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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양원근 지음 / 정민미디어 / 2023년 6월
평점 :
12% 배고품은 밥 두 세그릇으로 행복감이 더 커지는데 한계가 있지만 지적 쾌락은 많이 넣을 수록 더 길고 깊은 쾌락을 가져다준다.
-> 결과적으로 저자가 말하듯 정신적 욕망이 육체적 욕망보다 우위에 있음을 잘 설명 해 준다.
12% 에피쿠로스는 “물과 빵만 있으면 나는 신도 부럽지 않다”라고 했다.
-> 그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지적 욕망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지적 열반(정신적 쾌락)을 들기 위한 수도승이었나 보다.
18%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자유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곧 우리의 행동을 평가할 수 있는 잣대를 이미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른다. 보통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에서 무리나 공동의 약속을 어기고, 보편적으로 ‘악’이라 여겨지는 행동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것을 ‘죄책감’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니체는 ‘도덕적 죄책감’을 심리적으로 파편화시켜 개인에게 내면화해서 심어주면, 인간 사회를 통치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양심이라는 게 있고, 무엇이 나쁜 행동인지에 대해서 개개인이 죄책감을 통해 판단할 수 있기때문이다.
ㅡ> 이상적인 말이다. 그러나 양심, 죄책감을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양심과 죄책감에 민감해 진다고 염세적이거나 비관적이지 않지 않겠는가!
-> 잠깐 더 나아가 쳇Gpt에 물어보니 감수성을 키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교육방법적 측면서 위와 같은 부작용 예방이 중요하다는 결론.
22% 너 변했어라는 연인간의 대화는 남자 입장에서 편안해 졌음을 의미하나 여자 입장에서 그렇지 않은게 일반적. 대부분의 남자들은 도파민이 3년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도.
19-21% (커피가 침대라면 요약)
프랑스 20세기 지식인이자 철학자 푸코는 언어도 구조화 되어 있다고 주장. 어디 대학나왔어라는 질문에 대학을 나오지 않았을 때 대답하는 표현과 이를 듣는 이의 해석이 모두 개인의 구조화 정도에 따라 다름. 스위스 언어학자 소쉬르는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등의 주장에ㅜ대해 구조주의라고 정리. 언어란 이미 존재하고ㅠ있는 관념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아름을 붙임으로써 그 관념이 우리의 사고속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정의. 푸코는 인간은 자신들의 활동의 표준화 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이것이 언어를 통해 구조화를 이루고 이것이 제도가 되면 권력이 된다고 결론. 푸코는 인간이 편리성을 위해 만든 제도와 권력관계 안에서 몸부림치는 한낱 존제로 봄.
21-23%(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 요약)
모든 만물은 변한다고 주장한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페르메니데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발을 두번 담글 수 없다고 한 헤라클레이토스와 변화하는 세상의 많은 현상을 허상으로 보고 이성으로 본질을 꿰뚫어 보야 한다는 페르메니데스. 나는 시간의 흐름속에 어떤 부분을 변화 시키고 어떤 부분을 지켜 나갈것인가?
24% 에피쿠로스는 쾌락에는 동적 쾌락과 정적 쾌락이 있다고 했다. 동적 쾌락은 결핍이 충족될 때 우리가 느끼는 쾌락이고, 정적 쾌락은 마음에 불안이 없고 몸에 고통이 없는 평정 상태를 의미하며 이를 참된 쾌락이라 여겼다. 이 중에서도 아타락시아는 고통도 불안도 없는 영혼의 절대적 평온함을 의미하는데, 쾌락의 정점이라고 여겼다.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우리는 한번 일어난 일은 무효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감사함을 통해 지난날의 잘못을 치유해야 한다.”
25% 이 부분에 북한산 정상에서 마신 맥주의 쾌락을 언급함.
27% 카르페 디엠(지금 이순간에 충실하라 -라틴어) 아타락시아는 평정심의 행복 상태를 말한다. 지속적이고 정신적이고 정적인 행복.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시도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할 것.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 '당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함으로써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망치지 말라. 당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당신이 한때는 그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속한다.’
30% 한 사람이 자신의 팀이나 조직을 잘 경영하여 얻는 것이 부와 성공이라면, 자신의 삶을 잘 경영하여 얻는 것은 바로 ‘행복’이다.
