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간이역 > 박범신, 그와 1년 뒤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년 전 홍대점에 있던 이리카페가 상수역점으로 옮겨오면서 변해있었다.
일단, 이날의 풍경에서 느꼈던 첫인상은 번접한 '이리카페'였다.
1년 전이라고 하니 이상한가? 이맘 때 작년에 이리카페에서 고산자를 낸 박범신 작가를 만났었다. 

 

참 재미있는 것은 작가는 어떤 책을 쓰게 되면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일정부분 닮아 있는 것을 느낀다.
이건 마치 배우가 혼신을 다해 맡은 역할에 심취하는 것과 같다.
물론 작가이기에 더욱 그 에너지를 쏟았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어쩌면 앞과 뒤의 비유가 바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박범신 작가의 작품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모두가 박범신 작가의 모습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작년 고산자의 김정호도 박범신의 '아바타' 였던 것처럼 느껴졌고
이번 은교의 이적요 시인도 박범신의 '아바타'로 느껴졌다.


 

 

 

글쎄, 다채로웠던 것은 이번 강연회 때는 성우 김상현 씨가 나와서 그 착 가라앉는 목소리로
읽어주었던 점이 이번 강연회를 초반에 살렸던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이 든다.
김상현 씨는 원래 시와 소설을 읽은 성우 역할로 먼저 데뷔를 했다고 해서 일까 박범신 작가의 은교가 더 감각적으로 들렸다.


문학작품은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내어 읽는 것이 더 칼큼한 맛을 낸다는 것을 알려준 이번 강연회는
그렇게 차분하게 시작이 되었다.
무엇보다 박범신 작가가 나이가 60을 바라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 소설은 젊은이의 감수성이 물씬 느껴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또 그러면서도 나이 80을 바라보는 늙은이의 감수성도 같이 다루고 있어
박범신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자 했는지 언뜻 보아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차분하게 읽다보면 또 그와의 대화를 조금만 나누게 되면
그는 소설을 쓰면서 독자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자 했음을 느끼게 된다.
이적요 시인이 박범신 작가의 아바트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고산자 때도 이야기를 꺼냈지만 우리 문단은 고상한 '역사'이야기를 소설로 버무리면 굉장한 작가로 치부하지만 연예소설을
쓰게 되면 '하급'으로 지칭한다는 것을 박범신 작가는 꼬집고 있다.
바로 이적요 시인이 문단의 이런 서열 나누기를 비웃었던 것은 박범신 작가의 생각이 강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을 다 읽어보면
박범신 작가가 등장인물이고 등장인물이 박범신 작가가 되어버리는 현상이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떤이에게는 좋을 것이고 또 어떤이에게는 나쁜 효과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독자가 그의 소설을 읽고 그가 등장인물의 어느 인물과 같지 않을까 의심을 받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날의 박범신은 그랬기에 나는 또 그와의 만남을 기다릴 것이다.
과연 1년 뒤에 또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가 된다.
그가 곧 출시할 다음번 책을,
다음 번 책에서는 또 어떤 아바타를 보여줄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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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간이역 > 법조인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김두식 교수를 만나다

불멸의 신성가족을 통해 만나보았던 김두식 교수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전에 생겼었다.
바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라는 책 강연회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명동에 있는청아람에서 진행을 하였다. 처음에 청아람을 알지 못해 30분이나 길 거리에서 헤매다가 들어갔는데 김두식 교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편안한 인상이었다.

법조인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그를 만났다는 것은 결국 그 자리에서 강연을 한 김두식 교수는 종교인으로 내가 바라보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말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교회의 실정을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교회의 실정이라기 보다는 교회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정학히는 변질된 교회에 의해서 말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소망교회' 같은 변질된 교회가 아니라 작은교회를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작은 교회'인지를 물어봐야 한다.

