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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주기철 목사 생애 - 진달래 필 때 가버린 사람
김충남 지음 / 은혜출판사 / 2016년 4월
평점 :
교계에 잘 알려진 인물중에 주기철 손양원목사님이 있다. 두분다 순교자이고 그 삶이 참 감동적인데 정작 나는 두 분을 잘 몰랐다. 특히 주기철목사님을 정말 몰랐다. 아주 어릴적 칼라텔레비젼이 나왔을때 보았던 영화의 한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일제의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절개를 지키며 순교하는 모습은 신앙도 없던 내게 큰 충격이었다. 특히나 모진 고난을 받는 장면과 찬송가를 부르며 고문을 이겨내는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책으로 보는 주기철 목사님의 생애는 내가 정말 그분을 몰랐구나 하는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전 주로 평양쪽에서 사역을 하였기에 당연히 북쪽 사람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는 남쪽 창원출신이다. 안갑수사모와 사별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둘 사이에 사남매를 두었다. 원래 이름이 기복이란 것도 그렇고 하긴 그외에도 여러가지가 있으나 정말 몰랐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40대의 아버지가 상처를 하고 재가해서 낳은 막내아들 주기복. 원래이름이 기복이란다. 어머니가 없는 다른 형제자매보다 자기만 있는 어머니로 인해 잘 자란 기복. 일제에 나라를 빼았기고 큰형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회에 다니면서 아버지도 오랜동안 장로로 교회를 섬겼다. 개통학교에서 공부를 아주잘했고 당시 이광수선생이 학교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평양에 있는 오산중학교에 입학했다. 이학교는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세운 학교로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다. 여기서도 공부를 아주 잘해서 연희전문 상과에 입학하나 안질이 있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에 와서 치료중에 당시 부흥사였던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주의종 사명을 영접하고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된다. 나라가 어찌 될지 알 수없던 시대에 나라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을 참 많이 했을 그즈음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주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된다. 부산 초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으로 마산 문창교회를 잘 다진다음 뜻한바 있어 평양 산정현교회에 부임 이곳에서 일제의 신사참배 거부로 인해 모진 고문을 받다가 감옥에서 순교하고 만다. 슬하에 4형제를 두었고 안갑수 사모는 어린 막내를 두고 먼저 소천한다. 오정모사모와 재가한뒤 일제의 신사참배가 악날하게 진행되던 그때 신사참배 거부로 순교하고 만다. 죽으면 죽으리라의 안이숙 사모도 감옥에서 재회하게 되고 조만식 선생 손양원 목사 그외에도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나온다.
많은 목사들이 신사참배에 동참했다. 교회지도자들이 신사참배를 용인함으로 양떼는 흩어지고 교회는 분열되었다. 시대에 편승하고 당장의 삶에 집착한 결과 자신의 목숨은 보존했으나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종교가 타락하면 나라가 어지럽다. 물질이 교회에 들어온 시대를 살고 있다. 대형교회를 주변에서 쉽게 볼수 있다. 너무 많은 교단이 갈라져서 서로 다투는 모양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은 순교자의 피를 잊어서는 안된다. 좀 더 낮게 좀더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아야한다. 나부터라도 그 순교의 피를 잊지 말자고 다짐해보고 또 다짐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