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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니드 라운드 1 - S Novel
아사우라 지음, 박시우 옮김, 아카이 테라 그림 / ㈜소미미디어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일단, 표지와 줄거리 소개에서 느껴지는 것과 달리,
이건 유쾌하고 밝은 액션물이 아니다.
잔혹하고 하드보일드한 액션물이다...
줄거리는 책 소개에 나온 대로,
엄청난 빚더미에 내려앉은 탓에 이를 갚기 위해
용병에 들어가게 된 주인공 '유리',
헌데 용병에 들어간 이후 정식으로 시작된 임무가...
"햄버거 가게의 마스코트 광대를 죽여라"
...라는 다소 황당한 전개...
심지어 이 일을 의뢰한 사람이 경쟁 햄버거 가게 사장이다보니
이쯤 되면 개그로 짠 설정이 아닌가 싶어진다.
하물며 표지만 보면 햄버거 위에 앉은 미소녀가 손가락 총을 만들어놓고 미소짓고 있으니,
정말 가볍고 황당하면서 개그가 판치는 액션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일단 총에 대한 설명은 무척이나 디테일하다.
총기의 외관을 보고 그것이 뭔지 구분하는 것은 기본이요,
다양한 총의 종류, 특징, 총알의 구경과 그 차이에 대한 설명도 디테일,
탄창 면적을 보고 몇 구경인가 하고 유추하는 주인공 서술까지 나오고
총을 쐈다고 서술할 때는 '권총'이란 단어 대신 '거버먼트'라며 총기 종류로 지칭한다.
즉, 웃기려고가 아니고 정말 작정하고 쓴 글이라는 것.
그래서 밀리터리 쪽으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총의 이미지를 바로 떠올릴 수 있고
서술이나 상황파악도 간단하겠지만, 문외한에겐 힘들 수 있다.
... 그리고, 애석하게도 난 문외한 쪽이다...ㅋㅋㅋㅋㅋ
하지만 총의 구조나 발사 원리는 얼추 알고 있고,
스토리상으론 무슨 총을 썼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맞았는지 죽었는지가 중요하다보니 총기 종류는 이미 뒷전이다.
즉, 총기 모델명을 언급하는 게 몰입을 방해할진 몰라도 내용파악을 방해하진 않는다.
다음은 잔혹함.
황당한 미션, 황당한 배경 설정, 그럼에도 디테일한 총기 묘사를 가진 이 소설은,
여기에 더불어 묘사도 잔혹하다.
적들은 좀비마냥 총을 아무리 쏴대도 계속 덤비는지라
피와 신체부위가 사방으로 튀고,
그런 적을 상대하는 공포심과 사람을 죽였다는 현실 앞에서 절망,
실금이나 구역질을 해대는 여주인공의 모습을 보면 매우 현실적이다.
(내가 쓴 글이지만 방금 쓴 '매우 현실적이다'란 말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긴 하다...
좀비 같은 악당들, 패스트푸드 마스코트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설정에서
'현실적'이라니...ㅋㅋㅋㅋ)
그래서 광대 녀석이 감자튀김을 총알처럼 던져서 몸에 박고,
치즈버거를 쭉 늘려서 철퇴처럼 쓰는데도
상황이 심각해서 우습기는 커녕 무섭더라...ㅋㅋㅋㅋㅋ
그래서 이 책을 '표지랑 설정에 비해 잔혹함만 난무하는 작품'단언하겠냐면,
그것도 아니다...
애당초 총을 쥔 미소녀란 설정부터가 딱 모에를 노린 설정이고,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 인간병기로 길러졌다거나 하는 설정이 아니라
돈 필요해서 용병으로 갔다는 거...)
