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전달자 (그래픽 노블) 비룡소 그래픽노블
로이스 로리 지음, P. 크레이그 러셀 그림, 장은수 옮김 / 비룡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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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전달자』의 조너스가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불합리함을 모두 해결한 완전한 세계일지 모른다.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50명, 50명의 아이들은 모두 보육원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다, 아이들을 충분히 잘 돌볼 수 있는 가정에 보내진다. 아이들은 매년 같은 교육을 받으며 동일한 상태로 성장하다 열두 살이 되면, 봉사 활동을 통해 자신의 성향과 개성에 맞는 활동들을 체험하고 원로들은 아이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열다섯 살이 될 때 각자에게 꼭 맞는 직업을 부여해 준다. 사회 구성원 간의 소모적인 갈등을 없애기 위해 모두가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며, 불평등도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평화롭고 효율적인 사회. 가난을 걱정할 필요도, 노후를 걱정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을 안전하게 보장해 주는 사회인 것이다. 그곳에서 조너스는 기억전달자로 선택되어 모두에게 잊혀진 과거의 기억들을 가지게 된다.


요즘에는 모두가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행복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인생처럼, 반드시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것 같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소 이기적이더라도 괜찮다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인간관계는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최대한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들을 하라고 충고한다. 어쩌면 그렇게 나의 마음과 감정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나를 불편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로부터 차단한다면 평화롭다고 여겨질지 모른다. 조너선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런 식으로 꽤 잘 돌아가는 것 같지 않으세요? 우리 마을 말이에요. 다른 방식으로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 기억을 받아들이기 전까진. 왜 이 기억을 기억 전달자님이 가장 좋아하시는지 알겠어요. 그렇지만 그 기억 전체에서 오는 느낌에 적당한 단어는 알 수 없었어요. 방 안에 아주 강하게 퍼져 있던 느낌 말이에요."

"사랑이야."

"음, 저 역시 그렇게 살아가는 게 그다지 실용적이지는 않다는 걸 알겠어요. 노인들이 계속 같은 장소에 있다면 지금처럼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전 이 기억처럼 사는 게 더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제 말은 그렇게 느꼈다는 뜻이에요. 물론 사랑이란 살아가는 데 더 위험한 방식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우리에게 아직 사랑이 있었으면 해요." (p.121)


조너선처럼 우리에게 잊힌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왜 삶의 이유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헤매는지 깨닫게 된다. 내 어릴 적만 해도 사람들은 서로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많았다. 아랫집 새댁이 요즘 입덧이 심하다고 걱정을 하고, 옆집 아저씨가 어젯밤에 외박을 했다며 혀를 차기도 하며, 저녁 반찬으로 무엇을 먹을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스갯소리로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그 시절에 불편함에 불편함은 지금보다 많았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고생스럽고,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불편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대끼며 사랑하고 미워하고 위로받고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매일이 모여 삶을 이룬다.


조너선이 살고 있는 세계는 '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며 평화롭고 안전하다. 하지만 그들은 다름의 차이와 선택의 기쁨, 그리고 안전하지 않지만 서로 부대끼며 다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던 과거의 기억들이 더욱 사람답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알고 있고, 그리워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멈춰버린 일상은 안전하지만 함께여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경험할 수 없게 하기 때문에. 이 전처럼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함께 생동하던 때를.


수년 전 소설로 읽었고 영화로도 보았지만, 그래픽노블로 출간되면서 다시 읽은 『기억 전달자』는 여전히 나에게 진짜 가치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사실 영화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래픽노블은 완성도가 높은 편. 영화보다는 소설 혹은 그래픽노블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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