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는 내내 겨울을 살다 갑자기 봄의 한가운데로 내쳐진 것 같은 당혹감을 느꼈다. 이렇게 화사해도 좋은가 싶게 꽃들이 낭자했다. 검고 무거운 옷을 입고 꽃그늘 아래 앉은 자신들이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소포 같았다. 그래도 봄이 좋긴 좋구나. 이 와중에도 꽃을 보니 웃음이 나오잖아. 첫째가 말했다.

- 오늘의 할 일 - P9

첫째와 셋째는 학창시절 내내 춘자나 추녀 같은 별명을 피할 수 없었다. 두 딸이 짓궂은 놀림을 당하고 동시에 울며 돌아온 날 어머니는 세 딸을 나란히 앉혀놓고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려주었다. 어머니의 구술에는 본인의 체념과 딸들을 향한 미안함이 덜녹은 설탕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 오늘의 할 일 - P11

인연따라 모인것은 인연따라 흩어지니
태어남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인걸

사십구재가 시작되기 전 스님은 자매에게 한글로 풀어쓴 발원문 책자를 나눠주었다. 소리가 클수록 영가도 부처님도 잘 들을 수 있으니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으로 크게크게 따라하십시다. 그러나 막상 독경이 시작되자 셋째는또 울음이 터져버려 단 한글자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 오늘의 할 일 - P13

찜질기와 부항을 비롯한 다양한 물리치료기가 셋째의 몸을 어루만졌다. 오직 감정 없는 그것들만이 온 힘을 다해 그녀를 위로했다.

- 오늘의 할 일 - P18

겨울이 자매의 집에 머물다 간 시간은 정확히 얼마였을까? 겨울이 사라진 뒤로 자매는 한번도 그 존재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살면서 한번쯤은 문득 조그만 머리통이랄지 말랑한 볼 같은 것을 떠올린 적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화들짝 놀라며 잡초 뽑듯이 기억을 털어내버렸다. 자매는 각자 어른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겨울에 관한 기억은 고향집 다락방에 처박아두고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는 떠올릴 일이 없는 기억이라고. 아니, 거짓말이다. 자매는 각자 엉뚱한 시간과 장소에서 엉뚱한 사람을 통해 겨울을 만난 적이 적어도 한번은 있다.

- 오늘의 할 일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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