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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까지 천천히 - 미화리의 영화처방 편지
이미화 지음 / 오후의소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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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나에게 대체 무엇일까. 간단하지만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마냥 행복해질 때도 있고 불쾌해지기도 하고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주인공의 삶이 안타까워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영화보는게 마냥 좋아서, 라기엔 영화는 어느새 삶의 중심이 되었다. 영화를 전공하면서 평생 영화를 하는 것을 꿈으로 삼았고 지금도 근처를 맴돌며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만들고 싶지 않다. 만들어야하나? 세상에 이렇게나 좋은 영화들이 많은데. 그러나 스스로가 가장 알고 있다. 어쩌면 비난받기 무서워일수도, 무관심 속에 묻히는 것이 두려워 쉽사리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서른 중반이 되어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하는가 하는 고민에 뚜렷한 답을 내리지 못해 머리가 복잡할 , 이미화 작가의 <엔딩까지 천천히> 라는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 이미화 작가님은 믿고 읽는 작가 중 하나다. 설레는 마음에 배송을 받아 출퇴근길에 틈틈히 읽어내려갔다. 


책은 누군가의 고민에 맞는 영화를 편씩 처방해주는 방식으로 25편의 영화와 고민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영화도 있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도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도 있고. 스물 다섯 명의 고민이 모두 얘기 같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는 것도 애매한 (혹은 없는) 재능으로 힘든 것도, 열등감때문에 괴로운 것도 모두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내가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의 곤란을 털어놓으면, 저자는 다정하고 담백한 어투로그렇다면 오늘은 영화를 보고 편히 잠드는 어때요? 영화 진짜 좋은데.’ 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아진 것에 마음이 두둑해져서 행복해졌다. 다양한 고민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줄 수 있는 능력이 못내 부러웠다. 이번주부턴 오랫동안 왓챠 '보고싶어요' 보관함에 들어있던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를 정주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가 혼자만의 고민으로 끙끙 앓고 있다가 어떤 영화 편을 보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날 하루를 마무리 있다면, 영화의 소임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천만 관객이 영화를 보았다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한명이라도 영화를 통해서 약을 먹은 마음의 통증이 잠시 가라앉았다면. 그건 엄청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만든 이에게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

영화를 통해 위로받았던 숱한 날들이 떠올랐다. 결국 순간들이 모여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처방전처럼, 그날의 고민에 맞는 영화가 편씩 들어있는 책을 소중히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걱정없는 밤이었다. 한결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나를 믿고 계속 이야기를 쓰는 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처방전에 쓰일 있도록. 


- 마음에 담은 문장들

, 작가라는 직업은 수수하지만 꾸준한 일이구나. 생각하니 일이 좋아졌습니다.”

터널을 통과한 당신의 인생이 앞으로 아주 뻔하게 흘러가더라도, 제가 영화의 관객이 될게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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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향해 달리다 - 기억과 대면한 기록들
세라 폴리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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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는 저자가 열 네살 때 참여했던 <겨울나라의 앨리>의 연극 공연에 참가했을 때를 다룬다. 그녀는 척추측만증에 걸린 앨리스였다. 척추가 60도 정도 기울여져 겪는 고통을 읽는 동안, 구부정했던 허리를 곧추세우게 된다. 그녀가 느꼈을 온 몸의 고통, 압박감, 외로움. 이미 그것을 통과한 자만이 쓸 수 있는 담담함. 나는 그것들을 책을 통해 오롯이 느낀다.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다. 그것들을 모두 겪어내고 지금의 세라 폴리가 된 그녀는 연기를 하고 영화를 만들고 책을 썼다. 앨리스가 멋진 성인으로 자란 것과 같은 성장이다.


책이 집에 도착하고, 이 책과 함께 일주일을 쭉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들떴다. 늘 새 책은 마음을 설레게 하니까. 일주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직 나는 완독을 하지 못했다. 두 챕터를 겨우 다 읽었을 뿐이다. 결코 재미가 없어서, 난해해서 같은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과 가슴을 찌르는 장면들로 채워진 책이다. 인상적인 구절이 나올 때마다 책 끝 모서리를 접는 버릇 때문에 이 책은 귀퉁이가 울퉁불퉁해졌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한 편의 가슴 아프지만 감동적인 성장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꼭 세라 폴리가 다음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 영화를 찍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세라 폴리라는 배우이자 감독은 타고난 재능으로 무난히 아픔도 없이, 열등감도 없이 창작을 해왔을 것이라고 쉽게 여겼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속내를 너무나 정확한 언어로 해부하며 써 내려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책의 제목처럼 ‘위험을 향해 달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게 얼마나 사람을 두렵게 하고 큰 용기를 내야 하는지 느끼게 했다.


