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시트
황선미 지음 / 비룡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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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부모는 장미를 할머니에게 떠맡기고 사라졌다. 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장미를 보았고, '애가 예뻐야 부모가 돌아온다'며 버려진 것이 장미의 탓인 것처럼 말했다. 장미는 쫓겨날까 잘못한 것도 없이 빌며 할머니 집에서 자랐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장미는 고모네에 다시 맡겨진다. 고모는 장미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가족들에게 밀려난 장미는 자기 안의 태생적 구멍을 감추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애써 웃고,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친구들과도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장미의 마음에는 어느새 가시가 돋아나고, 스스로를 어리석고 “자꾸 오답만 찍는 애” 같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느낀 설렘만으로 장미는 J에게 고백했고, J는 길거리의 아무라도 되는냥 장미를 성폭행했다. 장미는 성폭행을 당하고 도움을 청할 곳조차 없는 처지로 임신한 채 도망쳐야 했고, 그것 마저도 자신만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 하티. 출생신고조차 못한 유일한 장미의 것. 장미는 아이를 키우지도, 입양을 보내지도 못한 채 보호시설에서 도망쳐 진주의 집에서 얹혀지낸다. 보호시설의 원장님은 엄마에게는 아기에 대한 사랑은 본능적으로 생겨나는 거라고 했지만, 장미는 모성애가 무엇인지, 하티를 향한 마음이 무엇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일 벌리길 좋아하는 사진관 사장은 영화 동호회는 물론 입양 가는 아기들 사진 찍어 주는 일부터, 버려진 아기들의 성장 앨범을 찍어 주는 일까지 하는데, 그 모든 일들을 보조하며 사진관을 찾아오게 된 말투도 외모도 어딘지 낯선 입양인들과 자꾸만 얽히게 된다. 모든 이들이 장미는 하티를 키울 수 없다고, 입양을 보내야한다고 했기에 장미는 관심이 그 사람들에게 관심이 간다. 그러다 장미가 일하는 사진관 건물의 청소부가 우연찮게 장미에게 도움을 주고, 장미는 그 도움조차도 의지할 수 밖에 없이 절박해진다.

태어나면서부터 철저히 혼자였고, 자기가 나빠서 이렇게 된 거라고 자신을 탓하는 데에만 익숙한 장미이지만, 이번만은 절실하게 붙들고 싶다. 청소부의 외면하지 못하는 어떤 마음 때문에, 머나먼 나라에서 자신을 버린 곳을 다시 찾아온 낯선 사람들 때문에 장미는 처음으로 사람들 속에 섞인다. 자기 자신조차 지키지 못하는 장미는 단지 행실이 불량한 청소년일까?

<엑시트>는 태어나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본 적 없는 장미, 그래서 낳은 아이 하티를 입양보내자고 하는 어른들, 그리고 어릴 적 입양되어 해외에서 자라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알고 있지만 외면하고 싶어했던 우리의 아픈 속살같은 이야기.

이 책을 읽는 많은 순간 '막막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태어난 아이 하티는 안아달라고 손을 뻗어 버둥거리지만, 장미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저 하티는 '살아가야 할' 어떤 강한 동기일 뿐, 자신이 엄마인지에 대한 감정도 잘 모른다. 장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티의 우유와 기저귀 값을 벌기 위해 진주의 집에 하티를 눕혀놓고 사진관으로 일을 하러 가는 것, 그마저도 하티를 돌봐달라고 부탁할 곳이 없고 갈 곳도 없어 진주의 눈치만 본다. 그나마 진주를 믿고 하티를 '이모'에게 맡긴 후 찾지 못해 두려울 때, 얼굴도 모르지만 엄마, 아빠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장미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이 막막할 뿐이다. 세상에 혼자 남겨져 손내밀 곳이 없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그래서 돌봄이 필요하고 도움을 청해야할 때, 누군가 단 한 명만 호의를 베풀어주길 바라는 순간에 우연찮게 도움을 주었던 청소부 아줌마에게 매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장미의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말처럼 장미는 하티를 제대로 키울 수 없을까? 사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하티를 혼자서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하티를 '입양'보내는 것이 답이 될까? 입양간 하티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TV에서 어릴 적 입양을 갔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 돌아오는 많은 입양인들을 본다. 꽤나 안타깝고 뭉클한 사연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그들의 삶은 생각처럼 그렇게 뭉클하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이유인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이 버려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헤쳐나가야 할 감정이 많을지도 모른다. <엑시트>에는 그저 왜 자신을 버렸는지 이유만이라도 묻고 싶다는 입양인, 다시 만나고 싶어 한국에 왔지만 부모가 만나기를 거절하여 두 번의 버림을 받은 입양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입양인까지 다양한 입장들이 보여진다. 꼭 '입양'이 정답인 것처럼 사람들은 권유하지만, 하티 또한 자라서 저런 원망 가운데 자신을 찾지 않을까 장미는 생각한다. (물론 입양되어 잘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전히 장미가 '나쁜 게 아니라 아픈 거라고' 여기는 어른이 있다는 것, 그래서 자신없지만 그 인연으로 장미를 돌보고자 하는 청소부 아줌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들이 조금씩 도와 한국으로 돌아온 입양인들과 장미를 도울 것이다. 장미는 사랑을 모르고, 돌봄을 받지도 못했지만 청소부 아줌마와 함께 하티를 키우고 성장하며 조금씩 그 감정을 배워가지 않을까?

돌아 갈 수 있는 곳, 위급할 때 누를 수 있는 전화번호 한 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하는 장미는 어쩌면 우리 주변에 많을지 모른다. 그렇기때문에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에서도 우리가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의지할 곳이 없어 변두리로 쫓겨나는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하지 않을까.

장미가 한 말이지만, "모두 다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 내고 있다고. 나쁜 일을 겪고도 잘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라고. 앞으로도 그러면 좋겠다"고 장미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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