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사 - 창의적인 수용과 융합의 2천년사
소병국 지음 / 책과함께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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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의 영어 제목이 A New History of Southeast Asia란 점에 주목하자. 다분히 머리말에서 언급된 D. G. E. 홀의 A History of South-East Asia(1955)를 의식해서 지은 듯하다. D. G. E. 홀의 책과는 다른 새로운 동남아시아사를 다루겠다는 소병국의 포부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이 알라딘 북펀딩의 광고 문구처럼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1부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 1부만 보면 책의 성격이 동남아시아의 역사가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대한 전반적인 개론서로 보인다.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다룬다는 책의 취지와 맞지 않다. 차라리 간략하게 언급된 만달라 체제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만달라 체제가 동북아시아의 조공책봉 체제와 어떻게 다른가를 짚었다면 더욱 알찬 내용이 되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역사를 다루는 2부로 넘어가면 소병국이 서술하고자 하는 동남아시아의 역사가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워진다. 2부는 13세기를 기점으로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고대와 고전으로 나누어 18세기까지 다루었는데, 각 부분마다 교역을 먼저 다루고 각 지역의 왕조를 다음에 다루었다. 그 때문에 내용의 흐름이 끊겨, 책의 내용이 난잡해졌다. 또한 이런 배치는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의 진입장벽을 높이거나, 관련정보를 흘려 넘기게 만든다. 차라리 2부를 전근대 동남아시아 왕조와 그 사이에 이루어진 교역으로 나누었더라면 글의 전개가 깔끔했을 것이다.


책의 더 큰 문제는 글의 전개나 몇몇 오류보다도 참고문헌이다. 책의 참고문헌에 1차 사료가 없이 다른 사람의 논문과 저작만 있다. 게다가 참고문헌을 소개하는 미주는 본문의 각 항목 마지막 문장 뒤에 달려있어, 본문에서 참고문헌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인용이 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이는 주석 없이 참고문헌만 밝히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으며, 오히려 있을 필요가 없는 주석이다. 이처럼 참고문헌의 인용이 명확하지 않으면, 본문에 표절이 있다 하더라도 알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또한 1차 사료는 인용한 연구의 검증과 본문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소병국은 1차 사료 없이 2차 사료만을 활용하였다. 하다못해 동남아시아 각국의 1차 사료를 조금이라도 인용했으면 글의 신뢰도가 올라갔을 것이다.


정말 유감스럽게도, 이 책은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깊이 있게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책의 맨 뒤에 실린 펀딩 독자들의 이름은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이들의 성원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11개국의 역사를 한꺼번에 다루려다보니 내용이 간략해질 수밖에 없고, 동시에 동남아시아의 어떤 역사를 다룰 것인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1부가 동남아시아사 개괄이 아니라 동남아시아 개괄인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또한 참고문헌 인용을 뭉뚱그려 각 항목 뒤에 미주를 단 방식은 역사책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참고문헌의 페이지가 빠진 미주를 온전한 주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수많은 연구 자료를 참고한 소병국의 노력이 빛을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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