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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마윤제 지음 / 특별한서재 / 2019년 3월
평점 :
제목이 철학적이다. 새로운 방식의 책 읽기와 글쓰기라고 해서 평소 독서에 관심이 있고 간간히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경우라 이책이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방향이 아니고 이 책이 의도하는 바는 달랐다. 책읽는 중간에 이 책의 제목을 왜 이렇게 잡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전히 달랐단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그렇다고 유익하지 못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저자는 나에게 뿐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걸 말이다.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먼저 저자는 책읽기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아주 기본으로 돌아가서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함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통찰이란 단어다. 저자는 이 단어를 아주 중요시 다룬다. 책은 저자의 생산물이다. 독자는 그 생산물을 아주 쉽게 받아누리지만 저자는 그것을 생산해내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시간을 기울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을 짚어내기도 하고 유명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는 순간의 선택을 잘못해서 잘나가던 사업장이 망하는 일도 발생한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걸까. 통찰이다.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에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많은 사람이 보는 유튜브 동영상은 관심있는 분야를 쉽게 검색하여 시청할수 있다. 하지만 보는 건 오래가지 못한다. 집중이 잘 안된다는 단점이 있다. 흥미로운 동영상 시청은 오히려 읽고 싶은 책에 시간을 들이지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 그만큼 바쁘고 어지러운 이 시대는 뉴스가 마구 생산되는 사회다. 가짜뉴스가 버젓이 진짜인것처럼 우리 앞에 와 있고 진짜인지 거짓인지 분간하기 싶지 않은 사회다. 다양한 사회에서 나오는 문제는 나도 잘모르는 분야라서 피해자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감정에 따라 가기도 한다. 시대를 깊이 읽어내지 못하면 어느 한쪽의 주장을 편향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우를 범하기 딱 좋은 그런 사회다. 내가 옳고 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틀린걸까. 아니다. 나와 다를 뿐이다. 그런데 우린 틀리다고 배운다. 그런 상대를 욕하고 받아들이질 못한다. 너무나도 확실히 두갈래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다. 정보를 누리던 세대는 이 고급 정보를 이용해 부를 취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옮아가기도 했다. 공정하지 못한 시대를 지나왔지만 지금도 공정한 경쟁을 외치지만 여전히 정보를 독점한 세대가 먼저 불법을 저지르기를 반복한다. 왜 그럴까. 기득권을 내려놓지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대중은 많은 정보를 얻고 있다. 그래서 과거처럼 독점할수도 없고 대중이 똑똑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문자는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 달에 가기전부터 날마다 보는 달에는 뭐가 살까 상상해보았고 그결과 인류는 우주선이란걸 만들어서 우주인을 달에 보냈다. 이제는 화성에 대한 상상력을 키우고 있다. 재미있게 보았던 환타지 소설 해리포터씨리즈는 어마어마한 책을 팔아치웠다. 베스트셀러라는 항목으로 독자의 눈길을 끄는 책들이 더러있다. 다 읽을 수는 없겠지만 작가는 자기가 써내려가 상상의 나래안에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책쓰기에 도전한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쓸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런 도움을 주는 책을 찾아 읽어보고 도움을 받지만 책은 그냥 나오지 않는다. 어떤 작가는 책은 엉덩이의 힘으로 나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로는 막히는 분야에 힘들어할때 다른 작가의 책을 통해 영감을 얻고 끝까지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럼 나는 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가?
책읽기는 일상의 지루함을 가셔주는 청량제다. 매일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하루를 돌아보고 일기를 쓴다. 어릴때는 일기였지만 성인이된 지금은 글쓰기다. 전에는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서 생각만하다가 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 생각은 뭔지 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서 글쓰기를 하는 중이다. 좀더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자는 입장으로 쓰는 대부분의 글쓰기는 날마다 생산되는 새로운 뉴스에 대한 내생각을 짧게라도 블로그에 글을 쓴다. 그럼 누군가는 내 글을 읽어주고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준다. 댓글이 달리기라도 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다음에는 더 잘써야지 하는 다짐을 한다. 그러나 내생각에 반대를 하면 흥분이 된다. 갑자기 글쓰는게 싫어진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글을 쓰는 자신을 보게 된다. 지금은 책을 쓰지 못하더라도 일상의 관심을 글로 나눈 글이 쌓이고 쌓이면 책이 되겠지. 짧은 인생을 마감하는 그날이 오기까지 그렇게 책은 읽어지고 글은 써지며 그렇게 쌓여가는 과정속에서 세상을 보는 지혜와 안목과 통찰을 통해 선택의 순간이 올때 옳은 것을 선택하고 후회하지 않기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쓸것이다. 독서를 멈추는 순간 , 세상도 멈춘다는 자세로 그렇게 진지하게 책읽기와 글쓰기에 임할 생각이다. 저자는 책읽기와 글쓰기와 토론을 하라고 했는데 토론이 없다. 그게 아쉽다. 토론은 생각이 다룬 것을 조정해과는 과정인데 이게 일체 없다. 명절에 정치얘기 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다가 싸우기때문이다. 토론은 싸우는게 아니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인데 일방적인 주장만이 난무한다. 우리의 국회도 그렇다. 국민이 보고 배우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떼쓰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정책세미나를 열어서 국민이 참여하고 관심있게 토론을 벌여야하는데 회의를 방해하고 난장판을 만든다. 대학도 그렇고 노사갈등도 그렇다. 우리에게 대화가 아니 토론이 없다는게 너무 아프다. 오직 주입식으로 많이 아는 자가 일등이 되는 이런 세상구조에서 진짜 토론은 방송사에서 하는 토론뿐이니 그거라도 없으면 모든 곳이 싸움터다.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욕이라도 안했으면 좋겠다. 욕하면서 하는게 토론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