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그로운 - 남들이 가지 않은 교육의 새로운 길을 여는 모험 이야기
벤 휴잇 지음, 오필선 옮김 / 아침이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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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저자는 거창하게 공교육의 대안(또는 대체재?)으로 홈스쿨링이나 언스쿨링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제목처럼 'grown', 자식을 키우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배운다.

 "교육=학교"가 아니다.

작가의 기본 생각은 위의 두 가지이다. 


 기존 학교체제에서 배웠던 것을 내려놓는 'Unschooling'

 학교가 곧 의무교육이었고, 학교가 교육을 독점하던 것을 법 개정을 통해 바꾸자는 

 '탈학교(deschooling)'의 개념.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배우며, 이것을 기다려주는 부모.

 저자 벤 휴잇 역시 고등학교를 중퇴한 경험이 있으며,  그의 부모는 그런 그를 지켜봐줄 뿐이었다. 


 하지만 대안학교 선생을 하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특히 아이를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라는 것은 아들 둘을 키우는 입장에서 더욱 그렇다.

 당장 장난감정리 안 하고 딴 짓하는 5분도 못기다려 소리치는데 어떻게 5년, 10년을 기다리나...

 대안학교에 보낸 부모들은 많은 것을 내려놓고 기다려줄 준비를 하고 온다. 

 하지만 나처럼 5분을 못 버티는 분들은 적어도 없는 것 같다. 학부모들을 생각할 때마다 대단하다고 느낀다.

 어떻게 6년을 기다려줄 수 있는지, 게다가 졸업하고 빈둥거리는 모습을 추가로 더 볼 수 있는지...

 이런 글을 볼 때 나의 아버지가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나 역시 중3 때 고집을 부리며 공고에 가겠다고 가족을 설득했고, 원하는대로 진학했다. 

 우리집 형편에 대학은 언감생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고의 생활은 내가 원한 배움과 거리가 멀었고, 이내 자퇴를 결심했다. 

 그런 나의 결정에 아버지는 두 말 없이 들어주셨고, 곧 인문계 학교에 편입했다.

 이런 과정을 나의 아버지는 그저 지켜볼 뿐이었고, 나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들어주었다.

 아버지보다 훨씬 많이 배운 나는,

 자식이 그런 결정을 할 때 지켜보기만 하다가 결정적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기만 할 수 있을까?


저자의 생각 중에서 짧게 지나간 말이었지만 학교교육이 지역사회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크게 와 닿았다.

국가수준의 학교교육과정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가?

다수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말그대로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공교육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이 지역사회에 기여하려면 

기본적으로 수도권 외 지역에 젊은 인구가 많이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심지어 부산 대구는 인구감소 예상 도시 세계 1, 2위를 나란히 하고 있는 마당에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학교교육은 어떠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제천간디학교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교육과정을 특화시키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이건 선언의 문제가 아니라 보여줘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재학생의 90%에 육박하는 수가 제천 이외 지역에서 오는데 

변변한 일자리 없는 지역에 남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다. 

그래도 지역사회와 학교는 공교육과 대안교육을 떠나 미래의 교육이 가져야 할 보편적 가치임에 틀림 없다.


못을 똑바로 박으려면 구부려봐야 하는 법이다비트를 뽑지 않으려면 비트를 뽑아봐야 하는 법이다. (164p)

못을 똑바로 박으려면 구부려봐야 하는 법이다. 비트를 뽑지 않으려면 비트를 뽀

창고를 짓는데 못질 네번 중 세번을 구부려 박을 때, 비트 밭에 잡초를 뽑는데 비트를 뽑아낼 때 
내 자식의 행위를 그저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훤이가 양치질할 때 이 안쪽을 닦지 않는 걸 보며
"내가! 내가!"를 외치는 아이의 짜증섞인 외침을 무시하면서까지 치솔을 빼앗아 기어이 '내가' 닦아주고야 만다. 

게다가 일곱살짜리 저자의 둘째 라이가 건초를 나르는 일을 하느라 손바닥에 물집이 터지고 살이 깃발처럼 너덜거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애써 무심한 척 하기, 

망치로 손톱을 내리쳐도 아이가 스스로 약품상자를 꺼내 알아서 치료할 때까지 그저 지켜보는 부모가 이 책의 저자이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우리 아이가 나에게 가장 바라는 모습은 그저 내버려두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부모들이 그걸 못한다.

40대 이상의 학부모세대 중에서 중고등학교 시절 감기가 걸렸을 때 부모와 상의하고 감기약을 먹은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약 먹는 것을 선택하는 것, 칼에 베인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는 것 등 이런 일을 요즘 10대들은 대부분 스스로 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나 교사를 포함한 기타의 보호자들이 해주기 때문에 오랜 시간 혼자 있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스스로 할 이유가 없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학원가면 심지어 주관적 사고의 기본인 논술까지 다 해준다. 

지금의 10대는 오롯이 혼자서 무언가 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오늘도 나는 두 아들을 돌보며 몇 번의 인내와 짜증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밥그릇에서 요구르트를 퍼내어 식탁에 흘리더라도, 

세수를 하다가 옷을 다 적셔도, 그 조그만 손으로 눈과 코주위만 닦아도

그냥 지켜봤다. 

아니, 사실 훤이가 다 할때까지 기다렸다가 "훤아, 아빠가 안 닦인 부분 닦아줄까?"

라고 말했고, "응"이라고 답이 오자마자 바로 얼굴과 목을 닦아줬다. 

아예 눈을 감고 안 봐야 하는데 한 쪽 눈만 찔끔 감았다고 해야 할까?


탯줄 끊으면 남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지켜보려면 그냥 안 봐야 하는 건지ㅋㅋ


이 책은 대안교육에 몸담고 있는 교사들은 오히려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을 수도 있다.

제목부터 '~schooling'이 아닌 '~grown'이다.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짜여진 틀을 가지고 학생에게 뭔가 제시하는 학교교육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자기 공부를 한다 생각하고 보면 하나하나가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시종일관 미래사회의 대안을 '마을(영어판 원본을 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local community를 강조하는 듯 하다)'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 

저자가 초반부에 언급했듯이 자기의 주장을 설득할만큼 자신은 고결한 삶을 사는 게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주장보다 사는 이야기 자체를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특히 대안교육에 관심이 있는 부모라면 꼭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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