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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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의 인연은 알 수가 없다. 처음에는 스치듯 지나갔다가, 두 번째 만남에서 살짝 눈에 들어오더니, 세 번째 마주침 만에 비로소 내 품에 안겼다. 이 책과의 만남이 그랬다. 그렇게 내 안에 들어온 글은 죽비소리가 되어 나를 내리쳤다. 저자의 풍요로운 교양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분석과 올곧으면서도 겸손한 필체까지…….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한 채 뱉어내는 이론과 외국어마냥 난해한 문장으로 독자를 시험에 들게 하는 먹물들(?)과 전연 다른 면모의 학자를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그렇다고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김소연 시인의 말처럼 복잡하더라도, 복잡하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감당하는 책이 더 가치가 있다, 이러한 도전은 언제고 환영이다.

 

 

사람의 조건

 

이 책은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혁명으로 인해 쫓겨나 적국인 독일의 장교가 된 작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인 페터 슐레밀은 우연히 만난 악마에게 그림자를 팔고 금이 무한히 나오는 행운의 자루를 얻는다. 그러나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자 그제야 그림자 판 것을 후회한다. 그 후 다시 나타난 악마는 그림자를 돌려줄 테니 영혼을 팔라고 제안하지만 슐레밀은 단호히 거절하고 행운의 자루를 물속에 던져버린 후에야 비로소 악마로부터 해방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림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p.12)이라고 말한다(강조는 원문). 더 나아가 그림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과 달리 가시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육체처럼 장소를 필요로 한다. 돈은 많았지만 나라(장소)가 없어 떠돌았던 유태인들처럼 그림자가 없다는 이유로 슐레밀은 자신이 속한 장소로부터 성원권(membership)을 박탈당한다. 저자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p.26)이라고 말하며 사람, 장소, 환대라는 세 개념을 통해 사람으로 살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먼저 저자는 사람과 인간의 차이점을 밝힌다.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획득되는 자연적 존재라면, 사람은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p.31, 강조는 원문) 비로소 구성원이 되는 사회적 존재다. 생명은 있지만 아직 사회로 나오지 않은 태아, 얼굴과 이름을 빼앗기고 그 자리에 있지만 없는 듯 행동해야하는 노예, 총알이나 포탄같은 소모품으로 취급되는 군인, 사회 바깥으로 추방된 사형수는 상호작용의 지평(p.58)인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기에 사람이 아닌 존재로 취급된다. 사람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아야 하고, 이를 위한 투쟁은 사람이 되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무시와 모욕을 넘어서는 환대

 

성원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환대.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자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이며, 이러한 인정은 그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몸짓과 말을 통해 표현된다.(pp.207~208) 이러한 환대를 통해 사람들은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고 성원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환대는 나이와 성별, 권력과 계급, 출신과 신분 등에 의해 쉽게 위협받는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드라마 <송곳>의 대사처럼 주인의 자리에 서는 순간, 우리는 환대를 베풀기보다 모욕을 주는 존재로 바뀌기 쉽다. 자신을 썸바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라고 외치며 조현아 부사장처럼 이미 출발한 비행기를 회항하게 만들기도 한다. 로버트 풀러는 이러한 지위의 남용을 신분주의(rankism)라는 말로 비판한다(p.164).

저자는 한국 사회가 신분제로 회귀하고 있으며 이제는 소득수준이나 교육수준을 넘어 주거지, 학교, 소비시장, 언어(이중언어 사용과 단일언어 사용)에서까지 계층적 분리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신분주의와 학교 폭력의 연관성을 언급하며 사회의 위계와 닮은 교실의 위계가 왕따와 폭력을 양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는 겉으로는 존중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경멸을 가르치는 공간이고, 이를 통해 아이들은 사회에 나갔을 때 꼭 필요한 두 가지 기술경멸하는 법과 경멸에 대처하는 법을 익힌다는 것이다.

얼마 전 뉴스로 접한 동영상은 교실이라는 무대 위에서 날마다 상연되는 잔혹극(p.167)의 극치를 보여줬다. 남학생 3명이 교사를 파리채와 빗자루로 때리고 영상을 찍는 학생은 키득거리지만 어느 누구 하나 말리는 학생이 없다. 교사는 그저 그만하라는 말만 반복할 뿐 저항하지 못한다. 이 영상이 공개된 후 영상에 등장하는 학생의 SNS에는 저런 쓰잘데기도 없는 기간제 빡빡이 선생님을 때린 게 잘못이냐, 맞을 짓하게 생겨서 때린 거다라는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대체 아이들의 눈에는 그 교사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졌을까? 사람이 아닌 노바디’, 아니 어쩌면 그 자리에 있지만 그 자리에 없는 듯 비가시적인 존재로 남아야 하는 노예처럼 생각됐는지도 모른다.

 

 

절대적 환대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환대는 유토피아적 환상으로만 들린다. 어떻게 저런 아이들을 환대한단 말인가? 의자 놀이처럼 언제 내 자리를 뺏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 나의 의자/자리를 선뜻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저자는 신원을 묻지 않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복수하지 않는 환대(p.242)야 말로 절대적 환대라고 말한다. 저 아이들의 행동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 체벌로 처리하는 것은 어쩌면 그들이 사람이 되어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인지 모른다.

환대(hospitalité)의 어원 오트(hôte)’는 주인과 손님을 동시에 의미한다(p.68). ‘베푸는 이받는 이를 아우르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주인일 수만은 없고, 누구도 손님일 수만은 없다. 내가 사회로부터 받아들여졌듯이 우리에게 이질적인 존재 역시 수용과 포용의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p.26)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환대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 공공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간다면서 환대는 공공성을 창출하는 것(p.204)이라고 강조한다. 타자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공통의 감각을 찾아가고자 함께 노력하며 공공의 영역을 넓혀갈 때 비로소 절대적인 환대가 가능하다. 그 학생들을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잃어버린 그림자를 함께 찾아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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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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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시작된 그녀와의 첫사랑. 그래서일까. 는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처럼 읽힌다. 인도인으로 미국에서 자라 이탈리어로 소설을 쓰는 여자. 줌파 라히리 그녀가 선택한 삶 자체가 한 편의 소설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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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수학 - 21세기 수학과 생물학의 혁명 이언 스튜어트 3부작 1
이언 스튜어트 지음, 안지민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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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수학의 세계를 넘나드는 이언 스튜어트의 마법과도 같은 글쓰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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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자라고 살면서 배우는 아이들 - 공동육아 3
이부미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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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를 통해 바라본 공동체의 삶과 생활은 부모되기가 무엇이고 가르침과 배움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공동육아뿐만 아니라 진정한 교육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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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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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하고 불편한 부분에 마음이 들썩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녀의 진솔한 글을 보며 `민낯의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나는 민낯의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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