-> 저자는 자신의 객관화를 강조하면서 니체가 말한 '나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말을 인용했다. 결국 메타인지를 통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행복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32%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은 결국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 답이 여기에 있다. 왜 우리가 많은 단체나 모임에 속하고 있는지. 그 사람들로부터 덕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 객관화가 되는 것.
* 파리정치 대학 철학자 샤를 페펭은 ‘나는 나 자신과 만나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고 타인과의 만남을 필요로 한다.고 함
34% 홍콩 이가성 회장이 30년 자신의 기사 퇴지금으로 3억여원을 주려고 하자 거부하며 월 100만원 정도 수입으로 36억을 모았다는 말을 듣고 이유를 묻자 30년 동안 회장이 하는 투자를 따라했다고 했다.
-> 서당개 3년이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는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모티브로 하여. 심지어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한테도.
*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서양의 역사에서 악처 중 악처로 유명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아내를 잘 참고 견딤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37-39% 요약하면 걷기 예찬이다.
-> 걷기 산책을 좋아한 위대한 사상가가 소개되어 있음.
39% 사람 일이란 겉으로 보기엔 복잡해도 속으로 들어가 보면 ‘역지사지’와 ‘배려’ 그리고 약간의 인내만 있으면 대부분 해결된다.
-> 매우 아주 공감이 된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갈등도 있지만 해답은 역지사지, 배려, 인내가 맞다. 십분 공감이 된다.
40% '사랑은 나의 행복 사랑은 나의 불행' 김란영의 빛과 그림자라는 노래 가사.
-> 얼마전 미스터 션사인의 대사에서 나왔던 표현이다. 최명근 자살건을 수사하면서 내연녀을 사랑했다가 불행으로 귀결된 것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이렇게 불쑥불쑥 눈에 들어온다.
40% ‘건강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병이며, 배부름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배고픔이고, 휴식을 달콤하게 만드는 것은 피곤함이다.’(울보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 처음에 공감이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빛과 어두움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알듯도 하다. 한쪽을 인식은 다른쪽의 인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41%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게 아니라 악이라는 건 선이 존재하기에 있는 것이고, 선 역시 악이 있어야만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 그렇다고 악이 쩔 수 없이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선이 추구될 수록 악도 선명해 진다면 선을 추구하는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20260429 0703). 이 파트는 다서 난해 하다. 마지막 문장이 어둠이 걷히고 곧 빛의 시간이 올 것이라고 했는데 그럼 다시 그만큼의 어둠이 오는 것 아닌가. 이 순환논리를 어떻게 이해 할 수 있지?
48% 고소공포증을 포함해 사람이 가진 대부분의 공포증은 모두 ‘걱정’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 걱정은 99%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며,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 방식을 ‘걱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걱정이란 두려움과는 좀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두려움은 대상이 존재하는 반면 걱정은 대상이 없다.
-> 그렇다. 인간은 생존 때문에 공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원시시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경에서 비릇된 것이 아닐까. 현대 문명과 사회는 그런 일나지도 않을 공포 때문에 염려하거나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불필요한 걱정을 내려 놓아야 한다. 다만 공포가 꼭 생존에만 기반하지는 않을테니 인간지사 수많은 걱정을 모두 내려 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49% 고대 로마의 작가 히기누스의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염려’라는 신이 흙을 발견하고는, 그 흙을 한 덩이 떼어내 무언가를 만들었다. 염려의 신은 주피터 신에게 “이 작품에 혼을 넣어달라”라고 부탁했다. 주피터가 혼을 넣고 나서는 “이 작품의 이름은 내 이름으로 하자. 내가 혼을 넣었으니까”라고 말하자, 염려의 신은 “절대 그럴 수 없다! 내가 만들었는데 왜 너의 이름을 붙이느냐!”라며 싸움을 하게 됐다. 둘이 한참을 싸우고 있는데 대지의 신 텔루스가 말했다.
“내 몸의 일부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내 이름을 붙여야지 무슨 소리냐!”
싸움이 끝나지 않자 시간의 신인 사투르누스가 다가와 이렇게 판결했다.
“주피터는 혼을 주었으니 그가 죽을 때 혼을 받고, 육체 일부를 준 텔루스는 그가 죽을 때 육체를 받는다. 그리고 이 존재를 처음 만든 건 염려의 신이니, 살아가는 동안에는 염려의 것으로 하라. 이 존재의 이름은 후무스, 즉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호모(인간)’라고 부르겠다.”
