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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 다 가지면 행복해? ㅣ 국민서관 그림동화 305
프랜시스 스티클리 지음, 스테파노 마르티누즈 그림, 서남희 옮김 / 국민서관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어떤 그림책은 아이보다 어른이 먼저 멈추게 만든다. 《고블린, 다 가지면 행복해?》가 그런 책이다.
황량한 늪지대에 혼자 사는 고블린은 욕심쟁이다. 망가진 시계, 녹슨 프로펠러, 부서진 우산…. 쓸모 있든 없든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긁어모은다. 그러나 물건이 쌓일수록 마음은 더 비어간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기쁨이란 원래 혼자 껴안고 있으면 줄어드는 것이고, 나눌수록 불어나는 것이니까. 고블린에게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욕심에 취한 고블린을 바라보는 주변 친구들의 눈빛은 부러움이 아니라 안쓰러움이다. 고블린은 몰랐다. 더 많이 가지려 할수록 더 깊이 고립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내면의 황폐함은 고스란히 얼굴에 새겨진다. 심술궂고 못돼 보이는 표정. 마음이 얼굴에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그림책을 나는 본 적이 없다.
텅 빈 마음에 처음으로 불씨를 놓아준 건 반딧불이였다. 황홀하게 반짝이는 빛 앞에서 고블린은 처음으로 진심 어린 기쁨을 느낀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따뜻해지는 감각. 그러나 그 순간에도 고블린의 손은 어김없이 뻗는다. 병에 가두어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억지로 갇힌 반딧불이는 이내 빛을 잃는다. 이 장면이 이 책에서 가장 아프고 날카로운 지점이다. 소유는 때로 대상의 본질을 파괴한다. 너무 꽉 쥐려는 순간 오히려 잃게 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경험하지 않았던가. 고블린의 탐욕이 단순한 욕심을 넘어 타인의 자유와 빛을 빼앗는 행위가 되는 순간, 이 이야기는 아이들의 그림책이기를 잠시 멈추고 어른의 이야기가 된다.
다행히 친구들이 나타나 조용히 말해준다. 빛은 가두면 빛나지 않는다고. 고블린은 처음으로 손을 펼쳐 무언가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놓아주자마자 다시 빛을 되찾은 반딧불이를 보며 깨닫는다. 덜어내고 나눌수록 마음은 채워진다는 것을. 어쩌면 고블린이 그토록 오래 찾아 헤맸던 것은 물건이 아니라 바로 이 감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깨달음 이후 고블린은 자신이 모아온 잡동사니들로 박물관을 만들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연다. 혼자 쥐고 있을 때는 아무 의미도 없던 것들이, 함께 나누자 비로소 이야기가 되고 가치가 된다. 같은 것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 생기는 순간, 세계는 달라진다.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에서 고블린의 얼굴을 나란히 떠올려보면 마치 다른 존재를 보는 것 같다. 표정도, 눈빛도, 옷매무새까지. 내면의 변화가 외면으로 번진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손에 쥔 것을 단 한 번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됐다.
욕심 자체를 나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원하는 마음, 더 갖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그 욕구를 들여다보는 일은 오히려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고블린의 진짜 문제는 욕심이 아니었다.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존재의 빛을 꺼버렸다는 것, 그리고 갖고 싶은 마음을 오직 소유로만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같은 것을 좋아하는 누군가와 공감대를 나누고, 함께 그 아름다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채워질 수 있는데.
덜어낼수록 커지는 것이 있다. 이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하고 있지만, 읽다 보면 어른이 더 뜨끔하다. 우리는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을 병 속에 가둔 채 살아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