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나도 안다. 어떤 일을 앞두고 지나치게 긴장하고, 분발하지 않는 자신을 못 견디다가는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는것을 너무 잘하고 싶은 나머지 가장 본질적인 것을 놓치는 것은 그물로 강물에 뜬 달을 건져내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임을적당한 향상심은 개인이나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데도움이 되지만, 만성적인 분발심은 종종 엉뚱한 목적지로 우리를 데려간다.

- 더 노력하라는 말에 담긴 함정
- P93

앞에서 말한 책 『슬로 라이프』에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후쿠다 미노루라는 시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시인은 평소에 사람들에게서 ‘힘내세요‘, ‘해낼 수 있어요‘ 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모양이다. 그는 장애가 있다고 해서 왜 꼭 힘을 내고 분발해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말한다.
"나는 게으름뱅이로 머물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살고 싶으니 그냥 나를 내버려 두세요. 단, 게으름을 피운다고해도 그것은 스스로에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대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 시인처럼 나도 분발이라는 말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 더 노력하라는 말에 담긴 함정 - P96

(마루야마 겐지의 아내의 말) "자신의 힘으로 먹고 살지 않는 남자와는 말도 하기 싫다"
그가 수도승처럼 절제된 생활을 하며 치러야 했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끝까지 간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몸과마음을 온전히 삶이라는 제단에 바쳐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시 지레 겁이 난 건지도 모르겠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를 읽을 즈음 내 머리맡에는 폴 오스터의 『굶기의 예술』도 놓여 있었다. 두 책의 제목을섞으면 ‘굶기의 각오‘였고, 그게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이들이 지녀야 할 가장 원초적인 태도인지도 몰랐다.

- 끝까지 가본다는 것, 그 짜릿한 자유 - P135

죽도록 쓴다는 것.
죽도록 뭔가를 끝까지 해 본다는 것.
그것은 조건 붙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단호한 삶의 자세였다. 엄숙한 자기 절제와 극한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 끝까지 가본다는 것, 그 짜릿한 자유 - P137

추상적인 은유가 아니라 그 여행은 내장기에 실질적인 무늬, 혹은 주름을 남겼다. 때로 어떤 장소는 인간 몸의 일부로 스며들어 언제까지나 함께하고 싶어 한다.

- 끝까지 가본다는 것, 그 짜릿한 자유 - P139

그래도 인간에게 끝까지 가 볼 권리가 있다는 것, 그걸 시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사실이 나는 미치도록 좋다. 굳이 어디에 도착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가 보는 거다. 그저 해 보는거다. 세상에 무익한 일이란 없다. 올바른 관점만 지닌다면 모든일이 행복을 발견하는 오솔길로 이어진다. 아, 굳이 행복해지거나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없다. 끝까지 가 본 경험은 그 자체로 눈부신 생의 선물이 되어 생존이 아니라 진정한여행의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 끝까지 가본다는 것, 그 짜릿한 자유 - P140

~고 해서 그 시간에 내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한 건 아니었다. 빈자리에 행복이 채워지지도 않았다. 사람은 몸을 움직여 얻는 작은성취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본능이 있다. 몸을 덜 움직이는대신 소비의 편리함을 잠깐 누렸을 뿐이다.
최근 200여 년 동안 인류는 몸을 움직여 시간을 들여야 하는것들을 비효율적이라고 단정하고 이를 몰아내기 위해서 대대적인 산업 전쟁을 치러 왔다. 냉장고, 세탁기, 식기세척기, 청소기,
전자레인지, 전기오븐・・・・・・. 이런 전자기기들이 생활을 한결 편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것들이 때로는 속박되지 않는 자유와 자립의 기쁨을 안겨 주는 인간적인 방식이라는 걸 잊어 간다는 게 문제이다.

-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행복의 기술 - P147

어쩌면 『월든』은 콩코드 숲 300에이커를 희생물로 바치고 탄생한 걸작인지도 모른다. 불은 깨끗이 태워 없애기도 하지만 불탄 자리에서 새 생명을 길러내기도 한다.
누구나 실수 없는 인생을 바란다. 실수가 이어져 실패가 되고마침내 어쩔 도리 없는 낙오자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소로의 산불 이야기를 한 것은 위대한 인물도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걸 딛고 일어서서 빛나는 성취를 얻었다고 말하기 위해서가아니다.
오히려 반대이다. 실수는 피할 수 없다. 그것은 죽을 때까지함께 하는 운명의 동료이다. 실수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해서 먼 장래에 반드시 좋은 결과로 보상이 오는 것도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조건, 그중 하나가 실수이다.

- 실수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 - P182

"그 일이 네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고 왔는지 생각해봐.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 실수를 통해 배우면 돼. 그래서 같은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되지. 처음에는 실수라고 하지만 두번 세번 반복되면 그게 곧 너 자신이 된다."
고백하건대 실수보다 저 달이 더 무서웠다. ‘실수에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 흔히 하는 말이다. 가뜩이나 실수의 무게 때문에휘청거리는 상황에서 학습의 의무를 하나 더 얹어 주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실수라는 명사에는 ‘배우다‘라는 부담스러운 동사보다 ‘만나다‘라는 동사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과 만난다. 대부분의 실수는 몰라서저지른다. 부주의 때문에 생긴다. 자신을 모르고, 자신과 타인의욕망을 모르고, 자신이 언제든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간과한 결과 일어난다.
그리하여 우리는 실수를 통해 가장 먼저 자신과 만난다. 그리고 세상의 부조리한 욕망을 마주친다. 뼈아픈 마주침이다. 게다가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예측할 수도 없다. 심지어 자신과 타인을 잘 알아도 실수는 일어난다. 잘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비극이 여기에 있다. 물론 실수의 패턴을 알아차리면 더 빨리, 그리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수 없는 인생이란 로망일 뿐이다.

- 실수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 - P153

우리가 패배했다고, 잃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뒤집으면 권리도 된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 그러므로 실수할 권리도 있다. 실패할 권리도 있다. 거기에서 딱히뭔가를 배우지 않아도 괜찮다. 반드시 유익한 교훈을 찾아내야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인생살이가 더 무거워지기만 할뿐이다.
다만 소로처럼 멀리 도망가지 않고 자신을 직면할 용기는 있어야 한다. 직면하기 차마 괴롭고 힘들다면 버티면 된다. 때로는버티는 것도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 못지않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인간이기에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실수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배운다는 생각 없이 배우고, 만난다는 생각 없이도 보이는 것들 너머의 신비와 만나게 된다.

- 실수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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