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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없는 작가로 살아남기 - 재능 없이도 글밥 먹는 사람의 생존기
홍지운 지음 / 아작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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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병에 걸렸다. 그 병의 이름은 '내글구려'병. 내년 초 마감인 소설 공모전에 도전하기 위해 글을 써나가고 있었다. 하루에 짧으면 한 시간, 길면 세시간을 거의 매일 쓰다가 몇 주 동안 쌓인 내 글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뭘 써도 재미가 없는 것 같다. 이게 과연 뽑히기나 할까? 시간낭비는 아닐까? 독립출판을 해보겠다고 써둔 원고는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돈을 받고 누군가는 사서 읽어볼 정도의 글을 쓰려면 적어도 글이 괜찮아야하는데, 이건 내가 돈을 주고 제발 읽어달라고 해도 아무도 읽지 않을 수준이다. 점점 자신감은 줄어들고 미래는 더 깜깜해져만 갔다. 몇 년동안 작가가 되겠다고 해놓고는 겨우 이 정도 수준밖엔 안된단 말인가? 주변엔 상도 받고 제작사와 계약을 한 동기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내글구려 병에 걸렸을 땐 비교는 절대 해선 안되는 독약같은 것이란 걸 알면서도 내 자신을 책망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 

그 때, 이 책을 발견했다.

트위터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출판사인 '아작'의 계정에서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를 답글로 쓰면 책을 제공해주신다는 것이었다.  『재능없는 작가로 살아남기』라는 제목은 나를 위해 정해진 것일까? 이렇게나 재능이 없는 작가를 위한 책이 새로 나왔다니! 빨간 색 배경에 야무진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는 '조금만 힘내! 살아남아보자!'라고 말을 거는 듯 했다.

작업을 하다가 기운이 다 빠질 때, 도무지 오늘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약을 먹듯 책을 펼쳐들었다. 그때마다 홍지운 작가님이 직접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떤 선배도, 스승도 해주지 않았던 실용적이면서도 위로가 되는 그런 말. 이 책이 아니었다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작업을 하고 싶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출간이나 등단의 타이틀이 있건 없건 작가입니다. 글로 돈을 번 적이 있건 없건 자기 작업물이 있으면 다 작가입니다." - 42p.


"내 실력이 성장하는 것이 체감되지 않아도 조바심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차피 글은 쓰다 보면 늘어요." - 170p.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럴리 없겠지만, 마치 내 마음을 간파 당한 듯한 문장 앞에서는 한참을 머물 수밖에 없었다. 책을 덮을 때쯤, 심리상담을 받고 상담실을 빠져나온 것처럼 마음이 후련하고 진정된 것을 느꼈다. 내글구려병에 시달리는 이유,내 인생은 이대로 망한 것같아 불안과 두려움에 도저히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이유에 대해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건 등단이나 수상 같은,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부끄러움, 그런 내가 작업을 계속해도 될지 하는 열등감, 글로 돈을 벌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다는 것에서 오는 무력감, 아무리 해도 안될 것 같은 조바심, 쓰면 쓸수록 재능이 없다는 사실만이 분명해지는 현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압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지운 작가님의 이 책은 그 마음 다 안다, 그래도 당신은 계속 글을 쓰고 싶잖아.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트위터에 글을 쓴 거 잖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물론 너무나 따스한 말투로...)


쉽진 않지만, 더 이상 스스로에게 자격 따위는 따져묻지 않기로 했다. 되든 안되든 작업을 하고 있으면 된 거라고, 언제까지일 수는 알 수 없지만 상관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걸 그저 써보기로, 내글이 구리다고 느껴진다면 쉽게 포기하려하지말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고칠 수 있을지 고민해보기로 했다. 작가로 살기로 결심한 '나'와 내 작품을 아끼고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그게 내가 이 책을 읽은 후 '재능없는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제목과는 역설적이게도,이 책을 쓴 작가는 결코 재능없는 작가가 아니었다. 글쓰기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즐기고, 재밌어한다는 건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 어쩌면 나도 '재능'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아직 놓질 못하는 걸 보면. 

