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마다 살아온 환경도, 하고 싶은 일도 모두 달라 나는 한 입으로 백 마디 천 마디를 하는 기분이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답했지만 그것이 과연 아이들에게도 최선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하는 말들이 두려워졌다.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경험에 근거해 최선의 답을 찾아 전해도 ‘삶‘이라는 불확실하고도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내가 하는 말들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웠다.

- 내 앞길은 모르는 진로진학 전문가 - P43

어머, 선생님 이름이 자소서야?
아, 그건 아닌데요...

웃으며 말하긴 했지만 분명 내 목소리 어딘가에 미묘한 불편감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그것을 알았을까. 머쓱하게 뒷머리를 북북 긁다가 아이가 겸연쩍게 웃었다. 나도 마주 웃어주며 작은 소리로 ‘내 이름은... 하려다가 관두었다. 첫날에도 내 이름을 번호와 같이 적어 주었더랬다. 애초에 적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겠지. 잠시 스쳐가는 인연에게 뭐그리 의미 있는 이름과 서사를 부여할까. 나는 아직 멀었구나. 이렇게 아이들에게 기대를 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오래 남고 싶어 하니 이것도 병이다. 아니, 인정받고 싶다기보다는 그래도 내 이름이 자소서는 아니니까요. 그게 아직 덜 되었다는 거다. 아니, 그게 아니라...

- 아이는 내 이름을 ‘자소서‘로 저장했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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