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여행이 간절했던 시기에는 한 번의 여행을 위해 오직 떠날 날만을 기다리면서 모든 일상을 여행에 맞춰 사는 그런 때도 있었다. 숨쉬는 매 순간마다 떠날 날을 기다렸다면 믿을까. 하지만 이제는 여행에서 별다른 느낌 혹은 감흥을 얻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맥빠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스스로도 참 많이 놀란다. 그만큼 바싹 마른 상태, 결핍이 있는 상태에서 떠난 여행이 아니어서였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느만큼을 채워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형편없어진 여행을 대하는 태도 앞에서 새삼 놀란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2
뭔가를 빨아들이려면, 작은 것을 커다랗게 느끼려면, 미지근하기만 한 대기를 청량한 것으로 바꿔서 받아들이겠다면 어느 정도 메마른 상태여야만 가능하다. 물론 이 사실은 여행에만 적용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엄살을 부리며 사는 건 그래서다. 우리가 자주 메말라 있는 것은 곧 좋아질 거라는 잠재적 ‘신호‘가 왔음을 알려주는 것.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3
하지만, 떨어지는 것은 절대로 중요한 일이다. 당선되지 않았다는것은 당선의 의미만큼이나 중요하며 역시나 안 되었다는 것은 되기 위한 과정으로도 중대하다. 내가 그리는 그림이 남에게 이해될 수없다는 것도, 내가 간절히 바라는 마음만으로 도달할 수 없다는 것도,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커다란 상실감과 오기 또한 필요하다는 것까지도 알게 해주니까. 낙선된 다음에 쓰는 글은 태도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안 될 수도 있는 일에 말도 안 되는 확률이 도사리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어느 한 단면은 바뀐다. 그 상황은 자신의 현재를 확대해서 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내부의 힘까지도 뭉근하게 키운다. 어딘가에 떨어져보지 않는 우리는, 어디에선가 망해보지 않은 우리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4
또 필요한 것은 씻어내는 일이다. 잘 씻어내는 일. 우리는 어떻게든 상처받는다. 우리는 어떻게든 타인에 의해 내 단점이 발견되고 만다(발견되기도 하는 것이지만 남에 의해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남들은 그것을 잘도 캐낸다. 남에게 단점을 가격당하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추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시간 속에서 그 기분들은 희석된다. 상처든, 남이 들춰낸 단점이든 잘 씻어내야 한다. 씻어내는 것은 닦아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덜어내는 것이기도 하고, 그 세포의 뿌리를 잘라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씻어내야 새살이 돋는다. 그곳에 새 기운이 돋는다. 잘 씻어내지않은 부위는 새로운 살이 붙기에 깨끗하지 못하다. 이전의 것들과 적당히 섞여 좋은 것이 생겨나더라도 온전히 좋은 것일 수가 없다. 군내를 잘 씻어버리지 못하면 군내는 계속해서 따라오지 않겠는가. 트라우마가 나를 지나가면서 남긴 지문을 슬쩍이라도 몸에 남겨서는 안 된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4
내가 좋아하는 ‘반동‘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물리학에서 ‘반작용‘이라고도 쓰는 이 말은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물체 A가 물체 B에 힘을 작용시킬 때, B가 똑같은 크기의 힘을 A에 미치게 하는 작용. 힘의 시작은 내가 무엇을 시작했을 지점부터를 말한다. 그 어떤 시작 없이는 그 어떤 반동도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반동의 연속이고 그 연속을 통해 일어나는 결과가 결국 미래를 받치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나의 내부로부터, 누군가의 신호와 영향으로부터 반동을 멈추지 않을 준비를 하는 추자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마음이 시키는 것이 있을 때에도, 몸이 시키는 일이 있음에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마음의 사용법과 몸의 사용법 앞에서 숱하게 주저해왔다. 혼자 헤쳐온 일이 거의 없는 생을 산다면 우리는 자주 난감해할뿐더러 인생의 그 어떤 무늬도 만들지 못한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살면서 큰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거기서 더욱 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로도 탈진 상태가 된다. 만일 그들 자신에게 의지력이 없거나 자신들의 책임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그들을 쓰러뜨리게 된다‘라고.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5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어서기도 하는 반복만이 당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다. 물론 자기 안에다주인을 ‘집사‘로 거느리고 사는 사람이다. 오늘밤도 시간이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말을 건다. 오늘밤도 성장을 하겠냐고. 아니면 그저 그냥 지나가겠냐고.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보통의 사람은 남이 만든 파도에 몸을 싣지만, 특별한 사람은 내가 만든 파도에 다른 많은 사람들을 태운다.
-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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