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강해질 수 있어. 불합리한 사람한테 현혹당하지 않고, 필요할 때는 틀린 말로 말꼬리를 잡는 상대를 굴복시킬 수 있고, 손님을 상대할 때는 그렇게 할 수 없지만, 그럴 때도 불합리한 상대방한테 고개를 숙이는 것은 돈을 받기 위해서라고 체념할 수 있고."

- 걸어온 길 - P294

"술이라면 숙성하면서 맛이 좋아지기도 하는데 말이야."
인간은 어째서 그렇지 않은 걸까, 라며 한숨을 쉬었다.
미네는 인간을 오랜 기간 재워도 숙성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라는 표정이었다.
"난 고등학생 때 공부가 너무 싫어서 학교에서 잠만 잤어."
"수업이 너무 쉬워서 지루했던 건가요?"
미네는 분명 너무 우수해서 뒤쳐진 적 없이 앞서가기만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카나메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전혀 이해가 안 됐어. 어디를 모르는 거냐, 라고 선생들은 자주 물어보잖아. 그건 정말 적절하지 않은 질문이야. 그런 걸 알았다면 스스로 어떻게든 하겠지. 뭘 모르는지조차 모르니까 어쩔 수 없었던 건데."

- 걸어온 길 - P299

긴 방학 기간에 본가로 돌아올 때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대학에 즐겁게 다니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 열등감을 느꼈다. 그딴 건 상관없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감이 있는 인간뿐이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무리다, 열등감을 가득 안고 자란 자신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졌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노력하지 않았던 3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사용하는 교과서를 쓴 교수의 강의를 받는 놈이 있었어. 엄청 부지런히 수업을 들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억울했어. 존경하는 교수였거든. 그 사람의 강의를 직접 듣고 있구나, 이 녀석들은."

- 걸어온 길 - P303

‘교활하다‘는 말은 카나메에게 뽑을수 없는 가시가 됐다. 하지만 미네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교활하지 않아요. 학교는 어디든 상관없지만, 본인이 그것을 열등하게 느끼고 어떻게든 바꾸고 싶다고 생각해 실제로 해냈다면 훌륭한 일이에요. 뇌물을 써서 입학한 것도 아니고 시험을 보고 합격한 거잖아요? 마지막까지 노력해서 졸업까지 했잖아요? 어설픈 노력이 아니었을 거예요."
친구들이 깔보는 대학교로 진학했던 카나메가 그들의 질투를 받을 정도의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는 쉽게 상상이 갔다. 분명 매일매일 모든 노력을 기울여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했을 것이다. 잃어버린 3년이라는 시간, 자신의 나태함으로 잃어버린 3년을 되찾기 위해서 무한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후회했던만큼 몇 배의 양을 감당해야 했을 게 분명하다. 그것들을 극복하고 손에 쥔 결과라면 누구에게도 부끄러워할 필요가없다.
미네는 그렇게 노력한 카나메가 정말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 말에 아첨과 아부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마워."

- 걸어온 길
- P307

"괜찮아요. 중요한 것은 뭘 얻었냐니까요. 어디서 배웠냐, 어떻게 배웠냐가 아니고요. 하지만 그게 사실 매우 엄격한 일이긴 하지만요."
노력의 과정을 평가받는 것은 학생 때까지다. 사회에 진출하면 요구되는 것은 결과. 그 결과를 내야만 노력의 과정도 바라봐 준다. 그것이 어른들의 세계이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노력은 잘못된 노력이고, 그것 자체를 평가받지 못한다. 매우 드물게 방향이 잘못된 노력이 대발명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긴 하지만, 그것조차 ‘성과‘ 가 있을 때만 회자된다.
그래서 카나메 자신이 만족하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 과정은 올바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미네는 말했다.

- 걸어온 길 - P308

"저는 지금의 카나메 씨만 아니까 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과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옛날로 돌아가 그걸 고치고 지금과 다른 카나메 씨가 된다면 좀 싫을 것 같아요"


자신이라는 존재를 전부 긍정해 주는 미네의 말에 마음이 풀어진 카나메는 접시 위의 오리고기를 쳐다볼 여유를 되찾았다.


"지금이 아닌 내가 되면 싫다라………. 엄청난 협박인걸."
카나메가 웃음을 머금은 눈빛으로 바라보자 미네의 얼굴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 걸어온 길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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