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를 저으며 나의 슬픔이 점점 냄비 속 카레로 녹아드는 모습을 상상했다. - P131

왠지 모르게 지쳐 있었다. 쌓일 대로 쌓인 혼잣말에도, 여름과는 다른 파란 하늘과 아이들의 가느다란 다리를 바라보는 것에도, 단조로운 산책길을 걷는 것에도, 그 뒤에 기다리고 있을 할머니와의 생활에도.
메마른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이 얼굴을 덮었다. 봄에 자른 머리카락이 꽤 많이 길었다. 계절이니 몸이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들만 변해 갔다. - P133

제대로 된 생활 같은 건 내게는 언제까지나 불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에 넣었다가 내던지고, 내던져지고, 정작 내던지고 싶은 것은 언제까지고 떨쳐 내지 못해서 내 인생은 온통 그런 것들로만 이뤄져 있다. - P136

다른 사람과의 인연은 미덥지가 못하다. 나는 누군가와 단단히 연을 맺는 게 불가능한 모양이다. 혼자 살아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겨지는 게 아니라,
한 번쯤은 내가 먼저 떠나 보고 싶었다.
이 집에서 나갈까?
단호하게 인연을 끊고,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그래도 거기에서 또다시 새로운 관계가시작되겠지. 그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또 파국을 맞이하고 있겠지. 그런 의미 따윈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염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인생도 끝나게 될까. 눈앞에 있는 이 할머니는 과연 그런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을까.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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