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영원회귀와 차이의 철학 클리나멘 총서 4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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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속의 니체의 재발견

 

요즘 촛불 집회에 나가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시위에 참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선을 들고 다니는 어린아이들 부터, 교복을 입은 학생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30대 여성, 군복을 입은 예비역, 언더음악밴드 까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각자 시위 참여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이전에 우리가 자주 보았던 집회 현장과는 판이 다르다. 이전에는 누가 시키면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며 주최측의 명령에 따르는 매우 권위적이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현재 촛불 집회는 주최가 없으며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스티로품 논쟁.... 행진 논쟁.... 등 모든 시위의 주최자는 참가하는 시민들이다.

 

사회 변화에 대해 공부를 하다보면 대부분 맑스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촛불 집회를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이 집회를 통해 본 현재 세계는 맑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오히려 니체가 떠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우리는 언제나 차이를 용인한척 했지만 사실 배제하였다

 

촛불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들어보면 각자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광우병 쇠고기 문제에 대해 연변을 토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각자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교육 자율화로 감옥과 같은 학교에 살고 있는 고등학생들, 사회의 차별아래 국민의 기본권 조차 보장 받지 못하는 장애인, 빈민들, 88만원 세대라는 오명 속에 살고 있는 20대 대학생들 등 시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힘겹게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는 타인의 삶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했던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상대성을 인정하며 차이를 승인하고자 하였다. 오죽하면 지하철 광고에  다양한 색깔이 아우러 지는 세상을 만들자는 광고까지 하고있는가!  서로에 대한 차이가 승인 되는 사회가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차이라는 것이 또 다른 차별을 야기 하고 있지 않는가?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 쉽게 '나는 너와 다르기 때문에 각자 서로 인정하고 넘어가자'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것은 각자의 상대성에 대해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입장이기 보다는 나의 기준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애인을 들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에 대해 나와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며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일체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차이를 묵인의 할 뿐이다. 그리고 장애인의 차이를 승인하는 것이 비장애인에게는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즉 차이를 승인하여 비장애인의 절대성을 확신하게 되는 증거가 되고 있다. (이런 말을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장애인의 차이에 대해 인정하면서, '휴 나는 정말 저렇게 안태어나성 우리 부모님께 감사해'라는 말 말이다. 차이의 승인이 자신의 우월성을 더 강화시켜준다는 것을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예시이다.)

 

 

차이는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다

 

니체는 차이는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예를 통해 보았듯이 차이의 승인은 또 다른 배제를 의미할 뿐이었다. 그럼 차이는 생산하는 것이다 라는 말의 뜻은 무엇인가?

 

다시 촛불집회로 돌아가보자. 촛불집회는 각자 다른 사람들이 광장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다양한 목소리는 차이의 생산성을 의미한다. 즉 서로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공론화 될 때 그 차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생산 하는 것이다.

 

차이는 생산하는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도 감을 잡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차이를 단지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차이의 승인이 나의 존재의 절대성을 정당화 하는 것으로 사용되지 않아야 한다. 차이는 차이로서 존재 하지만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발췌 ([철학의 외부-이진경]

 

니체에 따르면 차이는 무엇보다도 긍정과 생성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생성되는 것. 그것은 기존의 것이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차이의 생성 내지 다른-것이-되기로서 차이의 정치는 차이의 승인이나 인정과 다르고, 은폐되고 억압된 차이를 드러내는 것과도 다르다. 그것은 동일성을 강제하는 기존의 체제 안에서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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