에세이를 잘 쓰고 싶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나는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을 당시의 그녀처럼 느끼지만 문장의 얼굴을 한 그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온갖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내가 에세이를 쓰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내면 깊은 곳에 굳게 닫힌 상자를 열기를 얼마나 주저했는지 반성하게 됐다. 저자는 르포를 쓰듯, 감정과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써내려간다. 놀라운 것은 두려움과 안도감 사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그 사이 묘한 지점에 걸쳐져 있는 감정까지 세세히 짚어가며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거나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정도까지 구체적일 수 있을까. 과연 배우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냥’은 없는 것이다.


몇년 전 세라 폴리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재밌게 보았다. 그 영화도 단순히 불륜이냐 사랑이냐를 이분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사람에게도 끌리는 주인공의 감정을 차분하게 지그시 관찰하는 영화가 사랑스러웠다.

저자의 글과 영화에서는 차분한 강인함이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한 이유도 챕터마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 중 내가 한 번이라도 겪었다면 이만큼 다시 곱씹고 떠올리고 끝내 담담히 풀어낼 수 있을까. 아휴 머리 아파. 힘들어. 하면서 덮어둔 채 살았을 텐데. 물론 저자는 그 집요함과 강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이야기’를 숨겼다고 고백한다.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불가해한 인생의 갈피를 잡고, 자기 둘레에 서사를 쌓고, 혼돈 속에서 붙잡을 것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 대답을 하는 나를 떠올리며 나는 내 잠재의식의 작용을 상상한다. 내 잠재의식이 그날 밤 그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것을 납득하려 애쓰고, 현재를 정상화한다. 그와 동시에 내게서 진짜 이야기를 숨긴다." - 127 p 


어떻게 이런 탁월하고 아름다운 에세이를 쓸 수 있었는가를 이어지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2017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했다는 글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고 서술한다.


“이런 일에 하나의 옳은 방법이란 없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는 것. 이것이 자기 무력화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내가 고수하는 개념이다.” 

“노골적이든 미묘하든 여성을 비하하는 모든 방식이 과거지사로 간주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이 실현되려면 먼저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두려움, 무력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 이것들에 눌려 우리가 감수해 온 것은 무엇일까? 삶의 면면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외면하고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용납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140p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쯤이면 나에게도 그런 강인함과 용기가 생길 수 있을까. 적어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이미 조금 자란 내가 과거의 나를 너그러이 바라봐줄 수 있을까. 힘들겠지만 저자가 해낸 것처럼, 이렇게 멋진 여성으로 성장한 것처럼 나도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피하지 않고 마주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는 ‘앨리스’ 공연을 끝내지 못한 나 자신을 자주 저주했다. 그리고 자주 자문했다. 만약 그때 남은 10회 공연을 마저 끝냈더라도 내가 여태까지 이런 불안에 잡혀있을까? 그랬어도 내가 밤마다 엉망진창이 된사춘기의 악몽에 갇혀있을까?

나는 고민했다. 나는 평생 해보지 못한 것을 해낸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는 그들에게 내 공포를 밝히고, 그들의 눈앞에서 내가 그걸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94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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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쌓는 마음 마음의 지도
윤혜은 지음 / 오후의소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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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씨가 일기를 건넨 것처럼, 글쓰기 클래스의 박 선생님이 자신의 일기 묶음을 건넨 것처럼. 윤혜은 작가가 정성스레 모아둔 두꺼운 일기 모음을 건네받았다. 그의 일기를 읽을 수 있는 독자로 선택된 것은 귀중한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일기장 앞에서 조금 더 시시콜콜해졌고 이 기록에는 권태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나로부터 도망쳐 온 이곳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정말로 내게 없구나,라는 서늘한 확인을 더해가던 나날들. 쓸데없는 것들로 터질 듯한 캐리어처럼 나는 도무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구성돼 있다는 자학을 멈추기 어려운 밤에, 한 장씩 넘겨본 헬무트의 일기장은 곤두박질치는 자아 앞에 둥근 방지턱을 만들어주었다.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여유, 그로 인해 다른 길로 빠져볼 수 있는 가능성을 헬무트는 이미 내게 몇 번이고 알려주었다."


게으른 나도, 유일하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일기를 쓰는 일이다. 방 한켠엔 스무살 무렵부터 작년에 썼던 다이어리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 박스가 있고 ‘Notebook’이라는 어플에 2017년 부터 띄엄띄엄 쓴 일기를 모아두었다. 그리고 올해 선물받은 스타벅스 데일리 다이어리까지.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삶을 조금 견딜만하게 해주었다. 일기를 쓴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분명 나는 무언가를 꾸준히 쓰는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지금도 글쓰기를 놓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일기 쓰기는 양치질, 물 마시기 같은 일상의 행위의 범주로 치부하곤 했다. 일기의 진가는 그것들이 쌓이고 지난 날의 기억이 흐릿해졌을 때쯤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일기들도 훑어보게 되었다. 매일 매일 변화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과거의 내가 바라던 모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궤적이 보였다. 잘 살아내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을 주었다. 일기장은 하루를 망쳐도, 세상에서 제일 못나고 게으른 것 같아 속상해도, 좋은 사람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다 와서 달뜬 마음이어도 언제나 묵묵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야말로 ‘시시콜콜’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래서 지겨워지지 않는다.


