이 생각한 카드는 '인도주의'였다. 일본정부는 '인도주의'를 선전하기 위한 방안들을 고민했고, 그 결과 정부가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고 일본적십자가 주도한다는 방침, 인도주의의 명분을 최대한 선전하기 위해 국제적십자의 개입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방침 등을 수립했다. 일본적십자는 갖가지 과장과 은폐를 뒤섞어가며 국적 측에 북송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저자의 노력으로 일본의 의도가 결코 인도주의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북송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다른 주체들인 북한과 국제적십자의 의도는 어떠했는가? 국제적십자는 일본의 요청에 대응하여 나름대로 조사를 했고, 일본의 의도가 결코 인도주의적이지 않고 복잡한 정치적 고려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국적은 재일한국인들의 처지가 너무 열악하여 어떤 해결책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고, 더 나은 삶을 개척하기 위해 북한 귀환을 열망하는 재일한국인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국적은 결국 국가 간의 복잡한 정치적 암투 속에서도 인도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존재의의를 인식하여 북송에 관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후 북송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끈질긴 요구와 미국, 소련의 압력에 직면하면서 국적은 점점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갔다.

북한은 일본과 국적의 교섭 요구에 응하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1958년에 이르러 상황이 변했다. 가장 큰 요인은 중국 지원병의 철수였다. 북한 경제의 재건을 위한 중요한 노동력이었던 이들이 떠나면서, 북한에게는 새로운 노동력 수급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한편으로 이들의 철수는 북한으로 하여금 심각한 안보위협을 느끼게 만들었다. 남한에는 여전히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안보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한-미-일 공조체제에 쐐기를 박고 싶었는데, 북송은 썩 괜찮아보이는 카드였다. 북송은 분명 한일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1958년 말 김일성은 기존의 입장을 수정하여 일본과의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왔고 소련에도 협력을 요청했다. 북한의 입장이 돌변하면서 북송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북한 정권과 조총련은 일본의 의도에 호응하여 인도주의 명분을 대대적으로 선전했지만, 속내는 이처럼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저자는 북송에 직접 관여한 일본, 북한, 국적을 살펴보는 데 그치지 않았다. 북송의 이면에는 거대한 '침묵의 파트너'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냉전의 두 지도자인 미국과 소련이었다. 저자는 특히 미국의 의도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했다. 미국은 겉으로는 한국과 일본 중 어느 한 편을 들지 않고 중립을 표방했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일본의 편을 들며 북송을 승인했다. 당시 동아시아 지역의 봉쇄전략을 짜는 문제에서 미국이 직면했던 현안은 미일안보조약 개정이었다. 미국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시 정권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일본 내 여론의 지지를 얻고 있던 북송 문제를 굳이 나서서 비토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이 표리부동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방안 역시 '인도주의'를 강조하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전쟁 시 포로처리원칙이었던 자유송환의 사례를 들며 '거주지 선택의 자유'를 옹호하고 나섰다. 이러한 입장은 포로문제와 재일한국인 처우 문제를 동일시하는 비논리적인 성격이었지만, 어쨌든 미국은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한국과 국적을 압박했다. 한국에게는 경제적 지원과 같은 당근을 제시하며 북송을 묵인하고 한일회담 재개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한편으로 인도주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국적에게 반드시 북송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

저자는 북송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이들 주체들의 겉과 속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 실상을 촘촘하게 재구성해냈다. 저자가 발견한 역사상은 온갖 곤란 속에서도 삶을 개척해나가려는 의욕을 불태웠던 재일한국인들을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제멋대로 이용한 나라들과 관련 세력들의 면목 없는 모습이었다. 식민지의 민중으로서 디아스포라를 감수해야 했던 이들 재일한국인들은, 냉전이 부과한 어두운 정치에 휘말리며 또 다른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맞이했던 것이다.

특이한 서술 방식

이 책의 서술 방식은 특이하다. 뜻하지 않게 발견한 이 충격적이고도 슬픈 이야기를 건조한 학술 논문 스타일에 끼워맞추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이 책은 분명 기본적으로는 학술연구서이지만, 저자는 장난 같은 운명에 놓였던 재일한국인들을 만난 경험을 감성적으로 풀어놓는 등, 자신의 체험을 역사서술과 결합시키는 면모를 보여준다. 연구자들이 대개 자신만의 내밀한 경험으로 숨겨두곤 하는 '타인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사료와 대화하고 역사를 상상하는 과정'을 저자는 책에 담담히 적어놓았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서술방식이 과학적이지 못하고 경박하다고 비판하지만, 나는 썩 괜찮다고 느꼈다. 결코 잊혀서는 안 되었던 소중한 이야기가 놀랍도록 완벽하게 은폐되어온 현실을 고발하고, 아울러 숨겨진 이야기를 드러내고 기억을 재구성하는 역사학의 '소명'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러한 특별한 서술방식 때문에라도 이 책을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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