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임플로이 The Employees - 22세기, 어느 직장에서
올가 라븐 지음, 마르틴 에이트킨.이수현 옮김 / 다람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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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에 대한 논의가 쏟아지는 지금 꼭 읽어보아야할 소설. 가장 첨예한 주제들을 현실감있게 엮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음. 중편분량의 스피디한 진행으로 진중한 질문들을 너무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인터뷰형식을 통한 서술방식도 독특하고 몰입감 엄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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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김미월 외 지음 / 다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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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되는 순간, 엄마가 아닌 자기는 모두 잘라내야 하는 걸까. 모든 내내 가슴이 먹먹해서 눈물 한 바가지. 아이를 낳든 말든 나는 나이고 싶은데, 나일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 때마다 꺼내들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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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플레저
클레어 챔버스 지음, 허진 옮김 / 다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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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없이 어떻게 여름을 건널 수 있을까?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거대한 행복이 아니라 삶을 버티게 할 작은 기쁨들이라는 것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소설.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에 밀려오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소설을 다 읽고 난 이후에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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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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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리는 인도란 여행소개서 표지와 다를 게 없었다. 아름다운 면직물과 의상들이 상점을 가득 채우고 강렬한 향신료냄새가 골목을 채우는 환상적인 신의 나라. 막연한 상상만을 가지고 저가항공 비행기 표를 충동 구매했다. 열여섯 시간 만에 도착한 인도는 그러나, 현실이었다.

매운 향신료 냄새보다는 뿌연 매연이 매일 아침 펼쳐졌다. 신비롭고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착한 사람들 사이로 너무도 많은 성추행범들, 도둑들, 사기꾼들이 섞여있었다. 길마다 버짐이 핀 입을 벌리고 누워있는 어린 아이들과 그들을 이용해 구걸을 하는 어른들이 있었고, 상하수도가 개발되지 않은 인도변에서는 함께 앉아 배설을 하는 개와 사람들이 있었다. 수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아 온수는 양동이에 담겨 옮겨지던 (이름만은) 호텔과, 갈색 피부의 위대한 왕이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유물 입구에서 백인 여행객들에게 손을 비비며 흥정을 하는 인도인 가이드들과, 너무도 복잡하고 많은 서류처리와, 그걸 읽지 못해 머뭇거리던 사리를 입은 여성들과, 길 가던 인도인 남자의 멱살을 잡아채 따귀를 때리던 인도인 경찰과, 번들거리는 핑크색 루즈를 바르고 성 외곽에서 빤을 씹으며 웃던 히즈라……. 이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개, 쥐, 바퀴벌레, 소 등을 포함해) 악취 나게, 빽빽하게 살아있게, 인도를 채우고 있었다. 인도는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돌아온 후 인도를 여행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여행감상을 말하던 한 사람은 정기적으로 갠지스강의 물이 범람해 고초를 겪는 바라나시에서 상하수도관 정비하는 것이 ‘바라나시스러운 경관’을 해치는 짓이라며 반대했다. 여행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여행자라는 위치에서 구성해내는 현지가 동시대성이 결여된, 납작한 합판에 그려진 세트장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안 채, 누군가의 현실을 내가 원하는 대로 납작하게 그려내 즐기는 것은, 내게 소중한 마음을 베풀었던 인도인들에게 더없는 결례였다.

그때 만약 이 책이 나왔더라면, 나는 그에게 이 책을 꼭 권했을 것이다. <지복의 성자>는 2차원의 배경에 불과했던 인도를 3차원의 현실로 등장시킨다. 익숙해질 무렵마다 등장하는 생경한 장, 단어, 인명, 문장들의 배치는 처음 봤을 때 언뜻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특히 장마다 뒤바뀌는 화자는 기억력이 나쁜 내게 줄거리를 정리하는데 혼란을 주었다.
그러나 책의 절반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자연스럽게 들어왔는데, 책을 끝내고 나서는 그것이 확실하게 작가가 인도를 보여주는 방식의 하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뒤섞인 줄거리는 인도에 대해 알고 있다고 자만하는 독자 앞에 낯선 옷을 입힌 인도를 보여주며 편견을 떨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제대로 된 진실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손으로 다 꼽을 수 없는 수의 공용어를 가진 나라를 한 사람의 언어로만 전달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인 짓인가. 한 사람의 목소리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 함께 외치면 된다는 듯이 여러 사람의 관점을 통해 작가는 튼튼하게 소설을 엮었다.

