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7호 : 중독 인문 잡지 한편 7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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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잡지 《한편》 이번 호의 주제가 '중독'이라고 했을 때, 그것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궁금했다. '중독'이라는 말 자체가, 모든 사람들이 포함된 정상 범주를 벗어나 지나치게 몰두하는 어떤 것을 지칭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포함하여 하루 평균 10시간 정도 미디어를 소비한다면 중독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10시간 정도 소비하기 때문에 나는 중독이 아닌 걸까? 그렇다면 하루 평균 5시간 정도만 미디어를 소비하고 나머지 5시간은 무엇을 해야 건강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런 꼬리를 잇는 질문들. 이 책의 서문에서는 '중독'을 주제로 탐구하여 보니 실제로는 '중독의 의미'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어떤 상태를 '중독'이라 부르며 행위자를 비난의 용도로 사용해 왔던 걸까.


시대가 변하면서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들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덕후'라고 생각한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御宅)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과거에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취미 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음악평론가 김민주는 「미디어중독자의 행복한 삶」에서 힙합 그룹 에픽하이 팬으로서 평론가가 되었다는 성덕(성공한 덕후) 이야기를 펼친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에픽하이 「춥다」(2012)의 가사 한 줄 "배를 띄워 다가오면 알겠지/ 내가 섬이 아닌 빙산인걸." 이 가사에 꽂혀 덕후의 길에 들어선 저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삶의 순간들마다 노랫말에 위로받고 미래의 희망을 얻으며 용기를 얻기도 한다. 삶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이들과 연결할 수 있을 만큼 중독되어 있는 소위 '덕후'의 삶은 미디어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연예인에 빠져 시간 낭비하는 '빠순이' 정도로 여겼을지 모르지만, 저자는 이러한 미디어 중독 때문에 상상 이상의 행복을 얻었다고 말한다.


​"미디어에 중독되면 미래가 어두워질 거라던 엄포에 비하면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 사회 일반은 물론 중독자 자신도 미디어중독은 행복과 먼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방식의 행복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해 온 것 같다. 어떻게든 살아간다면 행복은 있다." _p.52


뇌과학에서 역사학, 인류학으로 옮겨 가는 김관욱의 「“담배, 참 맛있죠”」에는 우울증 병력과 뇌졸증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여성 환자 A가 등장한다. 그는 뇌졸중으로 절대적 금연이 필요함에도 흡연 구역에서 보호자 남편과 함께 흡연을 계속했다. 여러 악재로 우울증을 앓게 되면서 많은 양의 정신과 약물에 의존해 왔는데, 남편의 권유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자 기존의 우울증 증세가 호전되고 복용하는 약물도 대폭 줄이게 되었다. 이 경우 A의 행위는 자신에게 유해하고 강박적인 '중독' 증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2세기 철학자 주희는 견해가 다른 자를 가리켜 ‘약간 중독되었다’라고 표현했다. 자신과 다른 학설에 빠졌다는 이유로 독에 빠졌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억누르면서 권위 세우는 일은 17~18세기 조선에서 반복된다. 지금은 다를까? 인문 잡지 《한편》에서는 흔히 우리가 '중독'이라고 여기지만, 깊이 생각해 보지 못한 지점은 가볍게 뒤집는다.


철학자 한병철은 최근 젊은 여성들의 셀카 문화를 "공허한 자아를 잠시 동안 은폐" 하려는 시도로 셀카를 찍으며, 따라서 셀카 중독은 나르시시즘적 자아의 공회전과 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는 「인생 샷을 찾는 사람들」에서 거울을 앞에 두고 혼자 자아도취된 젊은 여자라는 이미지를 격파한다. 최근 유행하는 인생 샷 찍기는 동료와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또래 문화이며,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행위자를 비난하며 평가하고 여성을 규율하는 권력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 되묻는 것이다.


미디어 중독이지만 그것으로 음악 평론가가 되기도 하고, 흡연은 건강에 해롭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삶이 초래한 금단 증세를 잊게 해주기도 한다. 모두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홀로 무언가에 몰두해있다면 그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겠지만, '중독'이라는 잣대가 모두 부정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었다.


"만일 지금 홀로 어떠한 물질과 비물질에 강박적으로 뻐져 있다면, 그것이 스스로를 소중하게 대하는 의례적 행위인지 혹은 심신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중독인지를 살펴봤으면 한다." _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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