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처럼 쏟아지는 빗속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비를 머금은 숲은 더욱 짙은 초록으로 물들고, 담쟁이 잎을 우산 삼은 도롱이와 별똥이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여름의 공기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비 올 때 입던 도롱이를 떠올리게 하는 도롱이, 여름밤을 스치는 별똥별 같은 별똥이. 이름마저 계절을 품고 있다는 점이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작가는 여름이라는 계절의 낭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계곡에서 만난 눈뭉치도깨비 조랭이는 조랭이떡을 닮은 귀여운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조랭이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과수원길」이 떠오릅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낯선 동요일 수도 있지만, 그 노래를 알고 있다면 아카시아 향기와 여름 바람까지 함께 떠올라 그림책의 풍경이 더욱 생생해집니다.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만년설 과수원으로 떠나기 전 조랭이에게 선물을 건네는 모습이었습니다. 도롱이는 짚옷을, 별똥이는 꽃다발을 선물합니다. 값비싼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더욱 따뜻했습니다. 새하얀 만년설 과수원에서 여름 꽃다발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였던 것도 그래서였던 것 같습니다.이 책은 여름과 겨울을 계속 대비시키며 계절이 가진 매력을 극대화합니다. 초반의 짙은 초록과 촉촉한 공기, 만년설 과수원의 새하얀 풍경, 알록달록한 얼음 과일과 꽃들까지. 그림만 바라보고 있어도 온도와 촉감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수박 위에 올려진 과일빙수는 보기만 해도 입안이 얼얼할 만큼 시원해 보여 책을 덮고 나니 당장 빙수를 먹으러 가고 싶어졌습니다.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도롱이와 별똥이의 자전거 장면입니다. 서로 자기 생각이 맞다고 다투는 '열기' 때문에 조랭이가 녹을 뻔했다는 설정은 아이들의 감정을 재치 있게 보여 줍니다. 결국 한 사람은 핸들을, 다른 한 사람은 페달을 맡으며 함께 앞으로 나아갑니다. 협력이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역할을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럽게 전해 주는 장면이었습니다.돌아오는 길에는 망가진 자전거가 외발자전거 두 대로 다시 태어납니다. 함께 힘을 모아야 움직였던 아이들이 이제는 각자의 균형을 잡고 나아가는 모습은 짧지만 인상적인 성장의 장면으로 읽혔습니다.<하얀 여름을 데려왔어>는 계절을 바꾸는 판타지보다 서로의 계절을 나누는 마음에 더 오래 머물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여름과 겨울의 대비를 통해 색과 온도, 향기까지 오감으로 느끼게 하고, 나눔과 협력의 의미도 부담스럽지 않게 전합니다. 무더운 여름날 읽으면 책 속에서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만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