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제인의 모험
호프 자런 지음, 허진 옮김 / 김영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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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쓰는 주관적 서평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공통점이 무엇일까?

바로 걸작이라고 칭송받는 고전이지만 동시에 여성혐오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실 고전이 아니더라도 문학 작품 속 여성혐오는 시대를 막론하고 유구히 이어져 왔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들에게 글을 써야 한다고 격려한다. 그러면서 셰익스피어의 여동생 주디스가 있었다고 가정해보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16세기에 태어나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족적을 남긴 셰익스피어의 여동생이라면 분명 그 역시도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을 테지만, 당시 여성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스무 살도 되기 전에 결혼해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정석적인 루트였다.

울프는 16세기에 여성이 위대한 재능을 타고났다면, 미쳐버리거나, 자살하거나, 마을 밖 외딴 오두막에서 마녀나 마술사 취급을 받으며 두렵고도 조롱받는 존재로 생을 마감했으리라 상상한다.

그러나 그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익명으로 죽은 수많은 재능 있는 여성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또다른 재능 있는 여성들, 우리들 속에 여전히 살아 있으며 단지 육체를 갖게 될 기회를 필요로 할 뿐이라고 한다.



이제는 정말 울프가 말했던, 주디스 셰익스피어의 시대가 마침내 도래한 것 같기도 하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짤막하게 나오는 납작한 캐릭터인 ‘메리 제인’을 주인공으로 재탄생시킨 호프 자런의 《메리 제인의 모험》을 읽을 때 계속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메리 제인의 모험》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메리 제인도 사실 허클베리 핀처럼 용감하고 도전적인 모험가였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허클베리같이 대담한 소년이 메리 제인처럼 순종적인 여자애에게 푹 빠진다는 설정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호프 자런은 이 이야기를 직접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호프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 메리 제인은 용감하고, 호기심이 많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자신이 특별히 ‘별난 여자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메리 제인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며 교역소 남자처럼 나쁜 사람도, 걸리니언 호의 선장님처럼 좋은 사람도 만난다.

주인공이 여정을 떠나는 내용의 작품이 으레 그렇듯 메리 제인에게도 시련이 여러 번 닥치지만, 선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기지를 발휘해 고난을 극복하며 성장해 나간다.



마크 트웨인이 1884년 발표한 ‘366쪽짜리 책에서 겨우 28쪽을 차지했던’ 메리 제인은 2024년 호프 자런이라는 훌륭한 작가를 만나 육체를 갖고 드디어 미시시피 강을 힘껏 내달릴 수 있었다.


호프 자런은 단순히 메리 제인의 이야기를 다시 쓰기만 한 것이 아니라, 140년 동안 침묵 속에 갇혀 있던 목소리에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메리 제인은 이제야 비로소 자기 이름으로 된 진짜 모험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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