하이데거는 이 우화를 통해 인간의 존재 방식이 염려라는 것을 표현했다. 인간이 살면서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염려를 벗어나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 걱정이 어디에서 발원되었는지 이야기하기 딱 좋은 우화다.
51% 아리스토 텔레스는 두가지 이기심으로 탐욕과 일생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혜, 정의, 아름다움, 선함을 쫓는 마음 역시 이기심인데, 이는 매우 숭고하다고 말한다.
60%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 이 장에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나오고 마지막 싯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이다. 그 뒤 문장을 읽다가 문득 이 구절에 딱 많는 상황 표현이 생각 났는데 그 아래를 읽다가 휑하니 사라지고 말았다. 그 느낌을 남긴다.(20260430 2255. 원주행 고속버스 안에서)
62% 크리스마스 트리의 유래. 마틴루터가 성탄절 근처 밤에 집에 가다가 상록수에 쌓인 눈과 별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다른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상록수를 잘라 가져 간 뒤 별도 달고 십자가도 달면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고 우리나라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다고..
->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때쯤 이야기거리가 되겠다.
68-70% -> 푸코의 정상과 비정상관련(지배적 정상과 지배적 질서 대 비정상과 무질서) 이야기이다. 개인마다 사고와 관점의 차이일 뿐 정상도 비정상도 없다는 건데 그렇다면 옳음과 그름도 분간할 수 없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인류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변할 수 없는 옳음과 그름이 있지 않을까?
71% 오컴의 면도날 이론은 과학, 경제 등 다양한 곳에서 적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 원리는 절약의 원리, 경제성의 원리, 간결함의 원리라고 불리기도. 불필요한 가정을 할 필요는 없기에 다 잘라버리고 나머지로 설명하면 훨씬 더 명료해진다는 뜻이다. 그리스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는 ‘가장 단순한 가설로 설명할 수 있으면 그것이 좋은 원리다’라는 명언을...
-> 언젠가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메모
75% 칸트가 말했다. 이해는 폭력이다. 스타일의 폭력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의 말과 행동에 조금은 더 배려가 담길 것이다.
-> 읽는 순간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이것은 폭력이 아니다. 다만 다른사람이 내가 이해하는 것과 같이 이해하도록 하는 것. 더 나아가 그렇게 이해 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폭력이다. 어떤 사건에서 논쟁이 발생할 때 써먹기 딱 좋은 말이다. 그렇다. 이해의 폭을 넓힌다는 것은 결국 나의 말과 행동에 배려가 필요함을 의미한다는 것에 상당한 공감이 된다.
84%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 사람은 기준에 따라 언행은 물론이고 표정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그것을 절제하는 노력을 통해 자기를 성찰할 수 있지 않을까.
* "성찰"이 생각나지 않아 쳇gpt와 제미나이에게 문장 완성을 요청했더니 제미나이에서 답을 얻었다.
* 칸트의 윤리학은 결과보다 의도를, 존스튜어스 밀 등 공리주의는 반대라고 한다.
84% 이렇게 내가 상냥하게 한 말들에 ‘네’, ‘알겠습니다’ 등의 드라이한 답변이나 앞뒤 없이 할 말만 딱 보내는 문자를 볼 때마다 상심하곤 한다.
-> 나도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지성적인 작가도 그런 마음을 내려 놓지 못한다는게 뜻밖이었다. 나는 언젠가 부터 내 마음을 편하기 위해 했으니 그거로 된거다라고 위안을 삶기로 했다. 타인으로 인해 유쾌하지 않을 것으면 내 중심적으로 나 편하게 생각하면 될것 같아서이다. 그렇게 자기중심주의에 빠지다 보면 상심이 사라지지 않을까.
92%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이지만 우리가 꾸는 꿈이, 우리가 가는 길이 곧 다다를 수 있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견딜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작가가 등산을 비유하고 쓴 표현이다. 북한산을 오르면서 다 왔다. 조금만 가면 된다는 일행의 말을 믿고 정상에 오른 뒤 쾌감을 느꼈다면서.
94% “상대가 부분적으로 오해를 할 때는 해명하라. 만약 전체적으로 오해를 한다면 해명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시간 낭비다.”(니체)
-> 어떤 느낌인지 알듯 모를듯.. (완전 이해 될때 여기에 이어 넣기로..)
94% 미국의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는 ‘비폭력 대화’ 말로써 상처를 주고받지 않도록 최대한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대화를 의미
->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기본에 두고 하는 대화를 말하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