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고 조금 더 나은 상태, 기존의 상태에서 벗어난 단계로 이동하는 변화.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변화의 시도와 기록 그 자체였다.

성공의 반대말은 실패지만,
변화의 반대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스스로가 만든 지푸라기를 잡고 떠오릅시다!

그게 성곤의 채널에 쓰인 프로젝트 홍보 문구였다. - P212

전에는 자신의 삶만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는 누군가의 삶을 바꾸게 할 수도 있는 어떤 것을 꿈꾸고있었다.
김성곤 안드레아는 한때 자신이 정했던 성공이라는 기준에 아직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좌절감과 불안함이 엄습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어깨를 폈고 세상을 충실하고 온전하게 감각하려 애썼다. 그런 태도가 내면의 근육을 단련시켰다. - P213

적어도 그가 운전하는 차는 직진하고 있지 않은가. 그 운전대를 쥔 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그는 자기만의 길을 달리는 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미소 지을 이유는 충분했다.
- P220

그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지쳐 있었다.
- 겁나?
- 네. 실수하고 실패할 것 같아서 겁나요. 사람한테서 다시 상처받을까봐 두렵고요.
진석이 실토했다. 성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잘 들어. 딱 한번만 말할 거니까 기억해두는 편이 좋을 거야. 넌 절대로 원하는 만큼 한번에 이룰 수는 없어. 세상이 그렇게 관대하고 호락호락하지가 않으니까. 근데 말이지. 바로 그만두는 건 안 돼. 일단 안 돼도 뭔가가 끝날 때까지는 해야 돼.
- 언제까지요?
- 끝까지.
- 끝이 언젠데요.
- 알게 돼.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상황이 끝나든 네마음이 끝나든, 둘 중 하나가 닥치게 돼 있으니까.
-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 다시 시작해야지. 네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 뭘요?
- 되는 것부터 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중 되는 것부터, 운동이든 공부든, 책을 읽는 거든. 하다못해 나처럼 등을 펴는 게 됐든. 너 혼자 정해서 너 스스로 이뤄낼 수 있는 것부터.
진석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피스텔을 쓱 둘러봤다.
- 그동안 고마웠어요. 여긴 제 둥지 같은 곳이었어요. - P224

삶의 가장 큰 딜레마는 그것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삶은 방향도 목적도 없이 흐른다. 인과와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종종 헛된 이유는 그래서이다. 찾았다고 생각한 정답은 단기간의 해답이 될지언정 지속되는 삶 전체를 꿰뚫기 어렵다. 삶을 관통하는 단 한가지 진리는, 그거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뿐이다.
영원할 거라 생각했던 김성곤의 행운도 삶의 진행 속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구름이 우연히 빚어낸 신의 형상을 바람이 금세 뭉개버리는 것처럼, 짧고 허망하게 모든 것이 사라졌다. - P237

- 그거 알아? 정말 어려운 건 힘든 상황에서도 어떤 태도를 지켜내는 거야. 난 당신이 그걸 해낸 줄 알고 응원했어. 진심으로 노력해서 결국 바뀌었다고 생각했지. 근데 당신은 허영에 빠져 자만한 거였고 나도 내가 믿고 싶은 대로 착각한 것뿐이었어. 잠깐은 모든 게 잘돼간다고 생각했겠지. 상황 좋고 기분 좋을 때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쉬워.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런데 바쁘고 여유없고 잘 안 풀리니까, 당신은 바로 예전의 당신으로 되돌아갔지. 그러니까 당신은 전혀 변하지 않은 거야. 넌 끝까지 그냥 원래의 너 자신일 뿐이라고. - P252

- 세상에 던져졌으니 당연하지요.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는데 좁은 배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다가 갑자기 발가벗겨진 채로 세상에 던져졌잖아요. 인간은 탄생부터가 외롭고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무슨 수로 알겠어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쥐어보는 거지요. 쥐었던 게 운 좋게 잘 풀리기도 하고, 이건 아닌데 싶지만 쥐었던 걸 놓을 용기는 없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꼭 쥐고 있기도 하죠. 그러다가 누군가가 그걸 빼앗아 가면 다시 세상에 던져진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불안해하는 겁니다. 손에 잡히는 것도, 의지할 데도 없이 발가벗겨진 채로 버둥거리고 있으니까. 다들 그러고 삽니다. - P258

박실영은 삶을 적으로 만들지도, 삶에 굴종하지도 않았다. 인생이라는 파도에 맞서야 할 땐 맞서고 그러지 않을때는 아이의 눈으로 삶의 아름다움을 관찰했다. 어떤 삶을 겪어내야 그의 얼굴에 새겨진 단단한 평화로움을 가질수 있는 것인지 김성곤은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 P259

- 그리고 내 보기에 당신은 잘 살아온 것 같아요. 계속 삶에 대해 알아내려고 애쓰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잘했어요. 아주, 잘했습니다.
박실영이 성곤의 손을 잡았다. 그러곤 그의 등을 꽤 세게, 두드려주었다. 그의 거친 듯 다부진 손과 등을 두드리는 적당한 힘이 커다란 이불처럼 성곤의 상처를 헤아리고 어루만졌다.
잘했다. 아주 잘했다. 잘 산 인생이다.
가슴에 꽉 들어찬 박실영의 말에 성곤은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자신은 잘하지 못했다. 실수도 많았다. 잘못 산 인생이었다. 그런데도 잘했다는, 잘 살았다는 그 말이 너무 고마워서, 그 말을 혼자만 담아두기엔 너무 버겁고 부끄러워서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두 남자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김성곤은 굳이 그들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을 보는 그들의 생경한 눈빛마저 고마웠다. 잘했다. 참 잘했다.
그 말이 가슴속을 계속 맴돌았다. 그 말을 다시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그런 목적으로 사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P260

때로 삶을 지탱하는 기둥은 이토록 작은 단서에서부터 출발한다.
김성곤은 이해할 수 없는 삶 앞에 겸허히 머리를 숙였다. 그러곤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삶에 대적하거나 삶을 포기하려 하는 대신에, 삶과 동등한 입장에서 악수를 나누기로 했다. - P261

언젠가 내게도 모든 게 침잠되고 고통이 점점 커져간다고 느껴지던 시간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견디게한 건 가까운 사람들이 주는 위안과 위로의 말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괜찮다거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거나, 이대로도 좋다는 말은 눈물을 그치게 했으나, 냉정히 말해 그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곧 그런 말들은 공허하게 휘발됐다. 나를 다시 일어서 걷게 한 건 언제나 다시 해보라거나 응원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혹은 내 내면의 담담한 어조였다.
응원을 받으면 아무것도 아닌 시도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바뀌었고, 다시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 작가의 말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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