책의 말미에 가면 정말 작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 대목을 읽고 '맞아!'하고 무릎을 쳤다. 완벽히 들어맞진 않지만 이미 나에게도 그 것들은 갖추고 있었다. 든든한 나의 지원군, 도구들을 믿고 조금씩 나아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책 또한, 작가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되기에 충분하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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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줄이면 된다 - 길 잃은 창작자를 위한 한예종 스토리 공식
이은희 지음 / 부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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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법서에 홀린 듯 끌리곤 한다. 집에는 아예 작법서 칸이 따로 있을 정도다. 출판사 '부키'에서 나온 신간 <4줄이면 된다>는 제목을 보고 내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책이란 걸 바로 알았다. '길 잃은 창작자를 위한 한예종 스토리 공식'이라는 카피를 보고 확신한 것이다.


영화 <순정>을 연출한 저자 이은희 감독은 한예종 영화과 수업에서 만점에 가까운 강의평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만큼 책에는 감독님의 아낌없는 스토리 노하우가 꾹꾹 눌러담겨 있었다. 단순한 노하우라고 하기에는 더 진지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나는 진심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가? <4줄이면 된다>라는 간결한 책의 제목만 보면 단번에 대박 시나리오를 써낼 수 있는 비법서 같아 보이지만, 결코 만만한 책은 아니다. 그 '4줄'을 완성하기 위해 내 안의 수많은 감정과 욕망, 즉 나의 내면을 똑바로 마주봐야만 비로소 좋은 이야기를 길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작법서를 모으고 참고하며 읽어보았지만 대부분이 미국 헐리우드 작가들이 쓴 책을 번역한 것이거나 고전적인 3막 구조의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들이 많았다. 이렇게 현재 활동하고 계시는 감독님이자 선생님이 쓴 작법서가 귀한 이유가 그것이다. 중간에 부록처럼 들어있는 'Workshop' 코너도 <대부>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예로 들기 보단 최근 개봉을 했거나 흥행작이었던 작품 (극한직업, 더 글로리 등)을 예로 들고 있어 쏙쏙 이해가 잘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바로 대박을 낼 이야기, 훌륭한 이야기를 완성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참 이야기를 완성해보겠다고 허우적대다 정작 '코어'를 놓치곤 했던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이 책은 이야기를 쓰는 이유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가는 방향을 다시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세상에 공유하고 싶은 질문을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글을 쓰든, 사실 그게 다가 아닐까.  

- 밑줄

솔직히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였다. 책을 정말 깨끗하게 보려고 하는 편인데, 이건 그게 안 됐다. 막 메모도 해가며, 동그라미, 물결, 별표 표시하며 '맞아! 그렇구나!' 하며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야기를 만나고자 한다면 그 무엇보다 앞서 ‘내 것‘을 진정으로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알고,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생각보다 ‘상당히‘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정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당신만 알고 있다. 그러니 ‘당신만‘ 쓸 수 있다. - P19

너무 쉽거나 이미 알고 있어도, 또 너무 어렵거나 이해할 수 없어도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정보나 도전을 제공받을 때 가장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P29

