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베프 가족입니다 ㅣ 파란 이야기 26
김혜정 지음, 오삼이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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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따뜻한 가족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면, 『우리는 베프 가족입니다』는 그 예상을 기분 좋게 배신한다. 이 책은 단순히 “새로운 가족 형태를 다룬 소설”이 아니다. 읽는 내내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 왔던 가족의 기준을 뒤흔들고,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선민과 하나, 그리고 그들의 딸 윤하와 아리가 있다. 죽마고우였던 두 엄마와 제법 잘 지냈던 두 딸. 하지만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다 아리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하나와 아리는 한국으로 돌아와 선민과 윤하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말 그대로 ‘한집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 윤하는 불편하다. 내 공간이 사라진 것 같고, 내 집이 더 이상 내 집 같지 않다. 하지만 함께 캠핑을 다녀온 후 그 어색함은 서서히 사라진다. 그리고 어느새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존재가 된다. 친구 관계가 틀어져 혼자 도서관으로 숨어들던 윤하 곁에는 늘 아리가 있었고, 엄마의 암 진단으로 흔들리는 아리를 붙잡아 준 사람 역시 윤하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서로의 삶을 지켜 주는 관계. 이쯤 되면 묻게 된다. 가족은 정말 혈연으로만 정의될 수 있을까?

이 책이 강력한 이유는 그 질문을 억지로 던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만든다. 이혼 가정, 사별 가정, 미혼모 가정, 동성 결혼, 이복동생의 탄생까지. 정말 다양한 가족의 모습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어느 하나를 특별하거나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그리고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놀라웠다. 가족의 다양성은 이제 흔히 말해지는 주제지만, 그것을 이렇게 설교 없이,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김혜정 작가의 필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 이유다.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북토크에서의 한 문장이었다.
“당연히 결혼했죠. 제가 아까 열 살 아이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 말에 윤하는 불편함을 느끼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그리고 묻는다. 도대체 뭐가 당연한가?
정말 그렇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어떤 삶의 방식을 기준으로 삼는 순간, 다른 삶은 쉽게 틀린 것으로 분류된다. 이 책은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 낸다.

또 하나 좋았던 건 ‘이모’의 존재였다. 부모보다 한 걸음 떨어져 있지만, 그래서 더 다정할 수 있는 어른. 윤하가 힘들어하던 날, 하나 이모가 건넨 말은 딱 한마디였다.

“인생이 쓸 땐 단 걸 먹으면 돼.”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읽는 나까지도 마음이 풀렸다. 아이에게는 부모 말고도 믿고 기댈 수 있는 어른 한 명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우리는 베프 가족입니다』는 말한다.
가족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마음을 기대고, 서로의 결핍을 채워 주며, 힘든 순간 곁을 지켜 주는 사람이라면 그 자체로 가족이라고.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된다.
내 삶에서 그런 사람은 누구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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