전반부에는 은근 모에한 시츄에이션이 한 두 군데 나오는데다
일러스트의 과반수가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장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한 중간 중간에 자꾸만 음식 묘사가 나오는데
음식의 외관, 향기, 그리고 이것을 먹을 때의 식감과 맛, 풍미에 대한 묘사가
무척 깊고 디테일해서, 얘네가 사람 쏴죽이는 녀석들이 맞나,
이 책 이런 분위기였나 싶을 정도로 강렬한 먹방을 자랑한다...
묘사 또한 훌륭해서 건물 묘사, 풍경 묘사, 인물 묘사, 심리 묘사, 전투 묘사, 음식 묘사 등등
모두 기대 이상으로 디테일했다.
라이트노벨 보면서 이런 디테일은 본 적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ㅋ
(이건 내가 아직 라노벨을 많이 안 본 탓도 있지만)
또한 최종전을 벌일 때, 주인공 시점만 나오지 않고
멀리서 지원사격을 하던 스나이퍼 시점으로 서술,
해당 스나이퍼가 느낀 심리하며 주인공들과 무전하며 도와주는 모습,
사령부에서 이미 후퇴하란 명령을 내렸으나 독단으로 적을 공격하는 모습 등이
'이 캐릭터가 살아있다', '주인공 외 인물을 그저 병풍으로만 쓰지 않는다'
라는 걸 느끼게 해줘서 아주 좋았다.
총의 종류, 특징, 총알 구경 등 하나 하나 자세히 따지는 디테일은
밀리터리 쪽에 지식이 얕은 나에겐 너무 버거웠지만,
그 덕분에 작품의 리얼리티가 살고,
중간에
'적은 어떻게 맨손으로 총알을 붙잡을 수 있었는가?'
'어떻게 순식간에 우리 뒤로 움직일 수 있었는가?'
하면서, 배틀물에서 무척 흔히 나오는 장면을 과학적으로 비꼬는 장면은
초현실적인 이 작품 배경 설정에서 또 다시 리얼함을 더해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의 학교생활 묘사.
학교가 배경으로 나오는 장면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학교가 배경으로 잠깐 이야기가 진행된 게
아예 한 챕터 말곤 없었나...;;
용병으로 일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학교도 다니고 있는데
이건 비중이 너무 적지 않나 싶은 느낌.
정리하자면,
감자튀김을 총알처럼 쏘고 치즈버거를 철퇴처럼 휘두르는 광대와
좀비처럼 아무리 쏴도 쓰러지지 않는 패스트푸드 점원들과 맞서는 내용이지만
그 안에는 슬픔이 있고, 절망이 있고, 죽음이 있는,
잔혹하고 하드보일드한 작품.
(내가 썼지만 농담처럼 들린다... 개그 만화 작중에 상영하는 공포영화 줄거리도 아니곸ㅋㅋㅋ)
하지만 그런 것치고 배경 설정이 황당해서 실소가 터져버리고
중간 중간의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이나 음식 먹으면서 행복에 겨워하는 묘사를 보면
밝은 라노벨과 하드보일드 소설의 혼종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극렬히 대비되는 둘의 조합이 어색하고 황당할지 모르지만
막상 읽어보면 몰입하게 돼서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 ㅋ
또한 '세상은 원래부터 잔혹한데, 사람들은 환상과 꿈이 가득하다고 믿는다'
'죽음과 절망 앞에서 온 힘을 다해 도망치는 것이 희망이다'
와 같이, 주제/메시지도 작품 전반에 걸쳐 전해지고
그것이 마지막에도 강하게 와닿는 덕분에 여러모로 느낀 점도 있는 책.
난 이런 하드보일드한 책은 읽어본 적도 없거니와
총을 쏠 때마다 모델명을 적어놓는 책도 본 적이 없어서 난처했지만
그래도 아주 재밌게 읽었다.
P.S. 초판 기준으로 160쪽에 '킬로미터'를 '킬로그램'이라고 오타낸 게 있다.
그래서 '300킬로그램으로 달리는 신칸센'이라는 뭔가 귀여운 오타를 볼 수 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