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나침반 역사 속의 위인들 - 외교관의 눈으로 보고 역사학도의 발로 쓴 역사, 리더십 지침서
이강국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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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저자는 최치원 선생, 서희 장군, 김윤후 장군,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정약용 선생, 김구 주석, 이승만 박사를 다룬다. 이중에서 승장 김윤후는 잘 몰랐던 인물이고,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김구 선생은 아마 한국 사람들이 제일 존경하는 인물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 선생을 존경한다.


 이승만 박사가 여기에 포함된 것은 다소 의외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저자는 공과 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이 책에 그를 포함시켰다고 한다. 시작은 괜찮았지만 끝이 좋지 않은 인물이다. 또한 그에 앞서 김구 선생을 소개함으로써 현대사의 인물에 대해서 공정성을 보이려고 했다. 

 

 “장기 독재를 꾀하면서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은 씻지 못할 커다란 과오로서 비난받아 마땅하고 재발되지 않도록 계속 교훈과 경계로 삼아야 한다.” - p537


 저자는 외교관 출신이다. 주로 중국에 오랫동안 머물렀기 때문에 기존에《상하이 자유무역시험구》,《서안 실크로드 역사문화 기행》등 중국 관련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대한민국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을 소개해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선택했다.


 고운 최치원 선생(857년 ~ ?)은 그야말로 똑똑한 인재다. 당시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당나라의 장안으로 유학 후 벼슬자리까지 했다. 그가 지은〈토황소격문〉(881년)은 지금도 명문장으로 남아있다. 반란군 황소가 이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신라의 국운을 위해서〈시무십여조〉의 개혁안도 올렸다. 아쉽게도 이 개혁안의 내용은 전해지지 않지만 당시 신라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로 알게 된 것은 그의 어린 시절이다. 그는 고작 12살의 나이에 유학길에 올랐고, 온갖 험한 여정을 겪은 후 장안에 도착했다. 6년 동안 불철주야로 공부한 끝에 진사시 ‘빈공과’(외국 유학생을 위한 시험)에 장원급제했다. 이후 이부에서 치른 신언서판 시험(풍채와 용모, 말솜씨, 글씨, 판단력) 시험에도 합격했다. 876년 그는 20세의 나이에 현위가 되었다. 현위는 종9품의 관직이다. 이어서 고변이라는 절도사 밑에서 종6품 ‘도통순관’(군령을 작성하는 업무)에까지 지위가 상승했다. 

 

 그는 17년 만에 신라로 돌아와서 6두품으로 최고인 ‘아찬’의 관직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신라 말기, 왕권의 약화와 귀족의 세력 강화로 뜻을 펼치지 못하고 42세의 나이에 세상을 등지고 은거했다. 그가 만약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났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훨씬 더 풍성해졌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유학자와 문인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쌍계사의 〈진감선사 대공탑비〉로 그의 비문이 남아있다. 즉, 그는 유교뿐만 아니라 불교, 도교에 대한 풍류를 모두 제시했다. 


 서희 장군(942년 ~ 998년)에 대해서도 이번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업적을 되새기게 되었다.

 거란은 송을 공격하기 전에 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고려에 대한 대공세에 나섰다. 그들은 80만 명의 대군을 데려왔다고 주장했다. 이는 나중에 과장된 것이라고 판명되었다. 

 어쨌든 이에 겁먹은 대신들은 항복하거나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요청하는 할지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서희는 반대했다. 처음부터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만큼 상대방의 요구 수준도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 항전 후 협상책’을 제시했다. 당시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있던 서희 장군은 거란족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냉정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서희는 외교관으로 담판을 짓기 위해서 적의 장수 소손녕과 독대했다. 소손녕 장군은 신라를 계승한 고려가 오히려 거란의 땅을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는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나라가 바로 고구려의 옛 땅이기 때문에 국호를 고려라 하고 서경에 도읍하였다. 만일 국경 문제를 논한다면 요 동경도 모조리 우리 땅에 있는데, 어찌 우리가 침범해 왔다고 말하는가?”


 서희 장군은 홀로 적진에 가서 담대하고 용기있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협상을 했다. 쌍방이 모두 윈윈할 수 있도록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도출했다. 고려는 요 나라와 국교를 맺고 이들의 국호를 사용하기로 했지만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 또한 압록강 이남에 여진족들을 몰아내는데 명분을 얻고, 고구려의 후손임을 인정받았다. 덕분에 압록강 이남의 강동 6주를 차지한 고려는 이후 거란과의 2차, 3차 전쟁 때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여 격퇴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2009년 외교통상부에서 그를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1호’로 선정했을까?


 이어서 고려를 침략한 몽골과의 항쟁도 40여 년간 지속되었다. 결국은 6차 항쟁 후 몽골에 패배했으나, 우리 선조들은 끈질기게 몽골을 괴롭혔다. 그리고 전투 중에서 승장 김윤후가 이끈 처인성의 승리와 몽골군 총사령관 살리타이의 사살(1232년)은 적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다. 그것도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나운 몽골군을 말이다. 


 “고려와 몽골 간의 6차에 걸친 전쟁 중에 몽골군 총사령관이 사살되면서 패퇴하여 철수한 것은 2차 전쟁이 유일하다.” - p115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의 업적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복습했다. 특히 해전사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 헐버트는 한산대첩을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서희 장군, 김윤후 장군, 이순신 장군은 나라가 전쟁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쳐서 헌신했다. 최치원 선생은 망해가는 나라를 염려하여 최선을 다했으나 결국 은거했고,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정치적 모함으로 귀양을 갔으나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김구 선생은 분열된 나라를 위해서 온몸을 바쳐 희생했다. 유일하게 왕 중에서 이름을 올린 세종대왕은 백성들의 안녕을 위해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이승만 박사는 뛰어난 업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6.25 전쟁 발발 시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고, 먼저 도망간 것에 대해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조선시대 선조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나침반 역할을 한 인물들을 잘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내용이 알차고, 이해하기 쉽게 잘 쓰여 있다. 


 - 한 줄 요약 : 우리나라의 주요 위인들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 생각과 실행 : 자신을 희생하고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사람은 위인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위인은 누구일지 생각해본다. 과연 국민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을까? 


 * 이번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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