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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지음, 이동윤 옮김 / 푸른숲 / 2025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앨러스테어 레이놀즈의 《대전환》은 위상수학의 ‘구면 뒤집기(Sphere Eversion)’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SF 소설이다. ‘구면 뒤집기’란, 짧게 말하자면 수학적 그래프로 이루어진 3차원 구체는 그래프 위의 선들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교차하면 안쪽 면과 바깥쪽 면을 매끄럽게 뒤집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표면을 찢거나 구멍을 내지 않고 어떻게 안팎을 뒤집을 수 있을까? 하지만 물리적 현실의 표면이라는 개념과 수학적인 그래프의 표면이라는 개념은 다르다. 현실에서 생각하는 ‘표면’은 부피가 있다. 종이를 예로 들자면 종이는 아무리 얇아도 부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학적 그래프로 구현된 표면은 그저 점과 점 사이를 이어주는 선의 집합일 뿐, 부피는 없다. 그러니까 이 선들의 좌푯값을 서로 교차하여 뒤집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들이 사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를 우리는 실생활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앞서 위상수학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관련된 예를 들어보자면, 인간은 위상수학적으로 사실 도넛과 같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이 명제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안’이라고 생각했던 내장의 안쪽은 결국 피부와 같은 바깥쪽이 된다. 그래서 소화샘은 내분비샘이 아닌 ‘외분비샘’이다. 보색대비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빨간색은 청록색과 보색이고, 노란색은 남색과 보색이다. 하지만 이러한 ‘색깔’은 서로 다른 파장을 가진 빛의 띠, 즉 연속된 스펙트럼 중 일부분일 뿐, 궁극적으로는 서로 이어져 있다.
《대전환》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사일러스 코드 의사는 데메테르 호를 타고 ‘균열 너머의 구조물’을 탐사하기 위해 검푸른 얼음 바다를 유영한다. 그러나 그 균열에 다가가는 순간 데메테르 호는 파멸에 이르고, 코드는 죽는다. 다음 순간, 악몽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이 같은 승무원들과 함께 이전보다 기술적으로 발전한 데메테르 호에 탑승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다. 또다시 균열로 향하는 데메테르 호는 코드의 죽음과 함께 반복적으로 파멸한다. 코드가 죽을 때마다 마지막 순간에 목격하는 이미지는 데메테르 호에 탑승한 노란 옷을 입은 에이다 코실이라는 인물이다. 코실은 마치 코드가 죽고 나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반복되는 사일러스 코드의 죽음과 그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무슨 상황인지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 에이다 코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균열 너머의 구조물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이야기가 진행되며, 사일러스 코드는 말 그대로 코드, 즉 ‘데메테르’라는 우주선에 내장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라는 것이 밝혀진다. 에이다 코실은 사일러스 코드의 확장 기능인데, 말하자면 사일러스 코드가 비상 상황에서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어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주선 데메테르 호가 처한 진짜 위기는, 목성의 위성 유로파의 얼음 바다의 균열 속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치 안과 밖이 뒤집히려다가 도중에 멈춰버린 것 같은 ‘외계 구조물’에 갇혀 죽어가는 인간 승무원들을 구하는 것이다.
《대전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두드러지는 시각적 이미지가 있다. 사일러스 코드가 탑승한 데메테르 호가 무한히 헤매고 있는 바다의 검푸른 색과 에이다 코실의 노란색의 색채 대비이다. 사일러스와 에이다의 실체를 생각해 보면 이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비상시 작동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제어 기능이 노란색 경고창을 띄운 채, 치명적 오류인 커널 패닉 상태*에 빠져버린 운영 체제를 어떻게든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까지 재부팅하는 프로세스를 떠올리게 한다. 몇 번인지도 알 수 없는 코실의 노력으로 결국 코드는 위기에 빠진 승무원들을 구하고 지구로 되돌려 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사일러스 코드와 에이다 코실은 함께 귀환하지 못하고 유로파의 얼음 바다에 영원히 남겨진다.
결국 위기를 극복해 내고 인간을 구한 사일러스 코드와 에이다 코실은 영웅인가? 그들이 해낸 일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프로그램에 입력된 절차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영웅이라고 할 수 없는가?
‘인간다운’ 일은 과연 무엇일까? 대의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인가? 인공지능이 이러한 일을 했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일일까? 어떤 사람은 자유의지의 여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유의지’라는 것이 만약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습득한, 일부 개체에 심어진 프로그래밍의 일종이라면 인간과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을 어떻게 가를 수 있을까? 《대전환》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프로그래밍 된 인공지능이라는 개념도 구면 뒤집기처럼 서로 뒤바뀌며 연결된다.
《대전환》은 사일러스 코드와 에이다 코실이 임무를 다 한 마지막 순간, 황금빛 수면 속 시뮬레이션으로 빠져드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18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시뮬레이션 속 사일러스 코드는 바다 위 범선의 보조 의사 생활을 그만두고 육지에 정착하려 플리머스라는 시골 마을로 이주해 온 의사이고, 에이다 코실은 먼 친척으로부터 유산을 물려받게 된 집주인으로 존재한다. 이 평화롭고 따뜻해 보이는 ‘시뮬레이션’은 머신러닝 시스템이 임무를 완수한 후 자신에게 내리는 보상의 결과 도출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인간적’인 의식이 임종 직전 느끼는 환상에 가깝기도 하다. 앨러스테어 레이놀즈는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공지능의 시뮬레이션을 현실과 유사한 방식으로 묘사하며 ‘대전환’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철학적으로 확장한다.
‘인간다운’ 행위의 가치를 그것이 인간이 가졌다고 믿는 자유의지에서 나왔는지, 정교하게 짜인 프로그래밍에서 나왔는지에 따라 가르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사람과 인공지능이 유례없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 시대에, 앨러스테어 레이놀즈는 《대전환》에서 ‘휴머니즘’이라는 가치가 과연 얼마큼 더 확장되고 또 뒤바뀔 수 있냐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