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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잘 늙어야지"
다
담배 연기 풀풀 내뿜으며 길을 걷는 아저씨를 볼 때,
"난 잘 늙어야지"
등산복을 입고 낮술도 거나하게 걸치곤 지하철에서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며 핏대를 세우는 할머님들을 볼 때
"난 잘 늙어야지"
한다
(물론 소수다. 젊은이들중에서도 젊음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도 많다.)
늙는 것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진행되는 것이지만
잘 늙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잘 늙을 수 있을까 요즘들어 꽤 많이 생각한다.
여기 자신이 여지껏 잘 늙어왔다고 생각했으나,
대단찮은 소녀에게 마음을 품고 본인 스스로를 추악히 여겨 견디지 못하는 한 노인이 있다.
은교의 이적요 시인이다
은교를 읽는 내내 욕망으로 뒤덮인 작품 속 인물들이 살아 숨쉬듯 내게 말을 걸었다
그들은 아주 진지했기에 나도 꽤 진지하게 그들과의 대화에 응했다.
늙은 시인이 아직 솜털이 채 남아있는 고등학생 여자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잘 된 일인가, 잘못된 일인가
아니면 사실 이것은 잘 된 일, 잘못된 일 가를 필요도 없는 일인가
드라마를 보면 사랑엔 국경도 없고, 신분도 없는데 왜 유독 사람들을 나이에는 관대하지 못할까
나를 대입하여 생각해본다면 난 단호히 할아버지뻘 되는 남자를 이성으로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에게 그러한 종류의 사랑을 인정할 수 있냐고 물으면 이해 못할 이유는 또 뭐가 있나
세상엔 다양한 취향이 있고 요즘은 동성끼리의 사랑도 인정하는 추세인걸 뭐.
사실 둘만 좋다면 남들 눈이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
은교를 갖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인물 서지우가 개입되어 있으니 상황은 복잡해진다.
은교를 사랑하는 서지우가 아니라 은교를 갖고 싶어하는 서지우라 칭한 이유는
서지우는 이적요에 대한 열등감을 은교를 갖음으로써 상쇄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적요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서지우에게는 돈주고도 사지 못할 젊음이 있다
이 사이에 은교는 '난 지금 재밌으면 좋아. 좋으면 좋아. 싫으면 싫어. 랄라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순수를 넘은 백치는 평생을 고상한 척 살아온 이적요를 웃게하는 존재가 되고,
이적요를 샘내는 서지우에게는 탐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결론적으로 누구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한 이들은 이적요와 서지우 인 듯 보인다.
특히 서지우는 때때로 이적요가 아닌 은교를 질투하는 듯도 싶다.
은교는 그 두 사람의 애증관계 속에서 공통분모가 되어주는 유일한 존재이다.
이러한 관계속에 서로 상처입히고 상처입는 과정들을 그려낸 은교.
나이듦에 대해 가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