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치광이 이웃 위픽
이소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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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쓸모가 있을까? 물가와 금리가 인상되어 소비가 위축될 거라는 보도 이후에는 늘 도서 매출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아마 영화관도 미술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지출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되면 가장 먼저 문화적인 지출을 줄인다. 어쩌면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위기가 닥칠수록 사람들은 생존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것들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때 문화나 예술은 사치스러운 것이 된다. 그래서 『나의 미치광이 이웃』가 제시하는 2073년, 기후변화와 식량 위기로 먹고사는 문제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에 ‘문화 폭동’으로 예술 작품이 모두 사라진 세상은 두려우면서도 낯설지 않다. 


​"문화 폭동은 내가 학교를 막 졸업한 해의 다음 해, 그러니까 2073년에 일어낫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명한 환경학자 보리스 잘란스키 박사의 논문이 그 시발점이었다. 세계 3대 곡창지대를 잃은 지금 인구의 43퍼센트가 하루 평균 두 끼의 식사로 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는데,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서 쓰고 있는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다는 내용이었다. 논문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사람들은 깡통과 유리병, 쇠 파이프와 돌멩이를 던졌다. 그렇게 그림은 한순간에 모두 소실되었고 백제 시대의 향로도 반가사유상도 그때 그렇게 두 동강이 났다. 장소만 차지하고 배고픔에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예술은 가장 먼저 제거되었다." (61)


극심한 기후변화와 오존층 위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들이 하늘을 메우면서 우주 쓰레기로 가득 찬 대기는 태양을 가렸고, 그로 인해 농작물은 잘 자라지 않았다. 해수면이 높아져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나라를 잃었다. 이제 땅에서 나는 곡식과 채소는 값비싼 음식이었고, 그나마 값싼 생선들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렇게 먹고살기도 빠듯한 세상에서 유리는 유화를 사랑했다. 이우환을, 윤형근을 사랑했다. 가족의 희생을 등에 업고 미술을 전공했지만, 미술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기에 이번에도 모른 척 가족들에 기대어 베를린 예술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아를 만난다.


"그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치졸하게도 미아의 인생을 빼앗고 싶다는 것이었다. 젠장. 저게 내 경험이었으면 나는 천재로 벌써 세상에 이름을 널리널리 알렸을 텐데. 미아보다 더 친절하게 관람객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미아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미아의 불행조차 빼앗고 싶었다. 저 모든 행동이 미아의 삶과 불행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그것을 빼앗아서라도 뛰어난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 정도로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미아가 될 수 없었다." _p.46


미아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에서 태어난 미아는 2056년 해수면 상승으로 난민이 되었고, 부모님과 함께 독일에 난민 신청을 넣으려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독일군은 난민을 받지 않기 위해 이들을 구하지 않고 주위를 돌며 파도를 일으켜 뗏목을 부서지게 했고, 미아는 이날 가족 모두를 잃었다. 그러나 미술에는 특출난 재능을 지녔기에 학우들 사이에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자 언제나 논쟁의 대상이었다. 미아는 무국적자 난민으로 천재적인 예술적 재능을 지녔지만 돈이 없어서 가족이 없어서 나라가 없어서, 현실과 끊임없이 부딪히고 다쳤다. 그러나 특출나지도 인정받지도 못했던 유리는 미아의 재능과 삶을 동경한다.


한국에 돌아온 유리는 범세계적으로 문화 폭동이 일어나기 전 명화의 원화를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미디어 아트 작가가 되었다. 과거 소실된 작품은 남아있지 않지만 미디어로 복구하여 관람객에게 체험할 수 있도록 고흐나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재구성하여 전시했고, 유리는 그렇게 이름 없이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미아, 얼마 전까지 나는 고흐였어. <별이 빛나는 밤>을 작업했지. 다음에는 프리다 칼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러다 미술 작가가 아니라 개발자가 되는 건 아닌가 몰라. 미아, 너에게만 진심을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아직도 네모가 그리고 싶어. 여전히 멋진 네모 말이야. 그래서 더 네 생각이 났을 수 있겠어. 이곳은 내가 가장 치열하게 네모를 그리던 곳이고, 너는 유일하게 나에게 멋진 네모를 그린다고 말해준 친구였으니까." _p.108


이 소설을 읽으면서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늦은 밤까지 고민하며 글을 썼고, 교수와 친구들의 비평에 일희일비하며 자신의 재능과 미래를 수없이 번복하며 괴로워했던 그 시간들. 이따금 듣게 되는 동기들 소식에 아, 이 친구는 아직도 글을 쓰고 있구나. 순수 문학을 쓰건, 글을 쓰는 직업을 졌건 존경할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유리처럼, 그러니까 나처럼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어도 괜찮다. 밥벌이도 중요하니까. 그렇게 치열하게 예술을 사랑했던 시간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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