<매일을 쌓는 마음>을 읽으며 지내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하루 치의 삶을 더 꽉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생겨났다. 작가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그럴까. 자연스럽게 그런 태도가 전달되었다.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감정들, 내 안에 생겨나는 미묘한 변화까지도 정확하게 포착하는 문장들은 그런 마음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다. 다소 납작해진 마음으로 속도와 결과에만 치중하다가, 이젠 넉넉해진 마음과 시야로 천천히 걸어가듯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한 이래로, 소설 읽기를 멈춘 적은 없으니까. 아주 느리고 미약하게나마 쓰는 운을 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소설을 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은 적도, 의미를 찾은 적도 없지만. 계속,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간헐적인 시도뿐이지만, 그저 ‘나도 쓰고 싶다’라는 마음과 눈이 마주친 뒤로는 그 순간으로부터 결코 멀어지지 못하는 자신으로 반복해서 돌아올 뿐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 시나리오도, 소설도, 에세이도 잘 쓰고 싶은 욕심 많은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이 없는 소설을 ‘그냥’ 쓰고 있다. 친구들과 마감일을 정해서 짧은 소설을 쓰기도 하고, 올해 다가올 소설 공모전에 힘 닿는 데까지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냥, 잘하든 못하든 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반 몇 문장 조차 쓰지 못하고 덮어두기 일쑤였다. 한 문장 다음에 또 다른 문장. 그것들을 어떻게 이어나가야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것은 좋았다. 쓰지 않아도 읽는 것은 순수하게 즐거워서 계속하고 싶었다. 쓰는 일도 조금은 즐기며 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작년에는 지원한 시나리오 공모전에 모조리 다 떨어졌다. 초라한 나의 현위치를 확인했다면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오히려 나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재미로 소설을 써볼까? 이야기를 만드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속내를 걷어내자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재밌게 읽는 것처럼 쓰는 것도 그렇게 해보자고. 공모전에 내보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왜 굳이 쓰는 것을 놓지 못하는지 나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의 문장에서 그 이유를 가늠해볼 뿐이다. ‘쓰고 싶다’라는 마음과 눈이 마주쳐버린 안타까운 운명인 거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 장래희망을 줄곧 소설가라고 썼다. 그 아이에게 ‘너는 소설가가 되지 못할 거야. 미안해’라고 말하는 대신 ‘넌 아마도 미래에 소설가가 되어 있을거야. 꾸준히 쓰다 보면!’ 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루지 못한 무수한 꿈들 중에서 그것마저 제대로 해보지 않고 도망친다면 앞으로 마주할 미래의 나는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고개만 떨구고 있는 비겁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날 쓸 수 있는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언제나 간절한 마음보다 커다랗기를 바라는 것뿐. 그럼 도망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간절해지면 무서워진다. 안 되면 어떡하지, 망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의 늪에 빠져버린다.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두려움으로 이어나간 글은 재미가 없었다. 그저 잠시 아무 것도 쓰지 않아도 된다며 약을 먹듯, 책을 읽는다. 이 책은 그럴 때 읽으면 아주 좋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하물며 일기라도 매일 매일. 작가가 차근 차근 쌓아올린 사유로 꽉 찬 문장을 읽어내려가면서 ‘좋아하는 마음’이 회복되어가는 게 느껴진다.

쓰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성실히 해내는 작가는 도망치지 않고 오롯이 시간을 지나오는 법을 알려준다. 쓰는 일이 사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왜 나는 알지 못했을까.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떠오른 책은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이었다.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지나온 시간들이 꾹꾹 눌러담겨 있는 모양이 닮았다. 그래서 윤혜은 작가의 소설도 기대가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조금 더 삶을 애정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애정할 수 있는 사람.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고 자책만 했던 사람에서 그래도 나는 어찌됐든 일기를 쓰고 있으니 잘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니냐고, 글을 쓰는 한 외롭지 않다고. 그런 확신이 생겼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나만은 내가 미워할 수 없는 나였으니까. 심지어 스스로를 비아냥거리는 글일지라도 쓰는 나는 내 편이 되어 주고 있다는 안심이 있었다. ‘그런 너를 내가 알아.’ 아무도 해주지 않는 말을 나에게 돌려주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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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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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말, 귀가 번뜩이는 말을 들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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