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복 슈퍼 전담 샘터어린이문고 77
박남희 지음, 최정인 그림 / 샘터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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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를 모으며 생계를 이어가는 할머니를 돕고 싶은 마음 하나로, 장우는 오복이가 내민 터무니없는 ‘인턴 계약서’에 사인을 합니다. 할머니에게 좋은 박스를 챙겨드릴 수 있다는 말에 장우는 억울함도, 자존심도 삼켜내지만, 그 시간들은 처음부터 예상했던 것처럼 괴롭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매번 황당한 심부름을 시키고 잘난 척을 일삼던 오복이의 행동 뒤에는, 사실 누군가와 진짜 친구가 되고 싶다는 간절하고도 서툰 마음이 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우는 그 마음을 천천히 알아갑니다. 억지로 시작된 관계였지만, 함께 놀고, 함께 실수하고, 서로 미워했다가도 다시 웃게 되는 과정을 거치며 두 아이는 처음엔 상상도 못 했던 자리에 도달합니다. 겉으로는 티 나지 않는 깊은 외로움과 사랑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기까지의 어색한 단계들을 정직하게 보여주며,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두 아이에게 ‘우정’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두 아이의 변화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조금씩 마음을 건네고, 조금씩 알아주는 과정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관계를 만드는 데 큰 용기나 특별한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장우와 오복이는 말합니다. “진짜 관계는 서툰 마음이라도 내어놓는 작은 순간들에서 시작된다”고.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과 잣대가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시대 속에서, 이 책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다시 일깨웁니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일은 가진 것의 크기로 정해지는 게 아니라 마음의 방향으로 결정된다는 것. 환경이 어떻든, 배경이 어떻든, 서로에게 나눠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관계는 충분히 자라날 수 있다는 것.

이야기를 덮고 나면, 장우와 오복이의 우정은 단순히 아이들의 성장담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거울이 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어떤 마음을 건네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서툰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서툴지만 진심 어린 마음들이 부딪히고 이어지는 이 책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진짜 우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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