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한 사람의 의사가 진료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많은 환자를 보게 하고 수가가 낮기 때문에 그래야만 정상적으로 병원이 경영된다고 의사들에게 압력을 넣는다. 환자의 말을 한마디라도 더 듣고 환자의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는 의사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진다. 환자를 장기별로 분리해서 보는 전문화의 추세 속에 전인적인 진료는 멀어져가고 그 과정에서 의사도 매우 한정된 의료 행위만 할 수 있는 기계의 부속품과 같은 존재가 된다. 그것은 해리 브레이버맨 Harry Braverman이 [노동과 독점자본」에서 기술한, 자본이 직공의 ‘구상‘ 능력을 빼앗고 ‘실행‘ 능력만 남김으로써 직공을 무력화시키는 과정과도 흡사하다. 우리나라의 의료는 일찌감치 별다른 저항도 못하고 자본에 포섭되었다. 국가가 의료의 공영성에 대한 의무를 내팽개친 결과이다.
진료에 할애해야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의사-환자 관계는 무너져간다. 의사를 대상으로 가져야 할 신뢰가 사라진 자리에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다양한 기계와 시설이 들어오고, 이제 환자는 의사를 보고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병원을 보고 의사를 고른다.

- 프롤로그 우리는 어쩌다 아픈 몸을 시장에 맡기게 되었나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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