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비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4
박문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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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9년 3월 4일, 인류의 절반은 다른 행성을 찾아 도망쳤다. 오염된 지구를 구할 방법은 없었다. 저무는 지구는 뇌우, 해일, 홍수, 폭우, 폭서, 혹한, 화재, 지진으로 지옥처럼 변해갔다. 버려진 이들은 그저 잠잠히 살다가 최대한 평화롭게 죽어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고 오염된 땅에서 자연 임신은 더 이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제초제와 수은 그리고 방사능에 절여진 땅은 사람보다 일찍 생식 기능을 잃어갔고, 기술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떠나 인공 시험관을 통한 출산도 불가능해졌다. 카오스 이후 황폐해진 지구는 더디지만 회복되어갔고 인간의 빈자리는 기증받은 난자와 정자를 통해 만들어진 클론으로 채웠다. 클론은 신생아 단계에서 희망 가구에 한 명씩 보내졌다.


"긴 암흑기를 견뎌낸 사람들은 병든 지구와 함께 늙어가며 몸을 천천히 회복해나갔다. 얼마 후 증세가 완화되자 클론을 만들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거기 안주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려는 기질. 어떤 상황에 처박혀도 잃지 않는 낙관과 용기. 욕심과 욕망을 분별하지 않는 태도. 그건 확실히 인간 습성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_p.35


​버려진 지구를 재건한 사람들, 그리고 재건된 지구에서 태어난 인간과 클론이 공존하는 세계. 이 소설은 이러한 세계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선 리얼리티 쇼 <허니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허니비는 대한민국 민영 방송사 KO-OK의 서바이벌 관찰 예능으로 최종 커플이 된 두 사람은 반드시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고, 양육 과정을 투명하게 시청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성애 유성 생식을 기반으로 한 자연 임신.  자연이 자신의 세대를 이어가는 방식은 다채로운데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자연 임신이라는 화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나 최종 커플이 자신들을  빼닮은 아이를 출산하자 시청자들은 모두 탄생의 신비에 감탄하고 경이로워했다.


​"시청자들은 양육자들의 모습을 빼닮은 아이의 모습을 두고두고 놀라워했다. 경이롭다, 신비롭다, 아름답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허니비>에 멍하게 빠져든 엄마 표정을 본 클론, 아빠의 테트라 시청 기록을 확인한 클론, 방송이 끝나고 씁쓸하게 혀를 차는 부모를 본 클론 몇몇이 자해를 시도했다. 시청률이 급등하자 우울감, 무기력증,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클론들이 늘어났다." _p.75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붙여주었다. 게토 중에서도 가장 폐쇄적인 구역인 제로에 살고 있는 자매 '조화'와 '조율'이라는 이름으로. 표준국어 대사전에 따르면, 조화란,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대자연의 이치 또는 서로 잘 어울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조율이란 문제를 어떤 대상에 알맞거나 마땅하도록 조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름처럼 조화와 조율 자매는 리얼리티 쇼 <허니비>를 보며 상반된 반응을 보인다. 조화는 최종 커플이 임신하여 낳은 아이에 매혹되어 자신 또한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 하고, 조율은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방향을 바꾸어 <허니비>에 출연할 결심을 한다. 이들의 선택은 자신들에게 이름이 붙여진 순간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인륜이 뭐죠? 인간다운 것, 인간 같지도 않은 것, 인간보다 못한 것. 왜 전부 인간이 척도가 되어야 하나요. 산불이 났을 때 예전 사람들은 숲의 동식물들이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 얘기하지 않았어요. 인명과 재산 피해만 보도했죠. 혹시 이런 것이 인륜인가요?" _p.105


박문영 작가가 상상한 『허니 비』는 내가 상상하는 지구의 미래와 매우 흡사하다. 지구는 서서히 망가져가고, 이 땅에 생존한 사람들은 지금처럼 자연적인 출산이 어려워진 미래. 그러나 사람은 혼자일 수 없기에 온기를 대신할 대체재를 찾을 것이고 인공지능을 통해 사람 같은 존재감을 느끼길 원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인류는 조화로울 수 있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지금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함께 공존해서 살고 있지만 인종과 재산에 따라 서로 계급을 나누고 차이에 따라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버리는 사람들, 자신의 편리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사람들과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대립, 비난하면서도 호기심을 느끼고 누군가의 사생활을 담보로 흥미를 끄는 언론과 대중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예견된 미래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지구에 버려진 이들이 생존하고 재건하며 다시 재생의 터전으로 만들었다면, 이제 이 땅에 태어난 사람과 클론 모두 서로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화롭게 조율하면서. 인간은 그럼에도 또 방법을 찾아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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