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요즘 생각이란 걸 하고 있다. ‘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니 일단 멈춰서 이건 뭘까?’라는 생각 또는 멍 때리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물음들이 결국에는 잘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생겨난 것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보았다.

그렇게 불혹의 욕구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나는 철학이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삶에서 불가능과 무능력, 궁핍과 빈곤을 양산하고 규정하는 모든 조건에 맞서 분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철학은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다르게 사는 것이다.”

철학이 일상의 삶과 무관하게 저 하늘의 별만을 보는 것이라면 가난한 사람들이 지적하듯 철학은 한가한 일이나 쓸모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떠받드는 현실 감각 역시 그들 자신을 빈민으로 양산하는 현실에 대한 추인追認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노예의 자기 위안에 불과할 것이다.”

현장 인문학자로 불리는 저자 고병권이 말하는 철학에 대한 정의와 이유다.

이 책은 철학 자체를 다루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저자의 체험에서 나온 글들의 무게가 상당히 무겁기 때문이다.

<굴복보다는 커피를 택한 이들>의 멕시코 원주민이야기나, <어느 게이 활동가의 정치적 장례식> 등 각각의 에피소드가 주는 울림 또한 크다.

<어느 게이 활동가의 정치적 장례식>에서 저자는 장애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장애disability, 어떤 본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이든, 취업이든, 사랑이든,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어떤 불가능disability의 체험이며, 그때 자신에게 생겨나는 무능포기의 정서이다. 어떤 불가능성의 체험, 그리고 그와 함께 일어나는 자기 무능과 자기 포기의 정서를 겪을 때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 된다. 그리고 불가능의 체험과 포기의 정서가 커질수록 그는 중증장애인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엮어 철학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얘기한다. 더불어 관련된 철학자나, 역사학자, 소설가 등 다양한 인물들이 남긴 말과 글을 통한 삶의 지혜를 독자와 공유한다.

책은 독자 스스로 일깨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저자의 생각과 경험을 얘기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가르치려하지 않는다.

다만, 독자에게 문을 열어줄 뿐인 것이다.

결국 열린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빼꼼히 문을 열고 한발짝 디딛었을 뿐이지만, 왠지 재밌을 것 같다.

철학은 지옥에서 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지금 이 세상은 철학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결국, 야만인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