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학위까지 받아놓고 배달 일을 하는 나 자신이 시간 강의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 인문학 전공자의 삶이, 이런 구조를 만든 대학과 사회가 환멸스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우울감이나 분노, 자기연민이 들려 할 때마다 ‘이 일은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고친다. 배달 라이더는 내가 ‘나‘를 지키기위해, ‘나‘를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일이다. 글쓰기와 대학 강의가 본업이지만, 본업 못지않게 중요한 게 취미와 여가생활이다. 나는 낚시와 여행을 즐긴다. 글쓰기가 답답할 때 탁 트인 자연으로 가 맑은 숨을 영혼에 담아 오면 막혔던 글이 트인다. 강의하고, 학생들 과제 피드백해 주고, 시험 문제 출제하고, 성적 입력하고, 다음 학기 강의 준비를 반복하는 강사 생활은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데, 가끔씩이라도 거기서 벗어나야 내가 산다. 낚시나 여행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학생들에게 더 좋은 수업을 제공할 수 있다. 사람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다. 특히 나 같은 쾌락주의자, 호모 루덴스는 더욱 그렇다.
- 배달하는 마음 - P51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의 총합이 ‘나‘라면, 나는 내 취향과 개성을,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배달은 구속이나 제약이 덜한 일이라서 글쓰기, 그리고 강의와 병행할 수 있다. 나는 돈 벌면서 취미도 즐기고, 문학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내가 배달 라이더를 하는 이유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다른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고 많은 일들 중에 왜 하필 배달이냐고 묻는 사람도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답한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라고. 배달 라이더는 내가 잃어버린 삶의 단순함을 회복시켜 줬다. 이 일에 좀 더 근사한 의미를 부여하자면 나는 ‘단순함의 미학‘이라 말하고 싶다.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동안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안 든다. 식당에 가 음식을 받아서 배달 장소로 갖다주는 단순노동의 반복이다. 시와 문학평론을 쓰고, 여러 매체에 산문을 연재하는 문장 노동자의 생활, 학사 일정과 강의 계획에 파묻혀 지내는 강의 노동자의 생활, 이 두 협소한 활자의 세계, 지식의 세계는 숨 막힐 듯 답답하고 복잡하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반면 배달 라이더의 세계는 단순하고 간단하고 명료하다.
- 배달하는 마음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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