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물고기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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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떠나려 할 때, 그는 다시 나의 얼굴을 마지고 내 눈과 입술을 쓰다듬었다. 그가 천천히 말했다.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까 조금씩 세상을 알아나가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는 도처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될 테고, 멀리까지 그것들을 찾아 나서게 될 거야.” 마치 그가 내게 축복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 대한 경의와 사랑으로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_ p.147


이 소설은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라는 뜻의 라일라에게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 그러니까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밝혀주는 유일한 기억은 햇살이 내리 쪼이는 눈부시게 하얀 거리, 그리고 어린 그녀를 잡아 검은 자루 속에 집어넣는 커다란 손 뿐이다.

그녀는 랄라 아스마라는 노파의 집으로 팔려가 그 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지만, 그녀에게는 세상 전부인 그 곳에서의 삶도 언제나 그녀의 여린 육체를 탐하는 노파의 아들이 있고 그녀를 학대하는 며느리가 있기에 그리 녹록치 않다. 노파가 죽고 나자 오갈 데 없어진 이곳 저곳을 떠돌며 지내며 삶을 이어 가며, 자기를 찾기 위한 기나긴 항해가 시작된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언젠가는 달아나지 않을 수 없는가?”

그녀는 어디에서도 이방인임을 절감하며 끊임없이 표류한다. 프랑스를 전전하다 미국으로 그곳에서 다시 프랑스로, 그리고 아프리카로, 그녀는 물고기처럼 사람들 속을 누비며 움직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고 자란 그곳에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제까지의 기나긴 표류가 결국 이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오랜 항해였음을 깨닫게 된다.

결국 고난과 역경에 떠돌지만,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기 위해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 구조는 꽤 익숙하고 단순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 안에 내포하고 있는 '진짜 삶'에 대한 이야기와 깊이는 다를 수 있다. 라일라의 인생처럼.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김연수 작가가 이 작품에 대해 쓴 리뷰의 한 문장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다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거예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 순간 성장해요.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죠. 우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_ 김연수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 자기 삶을 사랑하는 것,
우리는 이 과정 중에 놓여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이런저런 일들로 고민도 많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꽤 의기소침하고 무기력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직업이기도하고,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니 책을 읽는 것만큼은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 속에는 수많은 의문들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떠한 스스로 극복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감정이나 내가 지닌 수많은 질문들에 대해 책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없다면 내가 책을 읽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일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라일라의 삶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 보면 늘 떠돌아다니는 라일라의 고된 삶에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술'
이다. 예술이라고 말하면 굉장히 어렵게 들리지만, 라일라는 일상 중에 다양한 예술들을 접하고 그것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노래를 하는 가수를 매일 찾아가 가게가 닫을 때가지 노래를 듣는 것, 친구에게 철학 책 한 권을 얻어서 토론을 하며 고민해보는 것, 시구를 외워서 서로 한 구절씩 시를 낭송하는 것, 그리고 느끼는 대로 피아노를 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 모두 그녀의 삶에 깃든 예술이다. 그녀는 삶에 고난이 올 때마다 그것들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이 이런 예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라일라 또한 '자신의 삶을 구원한 것은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의 일상에 예술이 필요하고, 인류에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결국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는 많은 것 중 하나는 우리가 나누고 있는 문학을 포함한 예술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매일 귀에 꽂고 듣는 노래 가사가, 흥얼거리며 부르는 좋아하는 음악이, 감동적인 책 한 권과, 나의 삶을 보는 것 같은 영화 한 편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을 견디게 하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는 크게 위로 받았던 노래 가사가 있었는데, 그것은 BTS의 <Answer : Love Myself>의 가사이다.

시작의 처음부터 끝의 마지막까지 해답은 오직 하나

왜 자꾸만 감추려고만 해 니 가면 속으로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

내 안에는 여전히 서툰 내가 있지만,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나

타인을 용서하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특히 '나 자신', 내 실수에 대해서 용납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래서 나도 내 삶의 고비들에서 그 원인이 '나'라고 여겨졌을 때 극복하기 가장 어려웠다. 대중가요지만, 그래도 이 노래가사 한 줄이 나에게 희미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또 새 힘을 내게 하기도 한다.

라일라 또한 주어지는 삶에서 원망하며 머물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매 순간 떠나고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진짜 인생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고, 어떠한 작은 해답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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