두 번째로 작가의 뛰어난 뻔뻔스러움은 히즈라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이다. 여성납치, 여성강간, 매매혼, 조혼, 할례 등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부장제가 팽배한 인도를 대표하는 표본으로서 히즈라(트랜스젠더, 젠더 퀘스처너리, 젠더플루이드 등 성별이분법에 포함되기를 거부하는 존재)를 등장시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안줌은 그저 히즈라인, ‘특이한’ 주인공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그는 너무도 복잡한 내용을 가진 입체적 캐릭터다. 그는 무슬림이며 몽골족의 후예이며 남자였으며 여자이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을 떠났으나 끝내는 가족을 일궈 엄마가 되었고, 춤추고 노래하며 돈을 버는 히즈라이지만 아픔이 정확해질 때까지 침잠하는 장례식장의 주인이기도 하다. 안줌은 중심을 설명하는 반의어로서만 존재하는 변두리를 이야기의 장 중심으로 끌어온다.
그는 (무슬림으로 태어났다는 점에서) 변두리에서 태어나 또다시 콰브가라는 변두리로 떠나간 인물이면서 여전히 묘지에 자리를 잡고 변두리를 지키는 인물이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 역시 변두리로 몰렸거나 그곳에서만 살아있을 수 있는 인물들이며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중심을 되찾겠다고 결연하기보다, 자신들이 살아있는 곳을 잔나트로 여기며/만들며 살아간다. 주의할 것은 그것이 카스트제도에 대해 굴종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왜냐하면 핍박받으며 죽음으로 내몰리는 그들의 존재가 살아있는 것, 지복을 누리는 것 자체가 카스트에 맞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은 하층민들에게 죽음의 안식을 허락하는, 천박하게 손가락을 벌리고 박수를 치는 히즈라 장례사. 안줌은 어쩌면 중심의 변두리에 중심으로부터 죽임당한 시체들을 묻어 중심을 포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무사가 비플랍에게 한 말을 (‘그때쯤 너희는 공기총으로 우리 모두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부 눈이 멀게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눈이 성한 너희들은 너희가 우리에게 한 짓을 볼 수 있을 거야.’(책 567p)) 피를 묻히지 않고서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세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것은 첨예한 여성 문제에 대한 복합적인 사고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낙태/인공임신중절이 그려진 부분이었다. 2019년엔 한국에서도 낙태죄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낙태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지정받는 사람들의 몸에 선명하게 그려진 문제이다. 낙태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소지, 그것을 안전하게 제공받을 수 있는 의료적 인프라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가라는 문제는 틸로가 무사와의 관계에서 임신한 아이를 지우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틸로는 임신을 거부하고 그로인해 의사에게 뜨거운 눈총을 받는다. 눈총을 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그는 자신의 몸에 벌어지는 일인 낙태를 할 때조차 병원에 의해 (남성)보호자의 동의를 요구받는다. 결국 동의를 구하지 못한 틸로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무마취 수술을 받는다. 수술을 받고 누운 병원에는 틸로가 받은 열악한 의료시술조차 받지 못한 채 쓰러져있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미스 우다야 제빈의 생모인 레바티는 고문 도중 강간을 당해 우다야를 임신한다. 그는 모진 고문을 당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부모와 마찬가지인 공산당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충직한 복귀에도 당은 임신한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쫓겨난 그는 숲으로 가 우다야를 낳게 되었다. 강간의 증거인 아기를 죽이려 총을 댔으나 그는 결국 아기를 죽이지 못하고 그 아기는 틸로에게 가 미스 제빈이 된다.
레바티의 이야기는 여성혐오적인 환경 속에서 여성의 몸이 여성 스스로에게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극명히 드러내는 강간고문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쉽게 낙태에 접근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허용받지 못한 임신을 했기에 내몰리는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위험한 출산을 하고도 엄마 되기를 거부하고 신념을 따르다 죽은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서사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는 생존자로 나아가고,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잔나트로 다시 전달하며 증언자의 위치까지 도달한다.

끝으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안줌과 틸로를 주축으로 한 여성인물들이 폭력에 맞서는 방식이다. 인도의 폭력의 역사란 하늘을 가득 메우는 미세먼지처럼 두껍게 쌓여있다. 그 내용이란 대부분 잘 알고 있는 식민지부터 멀리는 종교분쟁으로 표현되는 고대왕국들의 전쟁이고, 가깝게는 다국적 기업의 정재계적 환경적 식민지화와 국가주의적 정부의 인권탄압이다.
강자들은 더 많은 돈과 힘을 갖기 위해 약자를 선택해 수탈한다. 약자들은 가꾸던 밭이 댐 건설에 사라지고, 종교가 다르고 카스트가 낮다는 이유로 사담의 아버지처럼 거리에서 죽음을 당하기도 하며, 미스 제빈처럼 민족의 상징이 되지 않고서 평화롭게 죽을 권리를 박탈당하기도 한다.