작가가 주인공에게 완벽히 몰입하지 못하면 이야기는 자꾸 깊이 가지 못하고 옆으로 간다. - P239

당신에게는 정확한 지표가 되어 줄 ‘1줄‘이 있고, 그 길로 나아갈 내비게이션이 되어 줄 ‘4줄‘이 있으니 걱정 없이 쏟아 낼 수 있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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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 지브리 음악감독과 뇌과학자의 이토록 감각적인 대화
히사이시 조.요로 다케시 저자, 이정미 역자 / 현익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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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론- 물리적 현실의 구원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지음, 김태환.이경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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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노동- 적게 일해도 되는 사회, 적게 일해야 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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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까지 천천히 - 미화리의 영화처방 편지
이미화 지음 / 오후의소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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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나에게 대체 무엇일까. 간단하지만 쉽게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마냥 행복해질 때도 있고 불쾌해지기도 하고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주인공의 삶이 안타까워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영화보는게 마냥 좋아서, 라기엔 영화는 어느새 삶의 중심이 되었다. 영화를 전공하면서 평생 영화를 하는 것을 꿈으로 삼았고 지금도 근처를 맴돌며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만들고 싶지 않다. 만들어야하나? 세상에 이렇게나 좋은 영화들이 많은데. 그러나 스스로가 가장 알고 있다. 어쩌면 비난받기 무서워일수도, 무관심 속에 묻히는 것이 두려워 쉽사리 시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서른 중반이 되어도 무엇을 하며 살아야하는가 하는 고민에 뚜렷한 답을 내리지 못해 머리가 복잡할 , 이미화 작가의 <엔딩까지 천천히> 라는 책의 출간 소식을 들었다. 이미화 작가님은 믿고 읽는 작가 중 하나다. 설레는 마음에 배송을 받아 출퇴근길에 틈틈히 읽어내려갔다. 


책은 누군가의 고민에 맞는 영화를 편씩 처방해주는 방식으로 25편의 영화와 고민을 소개하고 있다. 내가 영화도 있고 아직 보지 못한 영화도 있었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도 있고. 스물 다섯 명의 고민이 모두 얘기 같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는 것도 애매한 (혹은 없는) 재능으로 힘든 것도, 열등감때문에 괴로운 것도 모두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내가 어디에서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의 곤란을 털어놓으면, 저자는 다정하고 담백한 어투로그렇다면 오늘은 영화를 보고 편히 잠드는 어때요? 영화 진짜 좋은데.’ 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보고 싶은 영화들이 많아진 것에 마음이 두둑해져서 행복해졌다. 다양한 고민에 맞는 영화를 추천해줄 수 있는 능력이 못내 부러웠다. 이번주부턴 오랫동안 왓챠 '보고싶어요' 보관함에 들어있던 일본 드라마 <콩트가 시작된다>를 정주행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가 혼자만의 고민으로 끙끙 앓고 있다가 어떤 영화 편을 보고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날 하루를 마무리 있다면, 영화의 소임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천만 관객이 영화를 보았다는 기록도 중요하지만, 한명이라도 영화를 통해서 약을 먹은 마음의 통증이 잠시 가라앉았다면. 그건 엄청난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만든 이에게 그것만큼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

영화를 통해 위로받았던 숱한 날들이 떠올랐다. 결국 순간들이 모여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처방전처럼, 그날의 고민에 맞는 영화가 편씩 들어있는 책을 소중히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에 들었다. 오랜만에 걱정없는 밤이었다. 한결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나를 믿고 계속 이야기를 쓰는 일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처방전에 쓰일 있도록. 


- 마음에 담은 문장들

, 작가라는 직업은 수수하지만 꾸준한 일이구나. 생각하니 일이 좋아졌습니다.”

터널을 통과한 당신의 인생이 앞으로 아주 뻔하게 흘러가더라도, 제가 영화의 관객이 될게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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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향해 달리다 - 기억과 대면한 기록들
세라 폴리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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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는 저자가 열 네살 때 참여했던 <겨울나라의 앨리>의 연극 공연에 참가했을 때를 다룬다. 그녀는 척추측만증에 걸린 앨리스였다. 척추가 60도 정도 기울여져 겪는 고통을 읽는 동안, 구부정했던 허리를 곧추세우게 된다. 그녀가 느꼈을 온 몸의 고통, 압박감, 외로움. 이미 그것을 통과한 자만이 쓸 수 있는 담담함. 나는 그것들을 책을 통해 오롯이 느낀다.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다. 그것들을 모두 겪어내고 지금의 세라 폴리가 된 그녀는 연기를 하고 영화를 만들고 책을 썼다. 앨리스가 멋진 성인으로 자란 것과 같은 성장이다.