김두식 교수가 말하는 작은 교회라는 것은 세상을 따듯하게 비춰주는 교회를 의미한다. 예수가 처음 이 세상에 내려와 약한자와 악한자를 대신해 자신을 몸을 희생했던 것처럼 그도 우리 사회의 교회가 진정으로 나아지려면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하고 '공격'의 교회가 더불어 사는 교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교회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을 원론적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교회가 어느 정도로 타락했는지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밖에 알 수 없음에도 김두식 교수가 자기 살을 깨물으면서까지 교회의 치부를 들어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교회의 치부라고 함은 결국 국가와 결탁하여 종교적인 힘을 아무곳에나 휘둘렸음을 뜻하는데 김두식 교수는 현실의 언론들이 삼성에게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못하는 것도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가 병 들은 아니었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교회가 제대로된 종교로 자리를 다시 잡으려면 '공격'의 교회가 아니라 보살피는 교회로 다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싶어 안달하는 교회가 아니라 말 그대로 '교회'로 돌아와야 한다.
그것이 김두식 교수가 자신의 강연에서 가장 말하고자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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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조인이 아닌 자유인으로서 김두식 교수를 만나다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10-03-05 05:27 
    불멸의 신성가족을 통해 만나보았던 김두식 교수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전에 생겼었다. 바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라는 책 강연회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명동에 있는청아람에서 진행을 하였다. 처음에 청아람을 알지 못해 30분이나 길 거리에서 헤매다가 들어갔는데 김두식 교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편안한 인상이었다. 법조인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그를 만났다는 것은 결국 그 자리에서 강연을 한 김두식 교수는 종교인으로...
 
 
 
 전출처 : 간이역 > 1월 19일, 유영만 저자의 유쾌한 청춘경영법을 듣다

지난 1월 19일,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유영만 저자의 강연회가 있었다.

늘 강연회가 있는 날이면 바쁜 것이 의례이긴 하지만 이 날은 어쩐지 더 바쁜 날이었다. 유영만 저자의 강연회로 가기 전에 서점에서 그의 책을 다 읽고 가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내게 줌으로써 서점에 있다가 다시 신촌 아트레온 토즈에서 포인트 카드로 샌드위치를 먹고 강연회를 참석해야 했기 때문인데 재력이 없거나 기능이 없으면 고생한다고 요즘 내가 그격이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조금 늦은 시간에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느 강연회와는 달리 두 시간의 강연이 잡혀 있어 '유영만 저자가 굉장히 많은 말을 할 것이구나'라는 생각과 '그럼 잘됐다, 그가 잘못 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알려줘서 다음번 인쇄에는 고쳐서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 들어섰을 때 나는 족히 200명이 넘는 사람들 때문에 강연석과 아주 먼 층에서 앉아야 했다.

물론 쉬는 시간에 강연석과 가까운 곳으로 이동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내 예상 하나가 빗나갔고 두번째는 유영만 저자가 쭉 강연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두현 시인이 첫번째 시간을 강연하고 있었기에 두번째 예상도 빗나간 셈이었다. 고두현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를 떠나서 그가 왜 강연을 하게 되었는지가 처음에는 납득이 가지 않았었는데 고두현 저자의 강연을 듣다 보니 어쩐지 유영만 저자와 비슷한 게 아닌가 싶었다.

유년 시절의 불행과 또 열등감이 그에게 신춘을 등단하게 하였고 또 대학을 가게 했다는 것이 유영만 저자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그 열등감이 열등감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기회를 삼은 셈인데 보통은 그렇게 되기가 어렵기 때문에 고두현 시인과 유영만 저자의 강연을 들으면서 뭔가 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첫번째 강연, 고두현 시인의 강연은 그가 쓴 시로 마무리 되었는데 자연 그리고 어머니의 애틋함에 대한 소중함을 느껴야 하고 그럴때만이 자신의 삶도 경영할 수 있다고 고두현 시인은 말하려고 했던 것으로 본다.


두번째 강연인 유영만 저자의 강연은 고두현 시인의 강연보다 유쾌했다. 고두현 시인이 가진 이미지는 시인이기 때문에 뭔가 함축적인 반면 유영만 저자의 강연은 철학적이지만 교수이기 때문일까 전달방법이 농이 곁들어 있는 강연이었다. 그래서 유쾌하면서 허를 찌르는 강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유영만 저자의 강연에서는 특히하게도 한 여학생이 나와 자신의 학창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알파니스트라고 해서 한양대 여학생의 도전정신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녀의 도전 정신을 들었을 때 내가 학창시절에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던 것이 바로 저것이구나, 싶었다. 나는 학점은 높았는데 4.15로 4.0이 넘어서지만 기타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회가 많이 되는 편이다.

