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1856년 1월, 켄터키 주의 노예였던 마거릿 가너는 임신한 몸으로 네 명의 자식을 데리고 오하이오 강을 건너 신시내티로 도망쳤다. 그리고 그녀의 삼촌이자 노예 출신인 조 카이트의 집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추격에 나선 노예 사냥꾼과 보안관들이 집을 포위해 끝내 붙잡힐 지경에 처하자, 그녀는 자식을 노예로 살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 손으로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두 살배기 딸을 칼로 베어버리고 다른 자식들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후 재판에 회부된 그녀의 사건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마거릿 가너를 '사람'으로 인정하여 딸을 죽인 살인죄로 처벌해야 할지, 도망노예법에 따라 잃어버린 재산으로 취급하여 무죄방면을 해야할 지 논쟁이 일었기 때문이다. 결국 마거릿 가너는 한 명의 자유로운 '인간'으로 재판받지 못하고 노예로 생을 마쳤다.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1983년, 토니 모리슨은 이 사건을 모티브로 『빌러비드』를 썼다. 떠올리기조차 두려운 참혹한 기억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갔던 'be loved'들을 위해서.



한 사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보다 단단하고 방어적인 마음을 해체할 수 있는 잠잠하고 커다란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상처를 직면하는 과정을 통해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고, 그 고통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통스러워 차마 기억할 수 없었고 잊을 수도 없었던 고통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만 치유될 수 있다. 외면하고 묻어둔 고통과 상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빌러비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124번지는 한이 서린 곳이었다. 갓난아이의 독기가 집안 가득했다.' 누구도 말하지 않지만 124번지에는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잠재되어있다. 세서는 그저 모른 척 유령의 장난을 감내하며 18년이란 시간을 묵묵히 견뎌왔다. 그러다 도망치기 전 노예로 생활하던 '스위트홈'에서 함께 일한 폴 디와 재회하게 되고, 젊은 여자의 육신을 입은 죽은 아기 '빌러비드'가 돌아온다.



당신과 헤어진 후에, 남자들이 찾아와서 내 젖을 빼앗았어. 그 때문에 왔던 거야. 날 눕혀놓고 젖을 빼앗았지. 가너 부인에게 그 얘기를 했어. 목에 혹이 나서 말은 못했지만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 그 남자들이 내가 자기들 얘기를 했다는 걸 알았어. 학교 선생이 남자 하나를 시켜서 내 윗옷을 벗겼어. 다시 옷을 입었을 때, 등에는 나무가 생겼지. 그 나무가 여태 거기서 자라고 있어. (p.36)



아프리카에서 사냥되거나 팔려온 미국 흑인 노예들은 남부농장에 투입되어 강제 노동을 하였고 흑인 노예들은 자유인의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야만적이고 진화되지 못한 존재로 취급되어 살해, 매질, 낙인 찍기, 신체 절단, 쇠 재갈과 쇠사슬 착용 등으로 학대당하고 희생되었다. 더욱이 흑인 여성들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이중 억압에 노출되어 성적착취를 당하거나 번식하여 주인의 재산을 증식시키고 노동을 제공하는 '가치있는 재산'으로 취급되었다. 세서에게 엄마의 기억은 일하는 뒷모습과 목이 메달려 죽은 모습 뿐이었고, 갖은 수치와 채찍질을 당하고나자 아이들만큼은 자신처럼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세서는 이십팔 일 동안 노예가 아닌 삶을 살았다. 어린 딸아이의 맑고 순수한 침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진 순간부터 끈끈한 피 속으로 흘러들어가기까지의 이십팔 일이었다. 치유와 안락함, 진정한 대화의 나날이었다. 누군가는 바느질을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모두가 새벽에 눈을 떠 그 날 뭘 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기분이 어떤지 가르쳐주었다. (p.159)



세서는 폴 디와의 만남을 통해 스위트홈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과거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빌러비드에게 자신이 아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하게 된다. 124번지에 도착한 지 이십팔 일만에 자신을 찾은 노예사냥꾼을 마주한 순간, 자신이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해.



세서가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고,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자신이 아이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고통에서 치유되는 과정은 비단 세서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닐 것이다. 『빌러비드』를 쓸 당시 '마거릿 가너'의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뿐 아니라 흑인 사회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었다. 모두에게 잊혀진 고통스럽고 참혹한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어 상기시키는 것, 그리고 흑인들에게 과거의 노예제와 고통받던 시절에 대해 말하게 되는 것은 모두에게 상처를 헤집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묻어둔 상처는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빌러비드』는 노예제가 폐지된 후에도 남아있는 백인 중심적 가치관을 버리고 흑인들이 다시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 바로 여기에 우리 몸이 있습니다. 웃고 우는 몸, 맨발로 풀밭에서 춤을 추는 몸, 이 몸을 사랑하세요. 열심히 사랑하세요. 저기 저들은 여러분의 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의 몸을 경멸합니다. 여러분의 눈을 사랑하지 않아서 당장 뽑고 싶어하지요. 여러분의 등가죽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저기 저들은 등가죽을 벗겨내지요. 오, 내 동포들이여, 저 자들은 여러분의 손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멋대로 써먹다가 밧줄로 묶고 사슬에 채우고 자르고 빈손으로 버릴 뿐입니다. 여러분의 손을 사랑하십시오! 사랑하세요. (중략) 이것이 내가 말하는 몸입니다. 사랑받아야 하는 몸, 휴식을 취하고 춤을 춰야 하는 발, 기대야 하는 등, 두 팔이 있어야 하는 어깨. 튼튼한 두 팔 말입니다. (p.149)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토니 모리슨은 "나는 혼자 몰두해서 자신의 상상력을 글로 옮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작품은 정치적이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처럼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 치유의 시작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변화의 시작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



이 작품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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