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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5월
평점 :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하늘이 있다."
박노해 시인의 12년 만의 신작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작년 라 카페 갤러리에서 진행된 시인의 전시 '걷는 독서'로 '느린 걸음' 출판사와 인연이 되어 귀한 신간을 얼리 리뷰어로 읽게 되었다.
깊고 짙은 파아란 바탕에 밝게 빛나는 듯한 푸른 별이 촘촘한 표지 디자인의 첫인상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별빛처럼 빛나는 301편의 시를 담았다고 하는데, 표지에 콩콩 찍혀 표현된 푸른 별이 301개는 아닐까?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시집을 펼쳐보았다.
시인의 마음과 지혜, 철학을 밀도 있게 담아낸 시집의 두께가 솔직히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가벼운 책은 아니었지만, 왜인지 박노해 시인의 책은 혼자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하나씩 음미하며 읽어야 할 거 같다. 인간관계의 서툶과 부족함에 마음이 복잡했던 날 '너의 하늘을 보아' 시집을 챙겨서 동네 작은 숲으로 걸었다.
걷고 걷고... 또 걷고... 마음이 심란할 때는 무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나가서 걷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도착한 작은 숲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너의 하늘을 보아' 시집을 꺼내어 찬찬히 읽어보았다. 푸르른 5월, 마음이 머무는 시들의 언어가 나를 따뜻하게 위로하기도 하고, 따끔하데 혼내기도 했다.
'너의 하늘을 보아'의 목차는 총 5개의 주제로 엮었는데, 이날은 '내 몸의 문신' 챕터의 "핵존심"이란 제목의 시가 내 마음에 쿵 하고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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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존심
자존감을 가져라
자기를 사랑하라
노래하는 시대에
자존심 안에는
폭탄이 들어있지
세상을 파괴하는
핵폭탄이 들어있지
핵무기도
핵존심만 못하지
핵존심으로 무장한
자기중심의 내면에는
오만과 비굴이
우울과 조증이
불안과 혐오가
하나로 이글대지
자기 사랑은 자기 파괴지
핵존심은 열폭감이지
핵존심을 연결하면,
열폭감을 불지르면,
누가 터뜨리든
누가 자폭하든
바라지 않아도
공평한 파멸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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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가 꽤나 강한 나... 안정적으로 형성된 자존감이 아닌, 결핍으로 형성된 자기애라는 것을 심리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지나친 자기애는 시인이 이야기하는 핵무기보다도 더 파괴적인 핵존심과 동일하다. 나의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그랬다. 오만과 비굴, 우울과 조증, 불안과 혐오의 단어들이 마음에 콱콱 박힌다.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자폭하거나 폭발했던 순간들이 떠올랐기에...
통찰이 담긴 시는 이렇게 내면을,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아프지만 반성하게 한다. 당장은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조금은 더 나은 나로 끌어내기 위한 마음의 울림을 준다. 오늘 나의 하늘은 무슨 색일까?
너무 많은 생각과 계획, 감상은 오히려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시인의 '첫 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을 읽으며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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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그냥 걸어라
첫 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그냥 걸어라
상처도 두려움도 모르는 아이처럼
그냥 걸어라
금기도 허락도 모르는 아이처럼
걷다 넘어지면 울고
울다 일어나 다시 걸어라
걸어오는 길들이 너를 이끌어주고
여정의 놀라움이 너를 맞아주리니
네 영혼이 부르는 길을
그냥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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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걸음마를 하는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듯 격려하듯 쓰인 시처럼 느껴졌다.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내 영혼이 부르는 길을 그냥 걸어도 안전하고 말이다.
'너의 하늘을 보아'에는 불안함을 차분하게 잠재우는 신비로운 시가 많다.
곁에 두고 한 번에 하나씩 박노해 시인의 시를 음미한다면 위로와 성장을 함께 얻을 것이다.
다정함이 넘치는 5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