내가 청춘을 청춘답지 못하게 지낸 것 같다는 말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남과 비교하는 것은 좋지 못한 습관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래도 놓친것이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열심히 하기 위해 오늘도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사실 이 여학생의 10분여정도의 발표 이후 유영만 저자가 강연을 하였지만 결국 그가 말하고 싶어한 것은 그 여학생이 다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자신이 청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청춘을 청춘답게 보내라는 것-그것이 이 강연에서 하고 싶은 두 강연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나 생각하며 정리해 본다.


이 글은 알라딘에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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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월 19일, 유영만 저자의 유쾌한 청춘경영법을 듣다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10-01-23 16:59 
    지난 1월 19일,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유영만 저자의 강연회가 있었다. 늘 강연회가 있는 날이면 바쁜 것이 의례이긴 하지만 이 날은 어쩐지 더 바쁜 날이었다. 유영만 저자의 강연회로 가기 전에 서점에서 그의 책을 다 읽고 가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내게 줌으로써 서점에 있다가 다시 신촌 아트레온 토즈에서 포인트 카드로 샌드위치를 먹고 강연회를 참석해야 했기 때문인데 재력이 없거나 기능이 없으면 고생한다고 요즘 내가 그격이다. ...
 
 
 
 전출처 : 간이역 > 인문학 감수성으로 광고를 하는 박웅현 ECD를 만나고 오다

지난 9월 29일 박웅현 ECD를 만나러 갔었다. 누리꿈스퀘어에서 진행되었던 이번 강연회는 ‘인문학’과 광고가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강연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유비쿼터스 잡지의 취재 기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광고 속에서 실현되는 유비쿼터스’라는 주제로 그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싶었다.
 


저녁 7시 반까지였기에 10분간 늦었던 나는 약간 긴장한 상태로 강연장을 들어섰고 박웅현 ECD는 익숙한 광고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고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그의 설명과 함께 말이다.


 

그는 광고가 가장 천대받는 미디어라고 생각한다며 광고가 천대받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박웅현 ECD를 인터뷰했던 강창래 저자의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서 밝혔듯이 시청자들의 리모컨이 있는 한 그 현상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한다.

 

왜냐하면 광고의 주체는 시청자들인데 광고가 소위 말대로 ‘돈 벌이’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시청자들은 그 광고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웅현 ECD가 생각하는 광고론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만든 광고는 여느 광고와 다른 면이 있다. 다른 광고에서 느낄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는 언제나 ‘사람’이 들어 있었다. 그 이야기는 과장되지 않고 우리의 공감을 살만한 이야기 정도였다.

  

그것이 박웅현이 우리와 소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 소통의 방법은 ‘인문학’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원서로 된 것을 읽었던 그와 미술의 인문학을 배우기 위해 번역된 ‘서양미술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의 차이점을 찾으려면 나는 삶에서 인문학을 찾기에는 아직 그릇이 부족한 것 같다.

박웅현이 말하는 인문학이란 ‘넓은 범위’의 인문학이라고 말한다. 넓은 범위의 인문학, 그것은 삶이 곧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날 박웅현 ECD는 내 인터뷰 요청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으로 거절을 하였다. 하지만 그의 ‘넓은 범위’의 인문학은 확실히 새겨들을만하다.

  

그리고 2006년도 타임지에서 u 개념이 이제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했다는 정보도 얻을 수 있어 뜻 깊은 강연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박웅현과의 교감은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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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문학 감수성으로 광고를 하는 박웅현 ECD를 만나고 오다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09-10-07 00:13 
    지난 9월 29일 박웅현 ECD를 만나러 갔었다. 누리꿈스퀘어에서 진행되었던 이번 강연회는 ‘인문학’과 광고가 어떻게 연결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강연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유비쿼터스 잡지의 취재 기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광고 속에서 실현되는 유비쿼터스’라는 주제로 그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고 싶었다.   저녁 7시 반까지였기에 10분간 늦었던 나는 약간 긴장한 상태로 강연장을 들어섰고 박웅현 ECD는 익숙한 광고를 보여주고 있었...
 
 
 
 전출처 : 간이역 > 칭키즈칸을 넘어선 쿠빌라이칸을 해석한 김종래 저자를 만나다

앞서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태어난 리더를 작성한 포스트에 밝혔듯이 2009년 9월 10일 저녁 7시 30분에 신촌에 있는 토즈에서 김종래 저자의 강연회가 있었다. 물론 김종래 저자가 조선일보와 관련된 것 때문에 약간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부분은 선배들에게 배워야 하는 점이 있기에 강연회에 참석을 하였다. 그리고 그 참여 결과는 만족이었다.