책이 집에 도착하고, 이 책과 함께 일주일을 쭉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들떴다. 늘 새 책은 마음을 설레게 하니까. 일주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직 나는 완독을 하지 못했다. 두 챕터를 겨우 다 읽었을 뿐이다. 결코 재미가 없어서, 난해해서 같은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과 가슴을 찌르는 장면들로 채워진 책이다. 인상적인 구절이 나올 때마다 책 끝 모서리를 접는 버릇 때문에 이 책은 귀퉁이가 울퉁불퉁해졌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한 편의 가슴 아프지만 감동적인 성장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꼭 세라 폴리가 다음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 영화를 찍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세라 폴리라는 배우이자 감독은 타고난 재능으로 무난히 아픔도 없이, 열등감도 없이 창작을 해왔을 것이라고 쉽게 여겼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속내를 너무나 정확한 언어로 해부하며 써 내려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책의 제목처럼 ‘위험을 향해 달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게 얼마나 사람을 두렵게 하고 큰 용기를 내야 하는지 느끼게 했다.


에세이를 잘 쓰고 싶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나는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을 당시의 그녀처럼 느끼지만 문장의 얼굴을 한 그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온갖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내가 에세이를 쓰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내면 깊은 곳에 굳게 닫힌 상자를 열기를 얼마나 주저했는지 반성하게 됐다. 저자는 르포를 쓰듯, 감정과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써내려간다. 놀라운 것은 두려움과 안도감 사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그 사이 묘한 지점에 걸쳐져 있는 감정까지 세세히 짚어가며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거나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정도까지 구체적일 수 있을까. 과연 배우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냥’은 없는 것이다.


몇년 전 세라 폴리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재밌게 보았다. 그 영화도 단순히 불륜이냐 사랑이냐를 이분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사람에게도 끌리는 주인공의 감정을 차분하게 지그시 관찰하는 영화가 사랑스러웠다.

저자의 글과 영화에서는 차분한 강인함이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한 이유도 챕터마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 중 내가 한 번이라도 겪었다면 이만큼 다시 곱씹고 떠올리고 끝내 담담히 풀어낼 수 있을까. 아휴 머리 아파. 힘들어. 하면서 덮어둔 채 살았을 텐데. 물론 저자는 그 집요함과 강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이야기’를 숨겼다고 고백한다.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불가해한 인생의 갈피를 잡고, 자기 둘레에 서사를 쌓고, 혼돈 속에서 붙잡을 것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 대답을 하는 나를 떠올리며 나는 내 잠재의식의 작용을 상상한다. 내 잠재의식이 그날 밤 그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것을 납득하려 애쓰고, 현재를 정상화한다. 그와 동시에 내게서 진짜 이야기를 숨긴다." - 127 p 


어떻게 이런 탁월하고 아름다운 에세이를 쓸 수 있었는가를 이어지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2017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했다는 글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고 서술한다.


“이런 일에 하나의 옳은 방법이란 없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는 것. 이것이 자기 무력화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내가 고수하는 개념이다.” 

“노골적이든 미묘하든 여성을 비하하는 모든 방식이 과거지사로 간주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이 실현되려면 먼저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두려움, 무력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 이것들에 눌려 우리가 감수해 온 것은 무엇일까? 삶의 면면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외면하고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용납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140p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쯤이면 나에게도 그런 강인함과 용기가 생길 수 있을까. 적어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이미 조금 자란 내가 과거의 나를 너그러이 바라봐줄 수 있을까. 힘들겠지만 저자가 해낸 것처럼, 이렇게 멋진 여성으로 성장한 것처럼 나도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피하지 않고 마주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는 ‘앨리스’ 공연을 끝내지 못한 나 자신을 자주 저주했다. 그리고 자주 자문했다. 만약 그때 남은 10회 공연을 마저 끝냈더라도 내가 여태까지 이런 불안에 잡혀있을까? 그랬어도 내가 밤마다 엉망진창이 된사춘기의 악몽에 갇혀있을까?

나는 고민했다. 나는 평생 해보지 못한 것을 해낸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는 그들에게 내 공포를 밝히고, 그들의 눈앞에서 내가 그걸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94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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