이런 불합리한 방식에 대한 사담과 무사의 대처는 분노이다. 사담은 자신의 원래 이름을 버리고 사담을 선택하며 자신의 아픔을 스스로 비난한다. 그는 직접적인 행위로 폭력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으나 이름으로써 적의와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더 노골적인 방식은 무사가 선택한 것이다. 정보관에 꼼짝없이 잡혀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탐탁하지 않게 여긴 그는 직접 총을 들어 카슈미르 독립을 위한 비밀조직의 굴레즈 대장이 된다. 죽음을 불사하면서 흘리는 핏자국이 자신을 증명할 거라는 듯이.
무사의 방식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의로운 분노의 방식이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생명을 걸고 항거하는 것, 내가 쏜 총이 분명히 적을 겨누고 있음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 잊지 않고 용서하지도 않는 것. 그는 자신이 혐오하는 암리크 싱의 죽음에 손을 쓰지는 않았으나, 희생당한 자들의 (무사의 눈빛을 닮은) 분노어린 시선은 싱을 죽게 했다. 이것은 정당한 복수이다. 싱은 자신이 벌인 살인과 고문에 대한 대가에 귀결하는 끝을 맞이한 것이다. 무사의 이런 방식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무사의 방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안줌과 틸로는 앞서 말한 한 가지의 방식으로만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 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바로 사랑이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 수치스러운 삶을 견디며 사는 것이다. 안줌은 길에 버려진 왕쥐를 사랑하고 길러냈다. 또한 그는 구자라트 학살에서 무자비한 폭력을 당한 이후에 수치스러운 행운의 징표가 됐음에도 죽지 않고서 자신을 살려냈다. 그 이후에는 무덤을 차지하고 마약중독자와 거지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고 살며 상처받고 떠나온 사담을 동료로 받아들이고 죽음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의 장례식을 치러주며 살아간다. 이름 없는 무덤들을 기억하고 관리하며 멸시받았던 시체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품는 곳이 어느 곳보다 포근한 잠을 잘 수 있는 호텔이 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렇게 한 데 모여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잔나트(파라다이스)가 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틸로는 기록한다. 기록은 대상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면밀하게 관찰하는 행위이다. 그는 안줌과 마찬가지로 변두리의 인간으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나가와의 위장결혼으로 중심으로 갈 수 있는 일시적인 권한을 얻었지만,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에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나온다. 그는 자신의 삶 속으로 돌아와 두서를 잃은 엄마의 말을 기록하고, 카슈미르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증언과 사진을 기록하고 보관한다. 그는 국가폭력의 희생자 중 한 명의 이름인 미스 제빈을 다른 이에게 붙여 다시 살게 한다. 이로써 죽음은 존재를 끝낼 수 있는 힘을 잃는다. 대신 존재는 이름을 얻고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틸로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국가든, 죽음이든)에 저항해 힘의 형평성을 맞추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틸로는 기록과 보관, 그리고 수업으로 표현되는, 기억의 전승을 통해 안줌이 지어놓은 이름 없는 자들의 무덤에 그들의 이름을 다시 찾아 붙여주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말미에 등장해 소설 속 중요한 상징이 된 레바티와 우다야의 이야기에서 레바티는 강간을 통해 비자발적 임신을 하고 우다야를 낳는다. 우다야는 그 존재 자체로 레바티에게 강간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킬 것이다. 그러나 레바티는 죽임을 통한 피의 복수를 포기한다. 대신 자신이 경험한 세계가 반복되지 않을 곳에 우다야를 맡긴다. 그럼으로써 유혈복수가 곧 정의라는 도식을 깨뜨리고, 자신이 만든 생명(강간범의 이름이 지워졌다는 점에서 아기의 생명은 오롯이 레바티가 만든 것이다. 안줌은 이에 더해 강간을 우다야에게 전하지 않겠다고 말한다.)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만들며 세상을 거스른다. 이것은 새로운 방식의 복수이며 더 힘들고 정의로운 방식인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지금 인도에서, 한국에서, 세계의 변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옛날 전설 속에서 끝나버린 이야기가 아니기에 우리는 이야기에 개입할 수 있고 줄거리를 선택할 수 있으며 플롯의 순서를 바꿀 수 있다. 납작한 사진 속의 인도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가 <지복의 성자>에서 그려낸 생생한 입체의 인도를 들여다보면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그건 얼마든지 우리도 함께 소리칠 수 있는 쉼표가 많은 음악 같기도 하고, 헛기침을 내면 금방 사그라들 소음 같기도 하다.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에게 달렸다. 나는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안줌의 구성진 노래가 들리고 틸로가 가사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잔나트에서 미스 우다야 제빈이 그곳을 찾아온 모든 이들과 음식을 나눠먹는 모습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 스스로로 하여금 지복의 성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이 잔나트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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