 

일단 내가 모르던 쿠빌라이 칸에 대해 저자는 1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 압축을 하여 진행해 나갔고 ppt 형식이 아닌 농담과 현실정치를 약간 비꼬는 형식으로 진행하면서 강연장을 휘어 잡았다. 아마도 몽골인들의 삶을 주목하다 보니 그 연세에도 정정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김종래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칭기스칸의 리더십 혁명이 있으며 또한 유목민 이야기가 주요작으로 보인다.

강연이 시작하기 전에 책을 한번정도 읽고 들어갔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부분이 어떤 내용인지 짐작이 되는 점은 좋았다. 예습을 하고 간 학생처럼 두번 반복하여 공부가 되는 느낌은 언제나 강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보람이다. 여기선 책 리뷰에서 빠졌던 쿠빌라이 칸의 제국의 청사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쿠빌라이 칸이 세운 원(元)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추상어로 지어진 나라 이름이었다. 으뜸이자 근원이길 바라는 쿠빌라이 칸의 염원이었다. 그게 대원(大元)제국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을 더 박차게 했던 것은 바로 남송을 파괴하지 않고 빼앗은 덕분이었다. 남송의 장수였던 여문환을 투항하게 하여 남송을 오히려 치게 만들었던 이유는 그는 할아버지 칭키즈칸이 걸었던 '초원의 길'을 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즉 그 당시 몽골이 차지했던 대도(북경)에서 남송에 위치했던 천진까지의 길, 그 길을 그는 '물의 길'로 만들어 무역을 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실현을 몽골의 장수 유병춘의 소개로 인연을 맺은 곽수경에 의해 '관문식 독크'가 완성되면서 이뤄질 수 있었다. 그는 세계 무역센터를 꿈꿨다. 

그리고 그런 세계무역센터에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위해 그는 모든 시설을 갖춘 메트로 폴리스를 설립하려고 했으며 그러한 국가적인 모습이 경제유통구조의 변화를 이끌어 기축통화가 생겨났다. 세계에서 기축통화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패권국가이다. 쿠빌라이가 통치한 원나라는 그 당시 그 정도까지 번성했다.

그러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대원제국은 몽골인과 중국인 그리고 색몽인(눈 색깔이 갈색이 아닌 외국인)들이 공존하면서 살았고 그래서 언어를 통일하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그런 몽골의 언어가 남아있지 않지만 말이다. 

저자는 쿠빌라이 칸이 이러한 대단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가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꿀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시대가 어떻게 변해갈지를 간파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성공할 수 없음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갈지는 모르지만 시대가 바뀌면 빠르게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어야 함을 내비쳤다.

강연장이 인상깊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점을 저자의 입을 통해 새삼 느낄 수 있어서였다. 늘 느끼지만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것을 꺼려한다. 하지만 성공하려면 우리는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한다. 저자의 책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미국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한국의 지식인들 그 누구도 한국에 까지 그 영향이 올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들이 없었다는 것은 한국은 아직도 정착된 농경인의 마음, 즉 폐쇄형으로 생각하며 사는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안정만 추구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한국의 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시간이 없다. 유목민의 사고를 갖고 내 삶을 개척하는 것은 어떨까. 김종래 저자의 만남을 끝나며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정리한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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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칭키즈칸을 넘어선 쿠빌라이칸을 해석한 김종래 저자를 만나다
    from # 간이역, 꿈꾸는 식물 2009-09-11 18:00 
    앞서 결단의 리더 쿠빌라이 칸-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태어난 리더를 작성한 포스트에 밝혔듯이 2009년 9월 10일 저녁 7시 30분에 신촌에 있는 토즈에서 김종래 저자의 강연회가 있었다. 물론 김종래 저자가 조선일보와 관련된 것 때문에 약간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모르는 부분은 선배들에게 배워야 하는 점이 있기에 강연회에 참석을 하였다. 그리고 그 참여 결과는 만족이었다. 일단 내가 모르던 쿠빌라이 칸에 대해 저자는 1시간 조금 넘은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